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리뷰 -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문학동네 2020/ 이병률 / 144page

by 신미영 sopia

출판사 문학동네의 시집이다.

디자인이 없는 노란 원색에

산뜻한 코발트 블루

글씨가 전부다.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제목이 유난히 낯설어

끌린다.


시인 이병률은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 <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있고

산문집으로 <끌림> <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 내 옆에 있는 사람 >

<혼자가 혼자에게>가 있다.

현대 시학 작품상, 발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병률 시인의 말이다.

집이 비어 있으니 며칠 지내다 가세요

바다는 왼쪽 방향이고

슬픔은 집 뒤편에 있습니다

더 머물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 집에 잠시 머물 다음 사람이니


당신은, 그 집에 살다 가세요


2020년 9월 이병률의 저서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의 시집>은

단락 4부와 62편의 시,

그리고 이별여행 서효인(시인)의

발문으로 되어 있다.




아무도 모르게

당신 방에 앉아 침대 옆에 놓인

시집을 읽습니다


당신이 비운 집

한쪽에 놔둔 식물에 물을 주라 하였기에


아무도 모르게 누워도 봅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 한 병 꺼내 마셔도 좋다 하였기에


술만 마실 수 없어 달걀 두 개를

삶습니다


아, 희미한 삶의 냄새

이 삶을 달걀을 어디에 칠까요

무엇에 부딪쳐 삶을 깨뜨릴까요



지나가는 바람

그때 난

인생이라는 말을 몰랐다

인생이라는 말이 싫었다

어른들 중에서도 어른들이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거나

어쩌면 나이 들어서나 의미를 갖게 되는

말인 줄로만 알았으며

나는 영원히 그때가 오게 되는

것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오늘

나한테 인생이 찾아왔다

굉장히 큰 배를 타고 와서는

많은 짐들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앞으로는 그 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하나

풀어봐야 한다고 했다


좋은 소식 먼저 들려줄까

안 좋은 소식 먼저 전해줄까

언제나처럼 나에게 그렇게만 물어오던

오전 열한 시였는데

예고 한 번 없이 인생이

여기 구석까지

찾아왔다




치아가 이상해서

치과를 찾았더니

뭔가 참을 일이 많은

직업을 가졌냐고 묻는다


의사는 이에 실금이

많이 가 있다고 했다

왜 이렇게 윗니를 아랫니에

꽉 무느냐 했다


요즘 제가 참는 건

혀입니다,라고 했더니

감정을 참느라 이가 성한 게

없다고 하였다


요즘 참는 건

돌아다니는 일이라고 내심 말을

바꾸려는데, 어딜 좀 걸으면서라도

자기를 달래라고 하신다


잘 때도 이를 하도 꽉 물어서

어금니는 아예 닳았노라 했다


치아의 틀을 떠서 나에게 보이며

이에 쉼표라곤 없다곤 설명했다


먹는 일 끝내고도

말하는 일 마치고도

쉬는 동안까지도 참아야 했다니


틀을 떠놨으니

제대로 참고해야겠는 일은


살아 있음을 참느라

생을 종잡을 수 없다.


셔츠 주머니

언제 입었는지

한참 된 것 같은 셔츠 주머니 속에

몇 개 밥알이 뭉친 채로 마른 채로 들어 있다

칠칠맞게 밥을 먹다 흘린 건가


말라비틀어진 밥알을 꺼내

버리려다 말고 오래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본다


언제 한 번은

셔츠 주머니에 단추 하나가 들어 있었다

늪지를 함께 걷던 당신이

내 셔츠에서 떨어진 단추를

주워 건넸다는 걸

더듬더듬하여 알게

되었다


넣어 둘 것이 있어

주머니는 마음의 바깥이라던가

뒤집어 보일 수 있으니 주머니는

마음하고 다르던가

있으면 아무 의미라도 되게

방하나 심장 그쪽에 들여놓고

산다




이병률 시인과

중국 산둥성 여행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박 삼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시인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을 호의를 베풀고 호의를 받은 사람의 기분을 살피며 노심초사함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호의는 언제든지

당연한 것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고,

어쩜 그 여행도 일행에게는 당연한 날들이었을지 모른다. 지금 내게

그날의 여행은 당연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응당 가야 했을

여행인 것처럼 생각된다.

눈이 오는 것처럼, 비가 오는 것처럼,

슬프면 눈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그렁그렁하게 사무치는

눈물을 자기 안에서 녹이는

사람들처럼


중략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평안함과 즐거움에

이병률 시인은 당면한 책임감을

피하지 않았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애썼다. 거기에서 시인이라는 종족은 우연하게도 나뿐이었는데, 나를 제외하면

또한 그곳의 유일한 시인일 그의 얼굴을 나는 보는 듯 안 보는 듯 자꾸 보았다. 내가

볼 때마다 다른 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즐거웠는데, 좋았는데, 충분했는데,

그럼에도 그 얼굴들을 보고 있었던

얼굴 하나를 생각하노라면

이미 없는 사람이 남긴 비밀번호를

조합하는 기분이다.


이별여행의 발문 중에서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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