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프로 역마러가 롱런하는 법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을까?
추석이 오기 전 9월의 어느 날, 모기 물린 자국을 미친 듯이 긁으며 생뚱맞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무릎, 발목, 손목 등 온몸에 코가 찡할 정도로 모기약을 덧발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기는커녕 계속 부어오른다.
아오 씨! 가려워 죽겠네!
모기 물린 자국을 긁다 못해 벌겋게 부어 오른 부위를 손톱으로 콕콕 찍어 누른다. 피부도 변덕스러운 주인을 닮았는지 아무리 약을 발라도 부어오르고 아플 만큼 아픈 뒤에 서서히 가라앉기 때문에 며칠 고생해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모기 자국은 억지로 인연을 맺으려다가 생긴 부작용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상대방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알았을 때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인연으로 바꾸고 싶어서 굳이(!) 낯선 동네까지 가서 상대방의 시간과 장소에 맞췄지만 결국 남는 건 수십 군데의 모기 자국뿐이다.
인연이 아닌 만남을 스쳐 보내지 못하고 아무리 붙잡아 봐야 소용없다. 유효기간이 끝난 인연을 억지로 아닌 척 상대방을 위해 모든 걸 맞춰도 이을 수 없다.
"함부로 인연 맺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맺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외롭다고 그때 만나는 사람을 인연이길 바라며 붙잡으려고 애썼다. 인연을 맺으려고 할수록 더욱 외로워졌다.
20대까지는 친구가 전부였다. 처음으로 친구가 정리되는 시기는 친하게 지내는 무리 중 한 명이라도 결혼을 하기 시작할 때다. 대학을 가거나 직장을 다니면 환경이 달라져 그 전까지의 친구와 멀어지게 된다. 그래도 간간이 안부를 주고받곤 하는데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하면 진짜로 인연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주변 친구들보다 결혼을 늦게 한 편이었다. 결혼을 늦게 하면 친구에게 서운한 점이 있다. 앞서 결혼한 친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가 많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축하를 받게 된다. 결혼식 하객으로 참여하는 비중도 높다.
나는 결혼 한 친구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는데 다들 전화 한 통으로 계좌 이체만 하거나 연락 한 통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느라 한참 정신없을 때니까 그럴 수는 있다. 이해한다고 해서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다. 참 씁쓸했다.
결혼 전까지 친하게 지내던 무리 중 나만 결혼을 하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 왕따가 되어 있었다. 내 연락을 무시하더니 결혼식에만 왔다. 결혼식에 오면 뭐하나?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사진 한 장 찍는 게 뭐가 중요해서? 참 슬펐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답답했다. 몇 년간 꿈에 나올 정도로 괴로웠다.
지금도 서운한 마음, 상처받은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라는 걸. 스쳐가는 인연은 내가 아무리 잘해주고, 맞춰주려고 해도 안 된다.
서른 중반에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 와서 가장 역할을 하며 홀로 고군분투할 때 참 외로웠다. X가 수험생이라서 누구에게도 내 얘기를 하기가 싫었다. 나도 모르게 벽이 쌓이니 진실된 인연을 맺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내 처지를 비관하게 되면서 연락을 끊게 됐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가 않았다.
직장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일하면서 짧고 굵게 수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도 연락하며 지내는 인연도 있고, 당시에만 친하게 지내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진 인연도 있다. 주로 내가 먼저 잊을만하면 안부 문자를 보내는 편이었다. 보통 연초와 연말쯤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 연락처를 훑으며 안부를 묻기도 하고, 한번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한다.
낯선 서울에서 혼자가 됐을 때 덜컥 겁이 났다. 자유로운만큼 적응이 안 됐다.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누구라도 붙잡고 싶었다. 평소에 연락도 안 하던 모든 인연을 억지로 끌어 모았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지인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혼자가 되기 싫어서 지인의 수다를 일방적으로 들어주었다. 그녀가 하는 아무 의미 없는 연애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시시콜콜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아 안심이 됐다.
마음은 공허했다. 지인은 그저 자신의 연애 얘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지인이 친구가 될 수는 없나 보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짓도 하지 않게 됐다. 이혼 후 거의 십몇 년 만에 전화번호를 바꿨다.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전화번호였는데 한 번도 연락이 오지 않은걸 보면 정리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쓸데없는 미련까지 같이 삭제해 버렸다. 전화번호부에 수십 명의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어도 아무 떄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막역한 상대가 되고 싶었지만 과욕은 부리지 않는게 좋겠지.
'프로 역마러' 답게 과거는 잘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가 한번 브레이크가 세게 걸린 후로 좀 천천히 가기로 했다. 지금 내가 과거를 돌아보는 건 그때를 곱씹는 게 아니라 정리하는 의미가 더 크다.
인간관계는 오래 두고 보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내 아집 때문에 정리해야 할 인연까지도 어리석게 붙들고 있었다. 고통받는 게 익숙한 나머지 내버려 뒀다.
그리 끈끈하지 못한 가족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을 친구에게 의지하려 했다. 오래된 친구는 물리적 시간이 오래된 것일 뿐 관계의 밀도가 깊은 건 아니다. 오랜 친구와 나 사이에 공통점은 과거밖에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존재 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지만 현생이 고달프면 그 또한 사치다.
내 주변 환경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게 훨씬 편하고 잘 통한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이와 생활환경은 달라도 공통 관심사 때문에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웠다.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1박 2일로 여행도 다녀올 정도로 친해졌다. 이렇게 모인 인연이 소중했지만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인연이 언제까지 일까요? 지인이 친구가 되기까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미래는 알 수 없지. 그래서 지금이 소중한 거고. 순리에 따라 살면 돼."
나보다 다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소위 시절 인연에 대해 덤덤한 듯했다. 벌써부터 아쉬운 맘이 컸지만 마음의 거리는 단기 속성으로 좁혀지는 게 아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그나마 이어오던 교류도 다 끊기고 더욱 인간관계가 좁아졌다. 직장을 관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나 혼자 세상에 고립된 것 같은 외로움이 몰려왔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지인의 연락처를 꺼내서 먼저 연락하기 시작했다. 지인이지만 친구로 지내고 싶은 마음이 급했다.
프리랜서라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는 핑계로 무조건 지인의 시간에 맞추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만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찜찜하게 남아있는 오해의 말들을 풀고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지만 그뿐이었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라 나도 좀 성숙해졌다고 생각했기에 다시 만나면 그때와 같은 불편함은 없을 거라고 착각했다. 내가 그 지인을 불편하게 한 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냥 내가 불편한 거였다. 왜냐, 서로 결이 다른 사람이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인 거다. 그런 걸 둘 다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라서 더 불편한 거였다. 잘잘못을 따지고 말고 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었다. 지인이 요즘 가꾼다는 공동체 텃밭과 반딧불이 체험을 따라갔는데 모기가 엄청 반겼다. 지인과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고, 반딧불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호기심이 일었다. 농사지으며 사는 삶에 대한 동경도 있었다.
그날 수십 군데 물린 모기 자국을 긁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겉으로 동경하던 이상과 현실은 다르구나.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듯 사는 삶은 나랑 맞지 않구나.
모기 알레르기가 있어서 약을 발라도 몇 배로 부어 올라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 아직도 물린 자국이 남았다.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인연은 억지로 붙잡는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X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때 조금만 더 참고 노력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수없이 곱씹어 봤지만 인연이 다하는 건 인력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이 크든 간에 관계는 끝났다는 걸.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했고, 나는 '마무리 짓기'를 택했을 뿐 결과는 같다.
얕게 맺어진 인연일수록 시간이 가면 알아서 정리가 된다. 가족은 그게 안 된다. 가족을 부정하는 건 곧 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산다는 핑계로 가족 간 의무에서 예전보다 자유로워졌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때는 절망스러웠다. 내가 아무리 '프로 역마러'라고 해도 뿌리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 언제까지 과거에만 얽매여 있을 것인지 한심했다.
집에서 멀어지려고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이 알고 보니 나를 더 옥죄는 짓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생활환경을 달리 해도 부모를 바꿀 수는 없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 게 아니듯 부모 또한 살아있으니 사는 거겠지.
'프로 역마러'라서 늘 방황하고 불안했다. 적어도 관계 속에서는 안정적이고 싶었다. 가족에게서 얻지 못한 안정을 친구든 결혼이든 찾으려고 방랑자처럼 떠돌았다.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왔다.
방황 끝에 깨달은 건 외로움과 고독은 인간으로 채울 수 있는 결핍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결핍된 걸 억지로 메우려고 억지로 인연을 만드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미 그 자체로 완성이니까 살아있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해 하지 말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