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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0. 2017

자취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방값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보증금 없는 월 8만원짜리 쪽방에서 친구와 자취를 하게 되면 방값은 무리 없이 조달 가능하다고 믿었다. 대학 1학년 때야 부모님의 도움으로 16만원짜리 방에서 살았지만 휴학을 하고 나면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는 백수일 뿐이었기에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조력을 받지 말자고 호기 어린 다짐을 했다. 21살이면 이미 '어른'이다라고 믿었기에..



하지만 21살짜리 어른(?)이 한 달 4만원에 달하는 방값을 벌어오는 것이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나절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한 달 내내 일해도 월 30만원가량을 벌 뿐이었다. 1998년 그 당시에도 이 돈으로는 기본 생활만이 겨우 가능하였다. 휴학을 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을 여유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내 기대한 바대로 생기지는 않았다. 물론 내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와 자취방 친구는 쉬는 날 인력사무소를 나가기로 했다. 흔히 말하는 '노가다'. 하루 일당이 7만원가량이었고 소개비로 5천원을 인력사무소가 떼어갔다. 그나마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새벽 5시 반 즈음 인력사무소에 도착하면 아저씨들이 사무소에 가득가득했다. 모두들 오늘 하루 일을 나가고 말리라는 의지는 사실 보이지 않는다. 늘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냥 그렇게 조용히 앉아들 계셨다. IMF사태로 인해 일도 많이 없던 시절, 인력사무소 소장이 어디 어디서 무슨 일 하는데 가실 분 하고 말문을 떼면, 사무소에 온 순서대로 또는 그때서야 엄청난 의욕을 보이는 사람들부터 차량에 태워져서 어디론가로 떠났다. 



나와 친구는 당시 뭔 기술 같은 것도 없었거니와 경험 같은 것도 없었기에 단순 노무직으로 불려 나갔다. 나가는 승률은 대략 50%. 힘은 들지만 식당 알바보다는 돈 버는 데 있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이렇게 단순히 방값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먹고, 자고 생활하기 위해 군대 가기 전까지 자취생인 나는 일을 놓지 못하였다. 일을 하지 못하면 월세를 못내게 된다. 그럼 큰일나는 줄 알았기에 쉬지 않는 날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쉬는 날에는 새벽부터 인력사무소에서 일자리를 구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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