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증 환자 슈레버,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 다니엘 파울 슈레버
슈레버(Daniel Paul Schreber, 1842-1911)는 Denkwürdigkeiten eines Nervenkranken(1903), 한글판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을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당시의 증상을 과감하게 밝힌다.
슈레버는 당시 독일의 존경받는 재판관이었고, 아버지도 유명한 정형외과의로 명망 있는 가문 출신이었다.
슈레버가 정신증이 본격적으로 발병하게 된 것은 마흔이 넘어서였다.
그는 편집증세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금치산자 선고를 받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직접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고, 그 증거로 이 회상록을 제출한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출판을 목적으로 한 글은 아니었지만 이내 마음이 바뀐다.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고 가문의 명예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회상록을 출판하는 것은 보통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출판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힌다.
출판을 막고 나서는 주변의 우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생존한 사람들을 고려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 살아 있을 때 내 육체와 개인적 운명에 대해 전문가의 관찰이 이루어지는 것은 학문과 종교적 진리 인식에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을 생각하면 모든 사적인 고려들은 침묵해야만 한다.
슈레버는 자신의 증상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대표적인 망상 증세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 지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억지로 부인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무해한 정신증자'라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감금하거나 금치산자 선고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항소이유서를 쓴다.
항소인은 정신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중략)
본인의 망상과 환각은 법이 규정하고 있는 '용무들', 곧 삶의 이해관계와 재산 등을 유지하는 일에 결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습니다.
슈레버의 대표적인 증상 망상증은 황당하지만 굉장히 논리적이고 정교하다.
그가 편집증 환자일지는 몰라도 지적 능력은 결코 훼손되지 않았다.
슈레버가 1903년 자신의 회상록을 출판한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슈레버의 회상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편집증 환자의 텍스트이다.
편집증이나 어떤 정신증에 걸린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규정한다면,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올바른 회복의 길인가?
프로이트는 슈레버의 망상을 "삶을 재건축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정신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 안에서 안전하다.
슈레버는 성인기 이후에 갑자기 증상이 발현한다.
대표적인 망상증을 제외하고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정상'으로 보였다.
우리는 무심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잣대로 타인을 규정한다.
과연,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이며 누가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