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by 백소피
글쓰기는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나는 애쓰며 천장에 야광별을 붙여보던 사람이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빛을 모은 야광별이 서서히 빛났다. 사는 일이 캄캄할 때면 내가 살았던 자리들을 떠올렸다. 서른일곱까지 열 개의 도시, 스무 개의 자리를 옮기며 살았다. '마음 둘 곳'이 자리라면, 그보다 많은 자리를 전전해왔을 것이다.
- 고수리, <마음 쓰는 밤>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글쓰기를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수리 작가의 첫 문장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제 그만 나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글쓰기가 그 길을 안내해 줄 거라고. 야광별을 붙여 빛을 모으던 때처럼 계속 쓰는 한 자기 자리를 찾게 될 거라고, 믿음을 주었다.


어릴 때 내 방 천장에 야광별을 잔뜩 사서 붙이곤 했다. 천장으로 모자라 한쪽 벽면을 어설프게 별자리를 흉내 내 붙이곤 했다. 야광별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불을 일찍 끄기도 했다. 야광별만 붙였는데 불을 끄면 딴 세상이 됐다. 지금은 야광별 대신 글쓰기가 나를 딴 세상으로 이끈다.


자신이 없어서, 자신이 까발려질까 봐 두려워서 쓰기보다 망설이는 날이 더 많았다. 작가는 "계속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 어디에도 지지 않을 정도의 끈기는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여태껏 나는 '남'을 위한 일에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정작 나를 위해 버티는 끈기가 없었다.

아직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자신은 몰라도 계속할 끈기는 자라나고 있다.


첫 책을 쓰고 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인생 힘주어 담았지만 내 인생 바꿀 만한 대단한 일들, 이를테면 부와 명예와 인기와 호평과 어쩌면 조그만 반응조차도 없을지 모른다. 뭐랄까.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본 사람 같달까. 뭔가 대단한 일이 생길 거라 기대하지만, 요란한 소리는 찰나일 뿐. 무거운 돌은 보이지 않는 아래로 빠르게 가라앉는다. 아무 일도 없다. 동그란 자리 위로 작고 조용한 동심원만 퍼져 나간다.
- 고수리, <마음 쓰는 밤>

글을 쓰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혹은 생기지 않을까 봐 바보같이 생각만 하고 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작가의 말이 뇌리에 꽂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글 쓰면서 온갖 기대감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미리 실망하고 계속 쓰지 못했다. 글 쓰면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말은 나에게 내려놓는 마음을 일깨워주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대신 나에게는 변화가 생긴다.


작가는 "쓰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돌고 돌아 매일 쓰는 사람이 되었다"라고 한다.

나는 쓸 수 있을까 하는 자기 불신과 쓰고 싶다는 미련 때문에 계속 글 언저리를 돌고 돌아 매일 쓰지 못해도 계속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계속 쓰다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적어도 매일 쓰게 되겠지.

매일 쓰는 나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풍요로운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