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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y 25. 2018

게임과 더불어 만들어 갈 미래

‘포켓몬GO’가 만들어 낸 새로운 세상

                                                             

“포켓몬은 도구가 아닙니다. 
사람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훌륭한 파트너예요.”
- 만화 ‘포켓몬스터’ 중에서

     
  바로 얼마 전부터 속초로 향하는 버스는 연일 매진 행렬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속초로, 속초로 몰려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집중한 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의외의 장소에 난입한다. 아마 당신이 2-30대라면, 혹은 이들을 자녀로 둔 5-60대라면 기억하고 있을, 바로 그 ‘포켓몬’의 스토리를 담은 게임 ‘포켓몬GO’가 바로 속초에서 벌어진 기이한 현상들의 원인이다. 


도대체 '포켓몬GO'가 뭡니까

  이미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는 이 게임 방식은 단순하다. 포켓몬이 보이면 포켓볼을 던져서 잡고, 포켓몬 체육관이 보이면 도전해서 싸운다. 갖고 있는 포켓몬을 진화시켜 다른 모습의 포켓몬으로 만들 수 있고, 타인과 교환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들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어야 부화하는 포켓몬 알을 까기 위해 정처 없이 걷고, 희귀 포켓몬을 잡기 위해 여행을 떠나며, 체육관을 차지하기 위해 호수 위로 카약을 타고 가기도 한다. 아직 한국은 서비스 전이지만, 속초와 고성 등 강원 북부 지역 일부가 북미권역에 포함되며 플레이가 가능한 상태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게이머들은 속초로 모여 들었다. 속초는 ‘포켓몬스터’의 주인공이 첫 포켓몬을 얻은 고향 마을, 즉 ‘태초마을’인 셈이었다. 

  이에 속초시는 공공 와이파이와 각종 할인을 제공하는 등, ‘포켓몬GO’를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현재 울산 간절곶에서도 포켓몬을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지며, 시에서 대책반을 꾸린 상태다. 얼마 전 심야에 포켓몬을 잡기 위해 미국 산타모니카의 해변을 가득 메운 인파를 떠올린다면, 이러한 지자체의 반응이 무리도 아니다. 아마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다면, 새로운 사건·사고가 전국적으로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포켓몬GO’는 이미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이 되었다. 

   이쯤 되면 직접 플레이 해 보지 않았더라도, 이 게임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주머니 속 괴물’이라는 뜻의 ‘포켓몬’은, 1995년 일본 닌텐도에서 내 놓은 컴퓨터 게임 및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Pocket Monster)’의 준말이다.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한 주인공의 여정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포켓몬을 잡고, 성장시키며,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라이벌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등 모험이 펼쳐진다. 현재까지 방영된 모든 시리즈의 포켓몬들은 수백종이 넘고, 이들은 물, 불, 독 등 특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생명체로, 빠른 진화에 따라 모습이 변하고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러한 캐릭터의 매력과 포켓몬 대결을 벌이는 경쟁 구도, 모험과 우정을 담은 ‘포켓몬스터’는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포켓몬 열풍이 불었다. ‘포켓몬 마스터’는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2-30대의 꿈이기도 했다.


   ‘포켓몬GO’는 ‘포켓몬스터’의 스토리를 이용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게임이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과는 구분해야 하는 개념인데, 가상현실은 자기 자신과 배경 모두 가상의 이미지를 사용한 ‘새로운 현실’에 가깝지만, 증강현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나 배경에 가상의 이미지를 겹쳐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가상현실이 더 뛰어나 보일 수 있지만, 증강현실은 사용자로 하여금 더욱 현실감 있는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까, ‘포켓몬GO’는 현실 세계에 포켓몬의 세계를 덧씌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평범한 세계를 스마트폰을 통해 바라보면, 포켓몬이 돌아다니는 모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나이안틱 랩스의 기술력과 노하우
'포켓몬스터'라는 콘텐츠의 활용


  게임 전문가들은 ‘포켓몬GO’ 열풍에 대해, 제작사 나이안틱 랩스의 노하우, 인지도 높은 글로벌 콘텐츠 지식재산권의 활용,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증강현실 게임으로서 접근성이 높다는 것을 이유로 꼽는다. 나이안틱 랩스는 구글의 한 부서에서 독립한 기업으로 GPS와 지도정보를 이용한 기술에 능하며, 이전에 ‘포켓몬GO’와 같은 방식의 증강현실 게임 ‘인그레스(Ingress)’에서 그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또한 일본의 게임잡지 ‘게임 프리크’의 대표 타지리 사토시가 만들어 낸 이 ‘포켓몬스터’라는 이야기는, 그가 어린 시절에 즐겨 했던 곤충채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괴물들을 수집해서 도감을 만드는 과정은 곤충 채집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러한 사냥, 채집, 표본 구성 등의 구조는 인간의 본능적인 목표 달성 욕구를 자극함으로써, 게임으로 만들었을 때 시너지를 내기에 적합하다. 게다가 이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팬덤은 이미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캐릭터 산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입증되었다. 검증된 콘텐츠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여 이야기의 공간을 확장한 것이다. 

  연극학 이론으로 게임을 논하는 연구자들은, 게임의 공간을 일종의 연극무대로 간주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고 지적하며, 게임과 플레이어간의 상호작용성을 설명한다. 게임이 일방적으로 읽기만 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쓰는 텍스트로서, 플레이어는 관객과 배우의 체험을 동시에 하게 되고, 게임 내의 사건은 예측 불가능한 열린 구조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은, 게임의 서사에 참여하는 플레이어의 경험과 감각에 더욱 호소하며 현실감을 극대화하여 몰입을 끌어낼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이야기 속에 직접 뛰어 들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것은 꿈이 구체적 현실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포켓몬GO'의 매력은,
어릴적 꿈이 현실이 되는 세계
사용자가 직접 써나가는 텍스트의 매력
게임에서 느끼는 자아효능감

  한편 철학자 버나드 슈츠는, 게임이란 불필요한 장애물, 즉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라고 정의했으며,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일할 필요가 없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면, 우리는 결국 일과 유사한 놀이를 발명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는 게임에서 느끼는 자아효능감과 카타르시스에서 비롯된다. 자아효능감(Self-efficacy)이란, ‘자기효능감’이라고도 하는 교육학, 심리학 용어로, 구체적인 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신념을 말한다. 자아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이 과제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어려운 과제들을 피하지 않고 숙달해서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성공과 목표 달성으로 모든 욕구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으며,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에 따라서 정직한 결과를 얻기도 어렵다. 그러나 게임은 정해진 규칙에 숙달하면 정직한 보상을 제공한다. 게임 연구자들은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욕구를 게임 속 현실에서 실현하며 자아효능감을 얻는다고 본다. 억압된 상태를 해제하는 치유의 카타르시스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게임 연구가 제인 맥고니걸 역시, 게임의 잠재력을 통해 일상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임 속에서는 누구나 명확한 임무를 띠고, 이를 자발적이고 독립적으로 수행하며, 재미있다고 느끼는 일에 열렬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장대한 의미를 지니며,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타인들과 교류하며 강력한 커뮤니티를 이룸으로써 긍정적 감정을 지닌다. 그리고 현실과는 달리 이 모든 것이 실패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오히려 현실을 견디는 힘을 얻는다.

  ‘포켓몬GO’의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포켓몬 마스터’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자발적이고 독립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며, 광장에 나와 타인과 교류하며 목표와 정보, 감정의 연대를 이룬다. 의미도 보상도 없는 우울한 현실에 비해 포켓몬의 세계는 꿈과 희망으로 넘쳐난다. ‘포켓몬GO’ 열풍의 내면은, 인간이 게임에서 구하는 자아효능감의 극대화 및 카타르시스의 추구에 더하여,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증강현실 세계의 결합인 것이다. 



“게임은 미래의 실마리이며, 
어쩌면 지금 진지하게 게임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책일지 모른다”
- 버나드 슈츠


  일각에서는, 하루빨리 ‘한국형 포켓몬GO’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09년에 증강현실 기술의 개발을 완료하고, KT에서 ‘올레캐치캐치’라는 증강현실 게임을 만들었으나 실패한 사례가 있다. 이후 주로 가상현실 기술에 집중해 온 국내 게임계와 관련 부처는 증강현실의 예상치 못한 약진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콘텐츠의 문제다. ‘포켓몬GO’의 후속으로 ‘해리포터GO’를 제작해달라는 세계 네티즌들의 요구가 빗발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현재 경쟁력을 가지는 국내 캐릭터나 스토리가 없으며, 그나마 잘 알려진 ‘뽀로로’나 ‘타요’의 경우는 유아용으로서, 성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콘텐츠로 개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더해 게임을 유해매체이자 규제대상으로 보는 시선, 게임에서도 교육적 요소를 요구하는 태도는 게임의 재미를 반감시키며, 그러면서도 게임의 경제적 효과만을 탐하며 비즈니스로서 접근하려는 방식은 오히려 게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버나드 슈츠는, “게임은 미래의 실마리이며, 어쩌면 지금 진지하게 게임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책일지 모른다”고 했다. 증강현실 게임은 분명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고 우리의 삶에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 올 것이다. 

  벌써 방 안에만 있던 게이머들이 거리로 나와 걷고 뛰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포켓몬GO’에 대해서, ‘Pokemon weight-loss program’이라고 칭했다. 걷고 뛰어야만 부화하는 포켓몬의 알 때문이다.) 게다가 게이머들은 게임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대면하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켓스탑’처럼, 오프라인의 기업과 제휴한, 새로운 게임 수익모델들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구글과 같은 정보 집약적 기업이 증강현실을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구석구석에 다양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들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눈 앞의 변화 앞에서


  앞서 잘 설계된 게임은 생산성과 연대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자아효능감을 충족하고, 현실 세계의 변화와 긍정을 재창조한다고 했다. 수많은 기술이 생산과 관계를 대체하게 될 앞으로의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게임을 통해 현실을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우리는 게임이 게이머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해 더더욱 연구해야 한다. 게임 속에서 행복한 생산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세계를 설계하는 방법은, 반대로 현실의 사회와 관계에서도 유의미하지 않을까.

  또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의력은 결국 탄탄한 기초와 자유로운 사고,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포켓몬의 아버지인 타지리 사토시가 곤충 채집을 좋아하는 소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모두 함께 즐기고 싶은 마음으로 게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돈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포켓몬스터’의 흥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영위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한 것이지, ‘뽀로로GO’를 만들어 내라고 등을 떠밀어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우리에겐 그저 즐거운 게이머가 필요하다.

  경험하지 못했던 세계의 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분명한 것은 게임은 배척해야 할 공포스러운 대상이 아니며, 더 좋은 미래로 함께 나아갈 긍정적인 도구나 파트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포켓몬은 없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어. 우리가 스스로 개척하는 거야!”라던 ‘포켓몬스터’ 속 명대사들은 우리로 하여금, 게임과 더불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해 줄 것이다.
   
   



* 참고자료
윤형섭 외, 『한국 게임의 역사』, 북코리아, 2012
제인 맥고니걸, 『누구나 게임을 한다』, 알에이치코리아, 2012 
김겸섭, 「뉴미디어 시대의 인터랙티브 드라마: 아리스토텔레스적 컴퓨터 게임의 연극적 모델」,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007
이혜림, 정의준, 「카타르시스 추구와 자아 효능감에 기반한 게임 과몰입의 심리적 욕구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게임학회지』, 2015

**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8월호에 기고한 것을 일부 수정 및 생략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게재된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www.ilemonde.com을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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