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너의 존재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해파리를 넋을 놓고 바라보는 너를 보며, 하루 종일 닳아가는 시간의 촉을 예민하게 느끼던 것을 멈추고 나도 잠깐은 평화를 찾았었어. 진정 꿈 결 같던 4박 5일의 밤과 낮. 설레며 세웠던 뉴욕 방문 계획이 어그러진 뒤, 매일같이 오가던 채팅과 통화가 뭔가 활기를 잃고 시들해졌다고 느끼던 몇 주였는데, 갑자기 토론토로 날아오겠다고 네가 말했지. 오기로 한 당일이 돼도, 저녁이면 이제 만나는 거냐며 실감 못해했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실감이 나긴커녕 되려 비현실감이 날로 커지기만 했어.
12년 전에 초짜 요가강사로, 친구와 음악활동을 하던 너를 두어 번 만났을 때 참 데면데면했는데, 간간히 지켜보던 너와 내가 급격하게 가까워진 건 이제 겨우 1년여의 최근이었는데, 우리는 뭐가 그렇게 좋고 편할까? 참 신기하다. 30대의 중반에도, 세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새롭게 만난 너를 통해 확인했어. 유년을 같이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이토록 때 묻지 않은 순수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니! 오랜 시간 동안, 나이에 맞는 나로, 환경에 맞는 나로 그때그때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가면을 바꿔 써가며 그렇게 살아왔나 봐. 이 정도면 괜찮지. 이 정도면 편하지. 그렇게 충족되지 않는 관계도,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느끼는 실망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왔나 봐. 그런데 네가 확 끌어내린 가면에 나도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내 얼굴과 목소리를 다시 만났어. 너를 만나며 나를 만났어.
고마워. 네 말대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우리가 어떤 짧고 긴 이별을, 모든 관계에 있다는 그 순간을 맞이할지 모르지만. 인생에 손꼽을 만한 기억이 돼줄 여름날이었어. Tangible. 꿈같은, 그러나 명백한 우정의 모습을, 네가 내게 선물해 줬어. 어떤 말로 이 감사함을, 우리가 좋아하는 윤슬처럼 찬란하게 반짝였던 순간들을 기록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내 부족한 언어가 고작 이 정도인가 봐. 이 정도에서 이 시도가 마무리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