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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1. 2017

자취생 표 '집밥의 탄생'

#3화. 집밥 백 선생이 20년 전에만 있었어도....

어찌 되었든 의식주 중 의(衣)와 주(宙)는 해결되었으니 먹는 일만 남은 자취생이다. 라면 끓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전무했던 친구와 나는 학생식당에서 사 먹는 밥값도 아끼려고 집에서 식사를 해서 먹기로 했다. 젊음은 불가능도 가능케 한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요리를 해서 먹겠다는 용기는 무지로부터 비롯되었을 터, 그 무지를 여지없이 발휘하는 자취 신공을 나타내게 되었다.


일단은 집에서 돈을 받지는 않았어도 쌀과 냄비는 받아왔다. 동아리방에서 부르스타를 하나 얻어와 난생처음 요리를 하려고 한다. 어머니께 들었던 밥 짓는 법을 몸소 실천하였다. 

일단, 쌀을 씻는다.

둘째, 쌀 위에 손바닥을 얹어 손등까지 물이 올라오게 물 조절을 한다.

셋째, 최대 화력으로 쌀을 끓인다.

넷째, 냄비가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약 10분간 기다린다.

다섯째, 불을 끄고 약 5분간 뜸을 들인다.

여섯째, 냄비를 열어본다.

응??

'죽'이네?


그래도 일단 먹어보기로 하고 다음은 반찬... 그런 건 없다.

국을 끓이기로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료는 된장, 고추장, 소금, 끝.

하아~

된장국을 끓여보기로 한다.

첫째, 물에 된장을 푼다.

둘째, 팔팔 끓인다.

셋째, 소금으로 간을 한다.

넷째, 맛을 본다.

다섯번째, 짜다

여섯번째, 물을 넣는다.

일곱번째, 다시 끓인다.

여덟번째, 맛을 본다.

아홉번째, 그냥 먹기로 한다.

열번째, 건더기가 없는 것이 아쉬워 집 앞 공터에 누가 심어놓은 쪽파를 기억해내고 쪽파를 하나 몰래 뽑아온다.

열한번째, 쪽파를 잘라 국에 넣는다.

열두번째, 똥색 국물에 푸른색이 들어가니 만족스럽다.


이렇게 죽 같은 밥과 푸른 쪽파가 둥둥 떠다니는 무슨 맛인지 모르는 건더기 하나 없는 된장국으로 두 끼를 해치웠다. 우리의 자취생활 첫 번째 요리는 이렇게 시작했다.

'집밥 백선생'이 이때만 있었어도 조금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당시에는 없었다.

돈 안 들이고 식사를 했다는 것에 매우 만족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 쪽파 맞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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