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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y May 25. 2018

제주, 육지의 판타지가 모이는 곳

                                                                          

육지 사람의, 제주에 대한 환상

제주 김녕해변 (C)Sophy

  최근 개봉했던 영화 ‘올레’에서는 삶이 지난한 서른아홉의 세 남자가 제주도로 간다. 영화에서는 이들의 즐거운 일탈을 표현하기 위해 제주의 잘 알려진 관광지나, 귤따기 체험, 자전거 하이킹과 같은 흔한 클리셰를 사용하며, 주인공 남성들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을 파트너로 등장시킨다. 이 영화의 인물들이 유난히 못난 것은 제쳐 두더라도, 영화가 제시하는 일탈과 해방, 아름다운 풍경과 로맨스, 이것이 어쩌면 육지 사람이 제주에 가지는 평범한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제주는 서울에서 그다지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많은 저가 항공사의 출혈 경쟁, 게스트하우스의 활성화, 인터넷 블로그나 SNS 등으로 여행정보 공유가 실시간으로, 디테일하게 이루어지면서, 육지와 제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눈에 띄게 가까워졌다. 


모두가 제주를 여행한다
각자의 환상을 품고


그러면서 제주는 국내 여행의 트렌드가 가장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 되었다. 지금은 국내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바우길’, ‘슬로길’ 등의 도보여행길은 제주의 ‘올레길’이 시작이었다. 현재 21코스까지 개발된 올레길을 걷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유명 관광지가 아닌 곳들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를 따라 예전에는 유럽 배낭여행에서 볼 수 있었던 저렴한 가격의 유스호스텔을 표방한 게스트하우스들이 제주에서 문을 열었다. 이들은 오름 투어, 바비큐파티 등 각자의 장점을 내세우며 청춘들을 끌어 모았다. 
   
최근에는 렌트카 대신 제주의 시외버스를 이용하고 직접 스쿠터를 몰거나, 외진 곳에 있더라도 특색있는 소규모 카페나 상점, 세화 벨롱장이나 함덕 멘도롱장처럼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주말 플리마켓, ‘가성비’ 좋은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젊은 여행객들의 경향이다. 이렇게 제주에 먼저 모습을 드러낸 여행 트렌드는 곧 다른 지역으로도 옮겨 간다. 제주가 국내 여행의 핫플레이스인 셈이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제주를 소비한다. 핫플레이스와 맛집 순례를 하기도 하며,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사진 찍기 좋은 장소만 찾기도 한다. 고급 호텔에 머물며 해외 휴양지 느낌을 만끽하기도 하고, 모두 한데 어울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파티를 벌이며 새로운 인연을 찾기도 한다. 제주가 저렴한 가격으로 부담없이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고, 여전히 해외여행보다 비싼 여행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제주를 여행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요즈음에는 2박3일, 3박4일이 아니라 아예 한 달씩 제주에서 살아보는 ‘제주 한달살기’가 어린 자녀를 둔 30-4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입도를 위해 미리 살아보는 가족도 있고, 자연과 가까이에서 여유를 즐기기 위해 온 가족도 있으며, 제주 영어교육도시 등 자녀 교육을 알아보기 위해 온 가족도 있다. 이렇게 단기간 살아보는 이들 외에, 정말로 제주에 입도하는 이들도 전에 비해 증가했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제주도 가서 게스트하우스나 할까.’라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 온 것이다. 
   
이전에도 제주도에 살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은 있었지만, 열풍이 분 것은 아마도 제주에서 신혼살림을 꾸린 ‘소길댁’ 이효리의 영향이 클 것이다. 화려한 이미지의 유명 연예인이 제주에서 살며 소박한 행복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제주에서의 삶이 대중적인 관심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관광객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애월읍이 이효리 이후 급격히 변모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후 많은 연예인들이 제주에 별장을 짓거나 입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애월의 한담해안산책로 근처에 문을 연 빅뱅 지드래곤의 카페, ‘몽상 드 애월’에는 국내 관광객 뿐 아니라 중국인들까지 몰리기 시작했다. 
   
또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제주를 그저 예쁜 배경으로 활용한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제주 여행과 입도라는 소재를 활용하곤 한다. 앞서 언급한 영화 ‘올레’, 그리고 2014년에 제작된 영화 ‘좋은 날’은 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제주 여행의 로망을 주제로 적극 활용한 경우이며, 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맨도롱또똣’은 서울에서 모든 것을 잃고 제주로 입도해 새롭게 출발하려는 여성과 제주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제주에 핫플레이스가 생기는 공식

 애월, 월정리, 세화 등 기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명해진 지역들이 흥하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하다. 연예인, 방송 촬영, 색다른 가게, SNS 스타의 사진 등 한 두 가지 이유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지역에 도시의 트렌드, 혹은 해외 여행지의 모습을 가져온 가게들이 문을 열고, 일부 토박이 가게들도 그 트렌드에 맞추어 장사하기 시작하면, 도시 사람들이 그것을 마치 쇼핑하듯 소비하러 다닌다. 그리고 SNS를 통해 해당 지역이 더더욱 유명해지면 드디어 대형 자본들이 들어와 프랜차이즈 카페와 호텔을 짓는다. 소규모 자본으로 시작한 특색 있는 카페나 음식점은 어느새 프랜차이즈 회사에 팔려 제주 전역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트렌드세터가 아닌 팔로워들이 다시 이것을 소비하러 오고, 뒤이어 단체 관광객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찾는다. 이것은 마치 외지인들끼리의 소꿉놀이 같은 느낌이다. 
   
제주도청은 이 밀려들어오는 물살을 적극 활용하기로 한 듯하다. 최근 중국인 강력범죄와 관련해 크게 비판받고 있는 ‘무사증 입국 제도’, 그리고 외국인이 5억원 이상 부동산에 투자하고 이를 5년 이상 지속할 경우, 지방선거권과 의료보험 혜택이 주어지는 영주권 신청권을 부여하는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신공항 개발과 같이 제주의 환경이나 토착민의 생활보다는 상업적 이익을 우선한 개발 사업들을 진행하며 도민이 살기 좋은 제주보다는, 관광객이 보다 접근하기 쉬운 제주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제주 협재해변 (C)Sophy

사실 증가하는 관광객과 외부자본에 따른 문제는 이미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는 물론이고, 배려심 부족한 외지인들과 주민들과의 갈등이 생겨나며, 도내 부동산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또한 외국자본의 부동산 투자는 늘고 있으나 도민 고용창출의 효과는 미미하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다. 평범한 도민들은 오히려 제주도 내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으로 주거비를 해결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하며, 오래된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토박이들은 대형자본에 자리를 내어준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중국인 관광객의 무질서나 최근의 중국인 범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밀려오는 관광객들
부동산가격 상승, 환경오염, 각종 범죄...
제주인들은 행복할까

 

제주에 더 많은 관광자본이 흘러 들어올수록 제주인의 삶은 팍팍해진다. 그리고 우리 역시, 지난번 여행에서 만났던 조용한 장소가 다음번 여행에도 그대로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제는 이미 꽤 많이 변한 이 섬이 먼 훗날에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을지 우려해야 하는 시점이다. 제주는 섬의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고 찾는 이도 적어서 지금까지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적다는 것은, 많은 외지인들이 몰려오는 것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육지 사람들의 제주에 대한 판타지는 방송이나 여행책자 속 제주, 제주에 사는 연예인들의 모습, 인스타그램의 작은 프레임에 갇힌 예쁜 풍경이나 음식으로 구성된다. 그 판타지를 좇아 여행 온 사람들은 자신의 판타지를 충족할만한 제주의 ‘콘텐츠’를 하나씩 점찍듯이 수집하길 반복한다. 그러나 그들이 찍은 점을 연결했을 때 완성된 제주의 모습은, 현실의 제주보다 왜곡된, 비현실적인 파라다이스의 모습이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제주도 결국은 육지, 도시, 즉 서울 사람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서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본 제주의 이야기는 그들의 판타지를 완성하기에 급급하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제주의 삶은 결코 주체가 되지 못하고 타자에 머무른다. 앞서 언급한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어쩌면 피상적인 제주, 판타지 속 제주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보았다고 생각한 제주의 모습은 사실 육지인들의 판타지가 누더기처럼 기워진 것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제주를 타자화하는 육지의 판타지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제주를 바라보았는가

 제주도는 지역적인 특성상 오래 전부터 육지로부터 소외되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뭍에서 일어난 것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띠는 제주 지역만의 저항운동, 한 섬의 인구 중 10분의 1이 몰살당하는 참변을 겪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을 수 있었던 아픔의 역사, 4·3 사건이 그러했다. 다른 지방이 수도권에게 상대적으로 타자임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주는 언제나 육지로부터 타자였다. 
   
또한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건이나, 점점 그 인원이 줄고 있는 제주 해녀의 삶, 그리고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일본과의 갈등, 수시로 덮치는 자연재해와 최근의 큰 태풍 차바의 흔적까지, 제주의 삶은 낭만보다는 투쟁에 가깝다. 단지 짧은 여정 속에서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육지와 다른 그들의 삶이 보인다. 이 섬의 아름다운, 그러나 거친 자연과 그 앞에서의 인간의 삶과 노동, 그리고 보다 더 투쟁적인 여성의 삶 말이다. 그 다름을 그저 무심히 지나치거나 불편한 것으로 여겨 버리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열매만 수확해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제주 협재해변 (C)Sophy


 서울과 같아지는 것은 단순히 편리해지거나 발전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다름이 짓밟히고 삶이 초토화되며 자본에 목을 내어주는 것과도 같다. 때문에 지역문화의 다양성을 지키며 그것에 기반한 개발을 지향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삶의 모습을 좀 더 예민하게 발견하고, 그것을 타자의 것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만들 것이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그 안에서 서로 다른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우리 안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결국 세상 그 무엇과도 다른, 나의 존재를 지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한 칼럼니스트는, 매일 세 보 전진하고 일곱 보 후퇴하더라도 그 세 보의 전진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렇다, 강한 물살에도 그저 밀리기만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관광 제주의 상황은 참으로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걸음으로 매일 세 보 전진하는 움직임들도 있다.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지역 친화적인 방법으로 느리게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들, 제주의 어두운 역사를 심층적으로 읽어내는 다크 투어리즘, 제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작업하는 예술가들과 이곳에서 나는 재료로 창의적인 요리에 도전하는 셰프나 파티셰들이 그들이다. 
   
또한 제주 출신 감독이 우도 해녀의 삶을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물숨’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내며, 인디영화 치고 꽤 많은 상영관을 확보했다. 또 몇 년 전의 이야기지만 4·3사건을 담은 영화 ‘지슬’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의 땅과 바다, 사람에 뿌리를 두고 재창조된 이야기들은 서울이나 다른 해외 휴양지 모방에 그친 것들보다 이 섬의 색채를 더 풍부하고 다채롭게 한다. 


우리 안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결국 
세상 그 무엇과도 다른, 나의 존재를 지키는 것

 망상과 같은 판타지는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렵다. 그러나 건조한 현실에 굳게 발을 딛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완성한 판타지는 가까운 미래에 눈 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더욱 환상적이다. 또한 자유는 나 외의 존재를 배려할 때 진짜 자유가 된다. 새 출발, 일탈, 개발, 관광 등 각자의 판타지를 꿈꾸는 것은 자유지만, 이 곳 제주는 각자의 입맛에 맞춘 원더랜드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임을, 육지의 당신이 경험한 것과는 조금 다른 일상과 역사가 있는 삶의 공간임을 잊지 말기를. 그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제주에 대한 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판타지를 꿈꾸고, 그것을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11월호에 기고한 것을 일부 수정 및 생략하였음을 밝힙니다. 지면에 게재된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www.ilemonde.com을 방문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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