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말>, 시라토리 하루히코, 박재현 역, 인벤션, 2015
당신 자신이 바로 당신의 세계다. 그리고 그곳에 당신은 살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으로 당신의 세계는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 비트겐슈타인
사는 게 괴로운가. 그것은 자그마한 한 점만 끊임없이 응시하고, 거기에 있는 작은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인생도 이와 같다. 티끌만큼의 제한도 없다. 당신이 원하는 온갖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그곳에 펼쳐져 있지 않은가.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어라."
"여자는 교사나 공무원이 최고의 신붓감이다"
"결혼했으면 애는 언제 낳을 거니?"
우리 현실의 게임 속에 적용되는 수많은 규율.
규율을 잘 지키는 모범적인 사람이 게임의 승리자가 되는 세상.
과연 그럴까?
이제껏 그래 왔다고 해서 내일 또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삶의 방식을 바꿔라.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대처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완전히 다른 룰을 적용하기로 했다.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한 자신이라 착각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에게 묻는 척하며 자신이 상상한 타인에게도 묻지 않겠다.
나는 동의한 적도 없는데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수많은 사회의 틀을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는 게 괴로운 적도 있다.
티끌만 한 점 하나를 끊임없이 응시하면서 그것이 내 인생인 양 고통스러워했다.
인생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철학은 내 속에 무질서하게 쌓여있는 잡다한 쓰레기를 쓸어내고,
깨끗하게 청소하는 훌륭한 도구였다.
철학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탐구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하나의 규칙만 적용되는 곳이 아닌 그곳을 영원히 사랑한다.
나 자신, 내가 사는 방식이 곧 나의 세계다.
내가 좋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시'로 표현하는 '시인'이었다.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기의 세계를 만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용기를 내어 자신을 구원했다.
철학이 시라면 시인이 될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