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암바호에서 성장했고 뮌헨대학과 엑상 프로방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 여러 편을 발표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남성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냄새에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주인공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향수>, 조나단 노엘이라는 한 경비원의 내면세계를 심도 있게 그린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등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다.
저자의 작품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는 독일 영화감독 헬무트 디틀과 함께한 시나리오로 영화화되어 1996년 독일 시나리오 상을 수상하였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가느다란 금발의 여린 얼굴, 유행에 한참이나 뒤떨어진 낡은 스웨터 차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알려져 있는 남자다.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 상 받는 것도 마다하고 인터뷰도 거절해 버리는 기이한 운둔자라고 알려졌다. 전 세계의 매스컴 추적을 받으면서도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한 소년의 눈에 비친 이웃사람 좀머 씨의 기이한 삶을 담담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 성장소설이다. 출간 초기에는 관심받지 못하다가, 위 문장 때문이었는지 10대들이 구매하면서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어릴 적 유난히 나무 타기를 좋아했다. 자주 나무를 타다가 한 번은 떨어져 머리 뒤편에 혹이 생겼다. 그래서 날씨 예보기가 될 정도로 고통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주인공은 유년기의 거의 모든 시절을 나무에서 보냈다고 기억했다. 나무에서 빵도 먹고, 책도 보고, 글씨도 쓰고, 잠까지 잘만큼 나무를 좋아했다. 그곳은 다른 사람의 방해받지도 않았으며 엄마 잔소리도 없었다. 게다가 형들의 심부름도 안 했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좋았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것만큼은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공의 인근 마을에 동네 사람들이 <좀머 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유일하게 <좀머 씨>라고 불렀다. 그의 직업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아저씨 부인이 인형 만드는 일로 돈을 번다고 알고 있다. 인형을 큰 소포로 포장하여 우체국에 부쳐주곤 하였다. 우체국에서 돌아올 때 언제나 잡화상, 빵집, 고깃집, 야채상에서 물건을 잔뜩 네 바구니를 산다. 그것으로 일주일을 버티며 인형을 만들었다. 그 부부에게는 자식도 친척도 없었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그렇지만 좀머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10시간 정도 호수 주변을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좀머 씨는 쉽게 식별이 되었는데 외투와 빨간색 털모자에 고무장갑을 신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가지 물건만은 항상 갖고 다녔다, 그것은 지팡이와 배낭이다. 지팡이는 그에게 제3의 다리 역할을 했다. 이상한 일은 그가 아무런 볼일이 없는데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가 물으면 혼잣말을 중얼거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좀머 아저씨가 제대로 말하는 소리를 딱 한 번 들었다. 주인공이 일곱 살에 아버지와 경마장에 갔을 때다. 억수같이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 우박까지 내리다 그쳤다. 시간이 지나 돌풍이 지난 길을 휘저으며 차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좀머 씨를 발견하고 아버지께서 태워다 준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그러다가 죽겠어요"라는 말을 했다. 좀머 씨가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단지 그 말 뿐이었다. 사람들은 좀머 씨는 밀폐 공포증 환자인 데다가 항상 경련을 한다고 했다. 밀폐 공포증이라는 말은 라틴어와 그리스에서 유래되었다. 그 말의 의미는 (닫음) 혹은 (고립)이고 밀폐 공포증은 병이라서 그 병에 걸린 사람은 방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그래서 차에도 탈 수 없었고 그는 바깥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자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좀머 아저씨는 밖에 돌아다니는 것이고 그거에는 약도 없었다.
주인공 반에 카롤리나 퀴켈만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까만 눈동자에 예쁜 그 여자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후에 만나기로 해서 기대하고 가장 소중한 물건을 준비했지만 함께하지 못했다. 주인공은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늦는 바람에 피아노 선생님께 꾸중과 심한 모욕을 들었다. 심한 상처를 받은 주인공은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나무 위에서 자살을 하려던 중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내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좀머 씨의 모습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좀머 씨를 다음번이자 마지막에 본 것은 그로부터 5,6년쯤이 지난 후였다. 모든 사람들은 아저씨를 너무나 자주 봐 왔기 때문에 건성으로 보았다. 그 무렵에 인형을 만들던 아저씨의 부인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주인공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장했다. 키가 170에 육박했고 몸무게는 49킬로그램 신발은 41을 신었다. 학교는 고등학교 5학년에 올라갈 차례다. 나무에 기어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대신 자전거를 한대 갖게 되었다. 얼마 후 지구력이나 기교를 잘 부리는 자전거 선수가 되었다. 언제나 뭔가를 해야 된다는 강요와 지시를 받았으며,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만 했다. 항상 압박감과 조바심,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고, 무슨 일이든지 항상 끝마쳐야 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은 편안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호수 쪽으로 갔을 때 좀머 씨 아저씨를 보게 된다. 호수 안쪽으로 걸어가는 아저씨를 보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좀머 아저씨가 물속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마침내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좀머 씨가 2주 동안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사람들은 좀머 씨가 밀폐 공포증 때문에 이사를 갔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라는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도 보드라워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악한 마음 없이 세상을 선한 마음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천사처럼 어린 마음으로 돌아가게도 해준다. 마치 신선한 공기를 만나면 그것을 힘껏 들이마시고 싶어 하듯, 책의 고운 회화적 이미지를 가슴속 가득히 품어보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다. 삽화와 그것에 해당하는 글의 조화는 그것에 맞추어 글을 썼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완벽하다. 헤르멘 헤세 이후 최고의 독일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저자는 역량을 유감없이 실감할 수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표면에 드러나 보이는 아름답고 고운 이야기로만 읽어 내리기엔 아쉽다. 아이의 시선으로 썼기 때문에 좀머 씨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힘들어했던 것이나 죽을 만큼 힘들었던 부분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2차 대전 전후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쓰인 것으로 봐서 좀머 씨는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가 겪은 참혹한 경험 때문에 두려움 속에서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과연 좀머 씨의 삶은 무엇이고 그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생 죽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으로만 살다가 결국 아무 일 도 해내지 못하고 그는 죽었다. 이 책에서 쥐스킨트가 꼭 한번 주인공 좀머 씨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부여한 대목이 눈에 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처음으로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애원했던 좀머 씨의 소원은 분명 작가 자신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동네에서 그의 억측이 난무해도 끝까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어린 나이지만 강렬하게 받았던 좀머 씨의 말을 들어주고 약속을 지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