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프로 역마러가 롱런하는 법
얼마 전, 식물을 세 그루나 분양받았다.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뭔가를 기르고 싶어졌다. 선인장도 말라 죽이는 내가 식물을 기른다니 다들 말렸다. 같은 식물이라도 키우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며 손을 탄다고 했다.
"식물이 죽으면 다시는 기르면 안 돼!"
식물을 분양해 주는 사람도 못미더웠는지 비장하게 한 마디 했다. 무슨 살인면허를 검증받는 것도 아니고 덩달아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인격체로 대하기 위해 이름부터 지어주었다.
'란타나'는 일곱 빛깔의 작고 예쁜 꽃이 핀다고 해서 '세브니', '벤자민'은 미국의 위인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성실하게 자라라고 '프랭클린', '안스리움'은 하트 모양의 빨간 꽃이 피어서 밸런타인데이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길래 '큐피드'라고 지었다.
정기적으로 물 주는 시간을 알람 설정까지 해 놓고, 꼬박꼬박 안부 인사도 하며 돌봐주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도록 다른 집 란타나는 다 꽃이 폈는데 나의 세브니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키만 삐죽 자랐다.
내 끼니는 걸러도 얘네들 물 주는 건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눈 뜨자마자 내 목도 축이기 전에 아이들의 물부터 줬다. 그러나 식물도 사람 손 탄다는 속설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갈수록 비실비실 해졌다. 본의 아니게 불성실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처음 데려올 때의 그 비장함은 온데간데없고 습관적으로 물만 준 건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키울까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데리고 와서 이름을 지어주고 때 맞춰 물만 줬다. 아침마다 말로 건네던 인사도 시간이 갈수록 외출할 때 한번 쓱 쳐다본 게 다였다. 그래도! 제때 물 주고, 햇빛도 쬐어 줬건만 너무한 거 아닌가?
나의 식집사 체험은 아마 곧 끝날 듯하다. 작심삼일도 안 갈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라고 나름 자화자찬해 봤자 소용없다.
"이래서 뭐든 집착하면 안 돼. 법정 스님도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난 때문에 무소유를 깨달으셨잖아."
"대체 어딜 봐서 법정 스님의 고매함과 너의 끈기 없고 불성실함을 동급으로 취급하냐?"
나의 뻔뻔함에 친구는 어이없어했다. 식물을 키우는 재주도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 했다. 나도 안다. 나는 참 끈기가 없다. 시작만 거창하고 마무리가 안 된다. 하고 싶은 게 많아 일 벌이는 건 잘하는데 금세 흥미를 잃고 뒷 마무리가 잘 안 된다. 작심삼일의 대명사다.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끝까지 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학습지도 끝까지 못 풀어서 몰래 숨기다가 들켜서 혼나고 그날부로 관뒀다. 그때 한 생각은 '잘못했다'가 아니라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들킬걸' 싶었다.
오빠처럼 대놓고 요령 피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조용히 사고 치는 유형이었다. 뭔가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끝까지 하고 말겠다는 독기도 없이 그냥 소심한 아이였다. 성적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끝까지 지킨 적이 없다.
뭔가를 끝까지 하려면 규칙적으로 시간을 써야 하는데 강제로 지켜야 하는 시간 외에는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죽였다. 동그라미로 그린 방학 시간표는 형식적인 거고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계획표대로 생활하는 친구를 처음 보고 별종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 - 출퇴근 시간, 수업시간 등 - 에 맞춰 생활하는 매우 수동적인 인간이었다. 정해진 시간 외의 자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지각 한번 한 적 없고, 직장 생활할 때도 지각은커녕 일찍 가서 여유롭게 준비하는 편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성실한 모범생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싫은 소리 듣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 그렇지 않은 정도로만 했다. 정작 나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넘어 서울에 와서 좀 초조했다. 직장을 옮기는 것 말고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1인 기업가'가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할 때였는데 이거다 싶었다. 스스로 일을 창조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는 1인 기업가라니 얼마나 멋진가! 프리랜서와 비슷한 듯 하지만 좀 더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면에서 프로들의 세계 같았다.
시작은 잘하는 '프로 역마러' 답게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책도 읽고, 퍼스널 브랜딩 강의도 들었다. 아무리 강의를 듣고 그들의 책을 읽어도 본질적으로 나만의 핵심 기술이 없으면 경쟁력이 없었다. '1인 기업가'는 먼 얘기 였다. 현실과 너무 큰 괴리감 때문에 의욕을 잃었다.
또, 흐지부지 됐다. 이대로는 백 년이 가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참 미라클 모닝 붐이 일 때라 억지로 따라 해 봤다. 아침 잠이 많은 올빼미형이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는데 새벽에 일어났다가 한창 일해야 할 시간에 비몽사몽 했다. 나도 모르게 회사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도저히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졸다가 온 적도 있다.
이건 아니다 싶어 또 다른 길을 모색했다. 직장을 다니며 겸업으로 블로그를 하거나 웹소설을 써서 히트 친 작가들을 보며 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을 따라 블로그도 하고, 글쓰기도 해 봤지만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 이걸 왜 하나 싶었다. 회사에서 하는 업무가 글쓰기와 관련된 직종이다 보니 순수하게 나를 위한 글쓰기는 잘하지 않게 됐다.
차라리 솔직하게 '돈'을 벌자 싶어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며 '돈'에 관한 공부를 했다. 관련 책을 읽고, 부동산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며 그런 삶을 꿈꿨다.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이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옷을 빌려 입는 느낌이랄까. 돈을 많이 번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보며 그들처럼 사는 삶이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인지 자문해 봤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무리 직장을 바꾸고, 직업을 바꿔도 인생이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월급에 목매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돈을 좇아도 허망하고, 하고 싶은 걸 직업으로 삼으려 해도 현실성이 없으니 차라리 그냥 아무 대가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할까 싶었다. 그림을 배우고 싶었는데 그런 돈이 안 되는 취미생활에 쓸 여유는 없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지만 나를 위해 쓰는 돈에 인색했다.
철학 수업을 들을 때도 몇 번이나 고민하다가 수강했다.
지금 세상에 철학 따위를 해서 뭐할래? 철학은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이 심심해서 듣는 교양 수업 아닌가?
주변의 시선과 같은 생각이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철학 수업의 문을 연 뒤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내 인생에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다.
철학 공부를 하기 전까지 영어 공부든 다이어트든 자기 계발이든 뭘 해도 작심삼일이었다. 직장도 나만큼 면접을 많이 보고 옮긴 사람이 있을까? 이 정도면 직장 부적응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하는 것과 오래 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공부를 하면서 남들이 봐주길 바라는 내 모습 말고, 진짜 내 모습을 '제대로' 마주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철학 공부만 계속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뒤로 어떤 일을 하든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이 있으니 방황을 해도 예전처럼 흔들리지는 않게 되었다.
전교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희귀하다는 체력장 5급이던 내가 무슨 체력으로 이렇게 실패하고, 중단하고, 마무리도 못하면서 계속 시도할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체력은 더욱 떨어져 열정에 비해 실행 에너지는 거의 반토막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뭔가를 시도하려면 다른 걸 포기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만큼 보통 일이 아니다.
저질 체력의 대명사인 내가 무슨 에너지가 넘쳐서 100번이 넘는 면접을 보고, 수십 번의 이직을 했을까? 가장으로서 밥벌이도 하면서 나의 꿈을 찾겠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욕심만은 차마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만약 X가 오랜 수험생활 끝에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내 인생이 바뀌는 건 아니다. 물론 영향은 있겠지. 더 이상 혼자 가장 역할은 안 해도 될 테니까. 하지만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앞날이 보장되는 것도 없다. 그 뒤는 생각 하지도 않고 무작정 너무 많은 세월을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와 버렸다.
그 와중에도 나의 꿈을 놓지 않은 건 그것만이 나를 겨우 지탱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나만의 세상을 일구고 싶었다. 하지만 작심삼일의 대명사답게 혼자서는 의지박약이라서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같이 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다.
철학 수업부터 서평 수업, 모닝 페이지 쓰기, 루틴 수업까지 이 모든 수업은 함께 하는 동료가 있었고 훌륭한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하는 동안 일시적으로 모인 그룹이지만 '느슨한 연대'의 힘을 느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수업의 목적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 주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선생님의 객관적이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은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 주었다.
그날의 미션을 서로 인증하며 격려하는 모임은 의외로 좋은 자극이 된다. 혼자 하는 것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면 나이와 성별, 환경이 달라도 연대감으로 오래 할 수 있다. 처음에 습관이 잡히기 전에는 이렇게 함께 하는 수업을 하고 그 뒤에는 혼자 독학을 했다.
이제는 '프로 역마러'를 데리고 산 지 꽤 되었으니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다. 예전에는 뭔가를 해도 늘 작심삼일로만 끝나는 게 고민이었다. 나의 단점은 작심삼일이지만 장점은 비록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이번에도 얼마 안가 관둘 텐데 뭐하러 해?'같은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작심삼일이라도 뭔가를 시도한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 일이 작심삼일로 끝나서 좌절하고, 자책하지 말고 자신을 좀 더 믿기로 했다. 작심삼일이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작심삼일이 모이면 작심사일, 작심 한 달, 급기야 일 년까지 가는 게 한 가지는 있다.
만약 어떤 일이 작심삼일로 끝난다면? 그건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는 반증이다.
매일매일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바로 포기하지 말고 좀 더 작은 목표로 조정한다. 매일 글쓰기를 하는 게 목표였는데 지키지 못했다면, 아무리 늦어도 이틀에 한 번은 쓰기로 한다. 하루에 정한 목표량을 쓰지 못했다면 매일 100자씩 쓰기 정도로 부담은 줄이되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 작심삼일로 롱런할 수 있다. 식물도 못 키우는 나도 롱런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훨씬 부담이 덜하다.
스무 살이 된 후로 지금까지 유일하게 계속하는 것이 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배우고, 창조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수십 년 간 '프로 역마러'로 살면서 찾은 나의 길이다. 그 길은 항상 꽃길만 걷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작가이자 글쓰기 멘토 나탈리 골드버그는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가 된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에 대한 환상을 깨 부순다.
"글을 쓰는 데는 당신의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가 동원되어야 한다.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 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는 건 당연하다. 유명한 작가라도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지 않던가.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는 평생을 걸쳐 이루어야 하며 또 많은 훈련이 필요한 작업이니 다급해하지 말라"고 다독인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면 온갖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루 종일 이것만 해도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첫 문장을 쓰자마자 착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탈리의 말대로 글쓰기 훈련을 충분히 하지 않으니 금세 후순위로 밀렸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중단하면 끝나야 하는데 자꾸 미련이 되살아 났다. 몇 번이나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나탈리는 이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말한다.
"일단 글쓰기에 빠지게 되면,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이제야 책상 앞에 앉게 되었는지 의아해질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훈련을 통해서만 실력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깊은 자아를 믿게 되면, 이제 그곳에는 글쓰기를 두려워하라는 목소리는 자연스럽게 설 자리가 없어진다."
나는 아직 훈련이 덜 되었는지 글쓰기가 두렵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쓴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물으면 나의 또 다른 글쓰기 멘토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란 곧, 정말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게 되어 있는 것을 할 때, 돈이 따라오고 새로운 길을 향한 문이 열리며 자신이 유용한 존재임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놀이처럼 느껴진다."
나는 안 돼! 내가 무슨 작가를 하겠어? 이 나이에 무슨 대학원을 가고, 공부를 계속해?
내면에서 들려오는 불안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법은 작심삼일이라도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말고 일단 해 보는 것이다. 내 안에 갇힌 창조성을 일깨우는 작업으로 유명한 '모닝 페이지'쓰기의 창시자 줄리아 카메론은 인생에서 믿음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피하지 말고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자신에게 재능이 주어진 어떤 꿈들을 불가능하다고 여겨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변하지 않고 현재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당신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무엇인가?"
나에게 돌아오는 대가는? 글쎄, 없다. 대가란 무언가를 시도했을 때 얻는 거니까. 100번 중에 100번 다 작심삼일로 끝나도 101번 째 기회가 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기에 이루지 못해도 결국은 해낼 것임을 믿는다. 나는 '프로 역마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