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일 때 괜찮은 사람>의 저자 권미선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좋아한다. 라디오 작가로 일했으며 지은 책으로 <아주, 조금 울었다>(2017)가 있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어 우리가 어둠이 되지 않게 할까? 세상의 어둠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에 하나에는 음악이 있다. 어둠에 물들지 않고 자신이 어둠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저녁이 되면 어둠을 데리고 집으로 와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하게 하고 자꾸만 날카롭고 짜증 섞인 말투를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울게 한다. 상처를 준 사람은 밖에 있는데 왜 나는 그 상처를 끌고 들어와서 내게 상처를 주고 다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가. 난 집으로 올 때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지워버릴 것이다. 밖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던 바깥의 세상에 두고 갈 것이다.
사람이 그림자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울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면 나는 괜찮다고.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오랜 친구들은 내가 등 뒤로 감춘 거짓말을 금방 알아보았다.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온전히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들은 남는다. 혼자인 법을 알지 못하면 기대고 바라고 매달리고 실망하고 미워하고 다시 기대게 된다. 나는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혼자일 때도 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한다.
하던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될 거라는 건 몇 주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 속삭임들, 눈빛들, 발걸음들, 주위에 떠 다니는 불운의 말들을 금세 알아차렸다. 일들 하다보면 수없이 겪게 되는 것이지만 기르던 고양이의 죽음처럼 불쑥 던져진 이별의 말처럼 언제나 떨게 되는 겨울의 추위처럼 여러 번 겪는다고 해서 상처가 덜해지거나 견딜만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줄까. 그래서 괜찮지 않은 얼굴로 말한다. 퉁퉁 부어오른 고집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괜찮아, 너는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몸의 차이만큼 마음의 차이란 게 있다. 마음의 근육이 단단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인생의 어느 길 위에서 넘어졌을 때 쉽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주저앉아 서럽게 우는 사람이 있다.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우울하면 커튼을 치는 나에게, 오래오래 잠자는 나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노력을 해, 웃어야 웃을 일이 생겨. 자꾸 밖으로 나가고 자꾸 사람들을 많이 만나 봐. 너는 왜 그렇게 못하니?"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은 내가 아니고 나는 당신이 아니다. 우리는 다르다. 낮과 밤만큼이나. 여름과 겨울만큼이나.
오래전 저자가 그리스 작은 섬으로 여행을 떠난 건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눈부시게 새하얀 집들과 쨍하게 파란 바다. 천상의 섬이 잠시 지상에 내려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하지만 배낭을 메고 도착한 그곳은 상상 속의 그곳이 아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느라 숨은 턱턱 막히는 데, 잠시 쉬어 갈 그늘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온몸은 땀에 젖고 머리는 핑핑 돌았지만, 자신을 괴롭히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발아래만 보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마을 정상이었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단처럼 층층이 늘어선 바다, 바다, 온통 바다였다. 천국이 있다면 이 작은 섬 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디에 앉지도 기대지도 않고, 사람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그곳에 서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숱한 말들이 짓누르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웠다. 물론 말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잠시 가벼워진 고민은 금방 다시 원래의 무게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에 쌓아둔 말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때가, 그리고 그걸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법이다. 시간을 내어 준다는 것, 그건 그 사람이 가진 유한한 시간 한 조각을 떼어 내서 나에게 준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생의 한순간을 나를 위해 쓴다는 것이다.
시작할 때 끝을 생각한다. 떠날 때 돌아올 것을 생각한다. 좋을 때 나쁜 것을 생각한다. 내가 보낸 시간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돌아오면 실망은 더 커졌다. 그때부터였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잠시 머무르는 곳일 뿐이다. 시간은 금방 흘러서 곧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떠날 때 타고 갔던 버스를 타고서, 그렇게 돌아오는 나를 상상한다. 모든 일엔 끝이 있으니까, 모든 만남에 헤어짐이 있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거기서 한걸음 나아간다. 세상은 그렇게 한걸음 앞으로 다가가는 사람들 때문에 달라진다. 가만히 서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