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프로 역마러가 롱런하는 법
나는 대학원생이다. A대학원을 한번 자퇴하고, 지금의 대학원에서 '정신분석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학문을 공부한다. 정신분석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프로 역마러' 답게 이 공부를 하기까지 참 먼 길을 돌아왔다.
한평생 누가 시키거나 억지로 하지 않고, 대가도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일이 몇이나 될까? 그런 일이 한 가지라도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취미 이상의 수준으로 잘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인생이 좀 더 즐겁지 않을까?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일에 흥미를 느끼고, 앞으로 그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학을 졸업한 지 십여 년이 훨씬 지나서야 공부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뭘까? 한참 공부를 해야 할 때는 흥미가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 왜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조용한 아웃사이더였다.
고등학생 때까지 정해진 대로만 살면 비록 공부를 못해도 큰 탈이 없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방황이 시작됐다. 사춘기도 소리 소문 없이 지나간 내가 진짜 사춘기를 겪기 시작했다. 전공 수업은 흥미가 없었고, 관심 있는 교양 수업만 A+를 받았다. 하기 싫은 건 겨우 기본만 했다.
마침 집안 사정도 어려워져서 그때부터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미련이 없으니 한 학기만 하고 또 휴학을 신청하려는데 총 3년을 채워서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군대를 가거나 임신이나 중대한 질병이 아닌 이상 복학을 해야 했다. 7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논술학원 강사 생활은 힘들었지만 직접 교재를 만들어서 가르치는 건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면 공부를 싫어한 건 아닌데 딱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면서 드디어 알게 되었다.
아! 공부의 묘미가 이런 거구나!
입시 학원도 다녀본 적 없었는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종합반을 끊고 종일 학원에서 살다시피 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눈으로는 다 익숙한 내용이라 안다고 착각했는데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공부만 할 기회는 이번뿐이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급할수록 요령 피우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학원 수업 2시간 전에 도착해 예습을 했다. 가장 먼저 학원 문을 열고 예습 후 수업, 점심, 공부, 저녁, 공부, 헬스장까지 갔다가 취침하는 생활을 8개월 정도 반복했다. 즉흥적이고 게으르고 끈기도 없는 내가 고3 때도 안 하던 규칙적인 생활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반복했다.
처음에는 점수를 올리는 게 목표였는데 점수는 당연히 오르는 거고, 갈수록 공부 자체가 재미있었다.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뒤늦게 알게 돼서 너무 아쉬웠다. 대학 입시 때 알았더라면 법학과를 갔을 텐데.
서울 살이를 하면서 100번이 넘는 면접과 수십 번의 이직을 했지만 늘 공허했다. 조건에 맞는 곳에 다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것조차 다 월급에 포함된 거라고 곱씹었지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는 건 하면 할수록 한계가 있었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뭘 위해서 일하는 거지?
나 자신이 점점 소진되는 게 싫었다. '법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고민 끝에 법무사 시험을 준비했다. 퇴근 후 독서실로 직행해 공부를 했지만 한 달 정도 하다 관뒀다. 일 끝나고 다시 독서실에 앉으면 나른해서 졸리기도 했고, 시험 난이도에 비해 비전이 불투명했다. 수험생 뒷바라지에 질렸는데 내가 또 그 짓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건에 맞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방송대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커리큘럼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좀 더 아카데믹하면서 공부를 깊게 할 수 있는 공부 모임이 없을까 찾기 시작했다. 우연히 알게 된 한 인문학 공동체에서 서양 철학 수업을 대학과 같은 수준의 커리큘럼으로 한다고 했다. 2주일에 한 번,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 같은 이름만 들었던 철학자의 책을 읽고, 발제와 토론도 하고, 리포트를 써서 피드백을 받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철학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 만난 철학은 마치 초등학교 동창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반가웠다. 철학 수업을 신청할 때 공부하는 동기를 제출하는데 나의 동기는 이랬다.
"내가 철학을 공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다. 살면서 느끼는 열등감은 성장하는 채찍질이 되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첫 시작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 위한 공부이다."
내 생애 첫 철학 선생님은 일상이 철학인 진짜 철학자셨다. 선생님께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과 피드백을 받으면서 그동안 알고 있던 나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아, 내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였구나!
오랫동안 억누르던 열등감을 인정한 순간, 세상이 바뀐 게 아닌데 내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에서 "왜?"라는 질문을 하면 '예민한 여자',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 '나이 먹고 깐깐한 여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러나 철학에서는, 철학은 그런 물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유레카!
즐거운 공부를 해도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막상 공부를 하니 또 다른 열등감에 휩싸였다.
왜 나는 진작에 철학을 공부하지 못했을까?
왜 대학원에 가지 못했을까?
만약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면 저들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원하는 삶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고통스러웠다. 이런 생각에 휩싸일 때마다 직장일에 더 매달렸다. 여기서라도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실망만 더 커졌다.
철학 선생님께서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라며 대학원 진학을 조심스레 권유했다. 당시에는 이대로 썩히기에는 내 재능이 아까워서(?) 그런줄 알았다. 막상 대학원에 가 보니 선생님께서 아마 내 무의식에 있던 학벌, 직업적 성취에 대한 욕망을 알아챈 게 아닐까 싶다.
대학원을 가고 싶었지만 '철학'을 공부해서 먹고살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신기하게 길을 찾으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 아주 조그만 실마리라도 보이는 법이다. '철학상담'이라는 전공이 있다는 걸 알고 직접 교수에게 문의도 하고, 수업 청강도 했다. 수업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특수대학원의 특성상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야간 수업이라 대부분 직장인이었다.
청강 후 입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X의 수험 생활이 끝나지 않을 때라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일단 등록하라며 말뿐인 격려를 했고, 그 말이 듣고 싶었던 나는 곧바로 입학을 했다.
학기 첫날,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학교는 아무런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했다. 교수도 학생도 당황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지금은 줌 수업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그때는 교수의 일방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강의 자료만 녹화한 것이 다였다. 출석 체크를 위한 과제만 쌓였다. 첫 학기라서 혼란스러운 게 많은데 전혀 교류가 안 되니 답답했다. 철학 수업의 특성상 활발한 토론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 수업을 기대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을 거라던 기대도 처참히 무너졌다. 대학원 수업을 고려해 이직까지 했는데 현실은 면접 볼 때와 달랐다. 온라인 매거진 업체였는데 매일매일이 마감이었다. 하필 팀장이라서 작업물이 온라인에 업로드될 때까지 최종 확인을 해야 했다.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면서 대면 수업이 가능해지자 더 큰일이었다. 퇴근 후 저녁도 못 먹고 허둥지둥 대학원 수업에 가서 마무리 못한 일을 체크하느라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또 이번 주 과제 걱정을 하느라 퇴근이 늦어질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업무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악순환이 반복됐다.
설상가상으로 대면 수업도 실망스러웠는데 비대면 수업의 비중이 높아지니 공부 자체가 재미없어졌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고민 끝에 대학원을 관뒀다.
곧이어 직장도 관뒀다.
최종적으로 결혼도 관뒀다.
번아웃이 왔다.
100번이 넘는 면접을 봐도 지치지 않던 열정이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열정도 한도가 있는지 한도 초과였다. 애초에 서울에 왔던 목표가 사라지니 의욕을 잃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자 생각했다.
그때 떠오르는 건 공부였다. 그리고 글쓰기가 다시 하고 싶어졌다. 쓰고 싶은 마음만 몇 년째 쌓여 무거웠다. 덜어내기 위해 써야 했다.
항상 회사에서 시키는 글만 쓰다가 나를 위한 글을 쓰려니까 어색했다. 세상 밖에 내놓으면 어떤 반응이 올까 신경 쓰였다. 의식적으로 글을 쓰니 잘 안 됐다.
또, 관뒀다. 관둬도 미련이 남았다. 고심에 고심을 더해 다른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제 뒷바라지해야 할 사람도 없으니 나 자신만 돌보면 됐다. 빚 내서 공부를 시작했다. 생업은 팽개치고 공부를 하다니 미친 짓이었다.
힘들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건만 또 위기가 왔다. 이게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철학 공부를 할 때 보다 재미가 없어졌다. 앞으로 최소한 몇 년은 더 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끝까지 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
이렇게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오랜 방황 끝에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공부를 중단한 적은 있어도 포기한 적은 없다. 인정 욕구가 강해서 주변의 시선을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히 신경 쓰는 타입이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척'하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응원도 비난도 보이지 않았다. "도와주지 않을 거면 방해하지나 말라"는 나의 으름장에 표정은 떨떠름해도 별 말이 없었다. 속으로는 빨리 돈 벌어서 집을 사거나 결혼할 생각은 커녕 쓸데없는 공부나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친구들은 더 노골적이었다.
"언제까지 공부나 할래?"
마치 세상 물정 모르고 글만 읽는 양반 취급하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많은 뜻이 담겼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내 마음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그 뒤로는 내가 뭘 하는지 최대한 말을 아낀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만 관련된 얘기를 하는 게 속 편하다.
내 나이가 20대 일 때나, 40대 일 때나 상관없이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응원하지 않는다. 한결같다고 보면 된다. 걱정을 빙자한 비난과 시기 질투를 한다면 가족이라도 차단하는 게 낫다. 공부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이라면 비록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도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 철학을 시작했고, 정신분석학까지 왔다. 삶에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끝없는 후회와 자책은 그만하고 싶었다. 신을 믿지 않기에 납득할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스스로 경험하고 부딪쳐서 터득하는 독학파 스타일이라 대학원 공부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공부보다 재미있는 게 훨씬 많다. 이상하게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도 다시 공부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음주가무를 할 줄 모른다. 남들 따라 해 봤는데 잘 맞지도 않고 재미가 없다. 유일하게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게 공부다. 수업 시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도 아니면서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라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다.
그토록 하고 싶은 걸 해도 그 과정에는 하기 싫은 일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하면 대부분 회피하거나 도망쳤다. 시작은 잘하는데 뒷심이 부족한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너무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시작도 전에 진을 빼고 스트레스를 받는 피곤한 유형이다.
첫 대학원을 관둘 때 학벌에 대한 환상이 사라졌다. 학벌 콤플렉스 때문에 대학원에 간 걸 인정하니 미련이 없었다. 우울증으로 모든 걸 관두고 쉬고 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대학원에 다시 갈까?'였다.
공부를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냥 잠시 쉬는 거였다. 공부를 하면 글쓰기도 하고 싶어 진다. 아는 만큼 쓰고 싶은 게 많아진다. 공부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한 글쓰기도 계속하게 된다. 열등감에서 시작한 공부는 나를 성장하게 함과 동시에 시련에 맞설 무기가 되어 주었다.
힘들 때마다 공부가 나를 일으켜 세웠고, 글쓰기가 함께 위로해 주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사이좋은 이란성쌍둥이 같다. 사람은 떠나도 공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프로 역마러'가 공부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그 안에 우주만큼 넓은 세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