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 {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한겨레출판 2009년 / 안도현 시작법 / 284page

by 신미영 sopia

집 근처에 2004년에 청주시립 정보 도서관이 개관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설이 되어 몇 가지 프로그램 중에 시창작반도 수강하게 되었다. 문학기행도 다니고 매주 시 쓰기를 수강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2006년 시인 등단을 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도 했고 그의 시작법이 궁금했다. 이 책은 일종의 시 쓰기 이론과 실전의 집합체이다. 책으로 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난 아이들 논술 수업을 하느라 시 쓰기는 점점 잊혀 갔다. 핑계지만 당시 수업이 중요했기 때문에 잠시 미뤄 두기로 했다. 수업에서 해방될 즈음에 교회 단체장을 맡게 되면서 봉사 쪽으로 열정이 흐르게 되었다. 나의 단점은 몇 가지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몇 년을 봉사에만 매진했다. 주어진 활동을 하느라 책은 가끔 읽었지만 글이나 시를 쓰는 것은 멀리 던져버렸다. 그러는 사이 시 쓰기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 책은 시인 안도현이 쓴 시작법이다. 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저자는 시를 쓴 지 30여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시는 물음표이고, 알 수 없는 허공의 깊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시를 무엇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으므로 다만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시적인 것' 탐색이야말로 시를 들어가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기 때문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 저자 안도현은 시를 쓰는 기술과 훈련뿐만 아니라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일이 무엇인가를 따져 보고 싶다고 했다. 전체 26개 목차로 적절한 시들을 인용하여 안도현 시인의 다양한 비법을 모아 놓았다. 이 책은 시작법과 더불어 한국어로 쓴 시의 정수를 맛보는 즐거움도 선사할 것이다.


다양한 시를 읽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훌륭한 관찰의 소재가 되고, 그 기억은 멋진 시의 재료가 되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법이다. 즉 맛있는 시를 많이 음미해 본 사람이 맛있는 시를 쓸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시를 쓰는 일은 세상을 두루 공부하는 일이다. 습작이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연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부단히 배우고 익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이란 우주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 적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잠들기 전 기발한 생각이 지나갈 때, 영감을 받아 적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메모지와 펜을 항상 머리맡이나 화장실 속주머니에 넣어 둔다.


상투성은 시의 큰 적이다. 소재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재발견되지 않으면 죽은 인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시인의 임무는 죽은 언어를 버리고 살아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안도현은 '연탄 시인'이라고 불린다. '연탄 한 장'이라는 시 때문이다. 연탄은 두 가지의 의미를 저자에게 선물했다. 가을을 인식하는 소재와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상징이 되었다. 저자는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모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쓴다.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고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것을 쓰고,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쓴다. 그리고 화려한 것이 아닌 하찮은 것을 쓰되, 감춰두고 싶은 것을 꺼내 쓴다.


한알의 사과를 소재로 시 쓰기를 한다면 저자는 이런 비법을 알려 준다. 열 가지 행동을 수행하거나 사유로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는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일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일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안도현은 " 내 시의 사부는 백석이다" 할 만큼 백석을 짝사랑했다. 그래서 백석 시를 필사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백석의 시 한 편이 심장을 흔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런 그에게 은사님은 백석의 시를 보여 주셨고,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고 한다. 백석을 사랑해서 닮고 싶을 정도였다. 필사는 참 좋은 자기 학습이다. 안도현은 시집의 제목을 백석의 시에서 인용했고, 짝사랑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요즘도 시가 잘 되지 않을 때 백석 시집을 읽는다. 사랑하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시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다 좋은 시는 아니다. 좋은 시는 지독하게 사랑을 하면 쓸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말은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슬프다거나, 기쁘다거나, 당신이 보고 싶다거나, 풍경이 아름답다 거나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고 한다. 그런 것들이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보고 '묘사'라고 한다. 즉 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일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풍장 - 황동규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 하얗고

이쁘고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어 있다


묘사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낮추거나 무릎을 구부릴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시를 한편 한편 쓸 때마다 연출가가 되어야 한다. 화자를 시의 무대 위로 보내 놓고 화자의 뒤에 숨어 배우 조종자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바닷가 우체국>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변산반도 쪽에 바람을 쐬러 가서 언덕에 집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 그 언덕 위에 빨간 우체통을 세우고, 우체부 자전거를 굴러가게 했다. <바닷가 우체국>은 '상상 시'라고 할 수 있다.


한 편의 시를 쓴 일은 한 채의 집을 짓는 일과 같다. 설계도면과 필요한 재료와 공사기간이 있어야 한다. 시가 하나의 유기체적 구조물임을 염두에 둔다면 행을 바꾸거나 연을 나눌 때에도 시인의 의도가 충분히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획과 의도 없이 절대로 행을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된다. 시를 가슴으로 쓸 것인가, 손끝으로 쓸 것인가? 습작기에 이런 주제를 놓고 누구나 한 번쯤 입씨름을 해봤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화두 중에 하나다. 작품의 진정성(가슴)을 중요하게 여길 것인가, 표현 기술(손끝)에 심혈을 기울일 것인가?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한다. 감성이 녹슬지 않게 신체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어두고, 지성이 바닥나지 않도록 책을 밥 먹듯 읽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를 쓸 때는 감성과 지성이 비빔밥처럼 잘 섞이게 해야 한다.


아무리 짧은 시에도 이야기 한편이 들어있다. 시인은 머릿속에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 놓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소재에 대한 시인의 장악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의 기승 전결 구조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시속에 숨어있는 것처럼, 시인은 머리와 가슴속에 이야기를 담아 두고 시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모방이 가능하고 할 줄 알아야 한다. 시적 영감이 번개 치듯 오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새로이 창조할 것을 권한다. 모방은 하되 모방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할 줄 알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과감하게 벗어던지면 된다.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타고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발견자에 가깝다. 이미 세상에 와 있으나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이 시인이다. 몸이라면 살갗을 보는 게 아니라 뼛속을 보아야 한다. 시인은 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먼저 발견해서 형상화해야 한다. 시인은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자이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면 일차적으로 가장 물기 많은 말, 가장 적합한 어휘를 행간에 배치하기 위해 헤매야 한다. 시 쓰기와 언어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만날 때까지 찾고, 지우고, 넣고, 비틀고, 쥐어짜고, 흔들기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하나씩 껍데기를 벗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다녀와서 기행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브런치 플랫폼에 책과 영화 리뷰를 쓰고 있다. 아직도 쓰고 싶고 여전히 관심을 가는 것이 시 쓰기이다. 그런데 시는 쓰고 싶다고 써지는 글이 아니다. 행운의 네 잎 클로버 찾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들여다보아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자세히 보아야 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시도 마찬가지다. 시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지만 그것들을 찾아서 자신만의 이야기에 감성 시어로 담아내지 않으면 소용없다. 다시 시와 친해지고 쓰고 싶다. 하지만 시를 알면 알수록 쓰기가 어렵다. 시가 다시 찾아오도록, 아니 내 곁에 오긴 했겠지만 여전히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시를 다시 쓰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 본다. 그날이 올 거라 믿으며 자주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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