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박영진, <라캉, 사랑, 바디우>

by 백소피
우리가 사랑에 대해 정말 알고 있는 게 뭘까?
사랑에 대해 올바르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사랑에 대해 잘 말하는 것은 필요 불가결한 동시에 불가능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문구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라캉과 바디우에 관한 연구를 한 저자는 사랑이 어떻게 라캉과 바디우 간의 변증법적 관계라는 구도를 통해 나타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사랑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저마다 각자 나름의 경험에 기반한 대답이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과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사랑만큼 할 말이 많은 주제도 드물지만, 사랑만큼 정답을 찾기 어려운 것도 없다.


저자는 사랑이 규정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인 까닭은 그것이 사유를 시작도 끝도, 출구도 입구도 없는 사이의 장소로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용서되며, 때론 증오한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애증이다.


저자가 정의한 라캉적 사랑은 인정되지 않고 억압되곤 하는 사랑의 본질적인 한계에 초점을 맞춘다면, 바디우적 사랑은 이러한 한계 위에 세워질 수 있는 사랑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어느 쪽도 사랑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되지 못한다.


저자는 라캉과 바디우의 뒤얽힘을 통해 또 다른 사랑의 공식을 얻는다.


사랑은 통과할 수 없는 난관과 흔들리지 않는 통과 사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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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라캉, 사랑,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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