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가져다 객잔을 짓네

김명리, <단풍객잔>

by 백소피

가을 단풍 가져다 객잔(客棧)을 짓고, 세상 시름 가져다 풍류를 읊네


한순간 머물렀다 떠나는 가을잎 잎잎 속에는 저마다의 호젓하고
저마다의 반짝이는 객점(客店)이 있으려니
청향낙홍 천만(千萬) 사(絲) 가고 오고 오고 또 가는 무정세월이여
단풍잎 객잔 속에 온갖 시름 부려놓으시라, 한바탕 영롱하게 쉬어가시라.
- 단풍객잔으로의 초대




난생처음 식물을 분양받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뭔가 창조하고 싶고, 삶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엄두도 못 내다가 '식물은 괜찮겠지' 싶어 기회를 엿보았다.


주위의 만류가 컸다.

"갑자기 웬 식물이냐?"

"식물도 아무나 키우는 게 아니다."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나의 바람은 우연히 이뤄졌다.

마음 같아서는 김명리 작가처럼 '단풍객잔'을 짓고, 세상사 시름 거기에 묻어두고 싶었다. 그녀도 수십 번의 이사 끝에 지금의 집에 정착했다고 하니, 나는 얼마나 더 떠돌아야 정착할 수 있을까.


기약 없는 그날을 무작정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으니 대신 자그마한 화분에 식물 삼총사를 키운다. 세상에 같은 식물이 수만 개 있어도 나의 식물은 단 하나뿐이다. 특별하니까 따로 이름도 지어 주었다.


프랭클린, 큐피드, 세브니.

프랭클린은 식물명이 벤자민이다.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성실하게 무럭무럭 자라기를.

큐피드는 식물명이 안스리움이다. 주로 하트 모양의 빨간 꽃이 피어서 밸런타인데이에 인기가 좋단다. 큐피드를 쏘는 것처럼 이 꽃을 전하면서 사랑하기를.

세브니는 난타나라는 식물명인데 보기보다 향이 짙고 일곱 빛깔의 꽃을 피운다. 지금은 무성한 잎들뿐이지만 언젠가는 다양한 빛깔의 꽃을 피우기를. 꽃이 피면 내 꿈도 같이 피겠지. (여전히 꽃이 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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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랭클린, 큐피드, 세브니

처음에 프랭클린, 큐피드, 세브니를 들인 건 나이니 그들은 객(客)으로 우리 집에 온 셈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침마다 물을 주고 인사를 하면 마치 내가 객이 된 것 같다. 김명리 작가가 '단풍객잔'을 지었지만, 그 또한 주인 행세를 하기보다는 객에 가깝다.


자연을 오롯이 만끽하는 가장 완벽한 태도는 자연 앞에서 누구나 객(客)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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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객잔'에서 날아온 초대장


김명리 작가의 산문집 <단풍객잔>은 표지가 언뜻 보면 가을을 예찬하는 산문집 같다.


목차를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시간 순으로 계절의 변화를 찬미한 글도 아니다.


작가가 그동안 써놓은 글을 추려서 모은 산문집이다 보니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고 시간이 들쑥날쑥하다. 그나마 주제별로 묶긴 했으나 가을만을 노래하는 글은 아니다.


책 제목은 이 책 전체의 분위기, 가을같이 쓸쓸하면서도 어딘가 서정적이며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은 작가의 시선이 곳곳에 스며있다.


작가가 본인 집의 호(號)이기도 한 '단풍객잔'의 주인으로서 독자에게 초대장을 보내는 듯하다.


우리는 그저 아무 계절이고 간에 단풍객잔에 들러 작가가 건네는 쓸쓸함 속에 묻어난 따뜻한 단풍잎 어귀에 둘러싸야 잠시 가을을 맞이하면 된다.


그곳에서는 내가 아니라 자연에 동화되듯 단풍객잔에 어울리는 한 마리의 잠자리가 되어 단풍잎 끝자락에 살포시 앉아있고 싶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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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읽히지만, 쉬이 잊히지 않는


<단풍객잔>은 산문이지만 시 같고, 시라기보다는 시조처럼 품격이 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공백이 띄어쓰기보다 더한 여백의 리듬이 느껴질 만큼 절제미가 있다.


작가가 얼마나 고심하고 고심해 알맹이만 골랐는지 쭉정이가 하나도 없다. 짧은 산문이지만 눈으로 읽기보다 한 구절, 한 단어씩 소리 내 시 낭송하듯 읽고 싶어지는 글이다.


생애의 저무는 바위틈에서 마악 길어올린 한 사발 약수 같은 봄이 사나흘 식탁 위에 차려지고, 입맞을 궂힐수록 마음 안으로 어떤 알 수 없는 훼멸의 기운이 더 깊이 넌출 뻗는 것은 웬일일까.
- <단풍객잔>, '우리들의 봄' 中


작가의 글은 금방 읽힐 만큼 글 밥이 적지만, 한 글자라도 허투루 읽기가 어렵다. 작품 곳곳에 작가가 얼마나 인내와 고통으로 탄생한 글인지 다음 구절만 보아도 그 절절함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물론, 어둡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은근한 여운을 남긴다.


여기는 내 생의 어디쯤인가? 이곳은 내 문학이 숨 고를 어느 초라한 간이역인가? 내 시의 뼈 없이 굵은 목소리에 낯 뜨거웠던 시절이 길었다.
- <단풍객잔>, '쇠망치를 삼켰으니 바늘을 꺼내야 한다' 中


시인은 일생의 매 수난마다 시의 공격을 받는다 했으니, 수없이 찢고 지우고 다시 써내려 가는 한 줄의 문장, 잠든 혼을 일깨워 쓰는 한 편의 시가 생의 온갖 부잡함을 씻어내 주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되묻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 <단풍객잔>, '옛 수첩을 태우며' 中


"수없이 쏟아지는 산문집도 많은데 나마저 보태야 할까?"라며 한없이 낮은 자세를 보이지만 작가의 첫 산문집은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시인의 역량이야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동안 쌓아온 원고 분량보다 그녀가 가슴속에 쌓아온 말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에 책으로 나와야 제대로 끝맺을 수 있다.


우연히 만난 책,

객(客)으로 놀러 왔다가 내 삶의 실마리 한 움큼 얻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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