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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스트 Jan 11. 2017

이틀간의 굶주림이 낳은 추억

#4화. 한국판 '분노의 포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화상

자취 생활할수록 더욱 잘 먹어야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 또는 불가촉천민에 불과했던 자취방 친구 '서'군과 나는 한 끼 먹는 것도 영 어려웠다. 타고난 귀차니즘과 주머니에 단 돈 몇 백원만 들고 살던 경제적 상황이 맞물리니 하루 3끼를 챙겨 먹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나마도 먹던 식사를 외식을 한다는 것은 내 이번 생에서는 틀렸다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담배는 줄곧 사다 폈으니 인간이란 참 모순적인 존재 또는 중독에 한없이 약한 존재가 아닐런지.


어느 날 '서'군과 나는 배를 곯다가 잠이 들고 깨고 담배 한대 피고 배가 고파 다시 잠을 자고 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돈도 없었고 쌀도 없었다. 동아리방에 가서 선배들에게 밥을 사달라고 하면 될 텐데 자취방과 학교는 걸어서 30분이나 가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맞먹는 길이니 차마 엄두가 나지 않았다.(우리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


자고 굶기를 한 이틀 되었나 보다 '서'군과 나는 자취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자취방에 놀러 오곤 했던 동아리방 친구들이 우연히 우리 자취방에 오고 싶었었나 보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내 기억에는 없다. 친구들이 우리에게 해준 얘기이다.



자취방에 도착한 친구들은 '서'군과 내가 방에서 기괴한 자세로 누워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 평소 방 공기가 좋지 않아 '이런 곳에서 살면 죽게 될 거야'라는 농담을 스스럼없이(그 어떤 죄책감없이) 하던 녀석들이었기에 말이 씨가 되었나 싶었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놀래서 나와 '서'군을  흔들어 깨웠다. 깨워도 깨지 않는 것을 보고 친구들은 적잖이 놀랐고 더욱 강하게 흔들어 깨웠다. 이틀 동안 굶으면서 잠만 잤던 우리는 일어날 힘도 없었나 보다. 내가 겨우 눈을 떼며 했던 첫마디.


"우.... 유...."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난 깨어나면서 '우유'를 찾았다. 원래 평소 난 우유를 먹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우유를 찾았는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미스터리 하다. 


친구들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 우유 2개를 사서 우리에게 줬고 '서'군과 나는 우유를 받자마자 벌컥벌컥 마셔댔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달콤한 우유방울들의 맛이 기억이 난다. 그건 흡사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서 '톰의 여동생 샤론의 로즈가 아이를 사산하고 굶주림에 죽어 가는 남자에게 젖을 물리는' 장면이랄까? 그렇게 사랑스럽게 우유를 완샷 하고 난 뒤 난 아주 평화로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직 햇살은 화창했고 그 햇살이 떡진 내 머릿결을 더욱 윤기 나게 했다.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며 목적지로 향했다.

이미지 출처 : Daum 블로그 'BLUE&BLUE'


살아있음을 느끼며 시작된


'폭풍 설사'


역시 우유는 나한테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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