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곤, 플라톤 <향연>,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5
인간은 남성과 여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양성을 함께 갖춘 남녀추니, 이렇게 세 부류가 있었다. 남성은 태양의 자식이고 여성은 지구의 자식이며, 남녀추니는 달의 자식이다. 이들은 대단한 힘과 능력 그리고 방자함을 지녔기에 신들에게 대들었다.
제우스는 생각을 짜내어 인간들을 살아 있게 하면서도 방종을 멈추게 할 방도를 마련했는데, 그것은 인간을 반으로 갈라서 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숫자를 증대시켜 신들에게 더 쓸모 있게 하는 것이었다. 반으로 잘린 인간은 제각기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며 만나서 한 몸이 되기를 욕망하다가 삶의 의욕을 잃고 굶어 죽거나 나태해져서 죽어갔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간에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만났을 때는 사랑의 결속이 가장 강해서 서로 떨어지려 하지 않고 평생을 같이 살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인 결합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온전해지려는 갈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가능한 한 서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을 사랑이라 부른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 줄 사람을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사랑이라 여긴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은 당연한 것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열등감을 원천 삼아 공부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을 당연시했는데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그 상태가 바로 '온전한' 것이며, 다른 의미로 완벽한 것이라고.
더 이상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날 필요도 없고, 맞출 필요도 없다.
에로스가 '하나로 합쳐지려는 원초적 욕망'(육체적인 의미를 넘어)이라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으면서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한때는 사랑이라는 핑계로 모든 것을 공유하려고 하고, 상대방의 단점을 고치려고 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을 투영시킨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 누가 모르나?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지. 인간의 어리석은 착각 혹은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좋은 면만 보고 전체를 확대 해석하며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게 문제지.
둘이라도 외롭다면 부족해도 혼자인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