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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Nov 09. 2021

책 리뷰 - { 보통의 존재 }

달 출판사 / 이석원 산문집 / 380page

이 책은 이석원의 산문집으로 2009년에 시작하여 2021년 5월에 2쇄 67쇄를 발행하였다.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네 개의 단락 안에 120여 편의 에세이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편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시간 날 때 한 두 편씩 부담 없기 읽기에 편하다. 노란 은행잎 같은 빛깔에 <보통의 존재> 책은, 제목처럼 보통 일반인들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저자는 살아오는 동안에 절망시켰던 순간들이 모순되고 불합리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연극이 끝나고 출연진들이 모두 나와서 박수를 치며  모든 게 쇼였다고 말해 주기를 바란다. 지나간 것은 연극이었고 지금부터가 삶의 진짜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산책은 여유 있는 생활에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끔 고통이나 고립감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럴 때 산책은 안정제 역할을 한다. 집이라는 공간은 고립되기 마련이라 고통에 취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고독과 소외감으로 기분이 저조할 때는 오솔길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좋다고 권해 준다. 산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걷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두발로 땅을 디뎌 몸으로 느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움직일 때 세상의 풍경에 발맞춰 이동하면 마음도 안정된다. 오히려 사람들은 정지상태에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저자는 경계성 인격장애와 우울증을 갖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저자는 휴가를 내서 친구와 극장을 갔다가 몸을 비비 꼬느라 후에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산책에는 풍경이 필요하며 약간의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산책을 하지만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즐거움이고 어떤 이에게는 건강을 위한 몸의 움직임일 수 있다. 사람마다 그들 각각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저자의 아버지는 하급 공무원이셨는데 대인관계가 좋으셨다. 그래서 성북동 부자동네에서 근무했고 지인들이 갑부급의 부자나 고관대작들이었다. 덕분에 하얏트 호텔과 삼청동 대원각에서 부모와 식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포니를 타고 성북동 북악 스카이웨이에 가서 무수히 쏟아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출입이 금지된 곳에도 들어가 꿩 사냥을 하는 것을 구경했던 일, 수백 평 되는 회장님 댁에 가서 수십 마리의 개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일, 고래 등 같은 기와집 저택에서 갈비 파티를 벌 인 일 등 성북동에 관한 많은 추억을 적고 있다. 어려서는 집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친구들을 모두 데려오다가  차츰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는 누나들 결혼으로 가족모임은 장소를 정해서 그곳으로 오는 것으로 했다. 아버지 덕분에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성북동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적었다.  


저자에게 많은 것들은 불안과 고통의 산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상력과 무관하다. 인생과 속한 집안 환경 속에서 겪은 수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저자의 창작물이 되어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폭염 속에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달리며 만든 작품은 많은 성과를 안겨 주었다고 한다. 누구든 창작자라면 창조는 천재성이 아닌 고통에서 더 많은 것이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은 좋은 작품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인생의 굴곡이 험준할수록 작품에도 그만큼 진한 드라마가 담기기 마련이다. 저자의 소원은 사막처럼 고요한 곳에 살아보는 것이다. 조용하고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으며 그런 자유로운 곳에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사는 것이다. 고통은 영감을 주었지만 이렇듯 사막처럼 고요한 안식처를 갈망하게 되었다. 현실은 고통스럽고 꿈속의 사막은 달콤하다. 생의 중요한 것들이 이처럼 고통 속에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어릴 적에 자신을 꾸미고 감추는데 노력했다. 외출할 때 키높이 구두를 신었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사는 곳을 다르게 말했다. 누구를 만나도 모르는 것을 아는 척, 가지지 않는 것을 가진 척하느라 거짓말까지 했다. 시간이 지나자 자신을 부정하고 가리고 아닌척하기 위해 들였던 많은 공들이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감추기이자 꾸밈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비로소 그 모든 콤플렉스로부터 행방될 수 있었다. 세상의 많은 책들이 희망을 노래하고 강요에 가까운 긍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람이란 저마다 타고난 인격과 격차가 있고, 직업을 선택하게 되며, 개개인의 꿈이 있다. 누구든 위험한 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자유가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안락과 정착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지 않기를 그래서 보통의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에게 말하길 마사이족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절대로 길들여질 수 없는 존재들이어서 만약 감옥에라도 갇히게 되는 날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엔 오직 현재라는 개념밖에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이곳을 나가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엔 황당할 정도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싶었는데 이내 누구보다 순간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게 느껴졌다. 결코 내일이란 없는 사람들, 오로지 이 순간뿐인 그들에게 세상이란 어떤 존재로 비치는지 궁금하다.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된다. 글은 현실과 달라서 눈물의 양이나 표정의 절박함, 울음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내 주는 진정성 등을 확인시켜 줄 수 없기 때문에 슬프다. 슬퍼 죽겠다고 되뇌는 것만으로는 감정의 울림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언제부턴가 일기라는 사적인 기록을 공개적으로 쓰는 행위가 만연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글쓰기를 남들이 본다는 게 모순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남들이 보는 일기에 얼마나 진심과 솔직함이 있겠느가 하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이미 그게 열명이 됐든 만 명이 됐든 일종의 독자들이 본다는 전제하에 쓰이는 글쓰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글쓴이가 무엇을 했는지 보다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훨씬 깊은 관심을 갖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개인적인 일에 관심보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일에 상당한 너그러움과 호기심이 있다고 본다.




<보통의 존재> 하고는 약간 다르겠지만 보통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분이 생각난다. 얼마 전에 서거하신 노태우 전 대통령 어록 중에 재임 당시 "저는 보통 사람입니다."라는 문장을 자주 사용하셨다. 군사정권을 이어받은데 따른 부담으로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알려졌다. 그 뒤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 두고두고 화두가 되었다. 그만큼 누구나 보통사람으로 살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영화 <보통 사람>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영화의 중요한 이야기를 구성하지만, 평범한 가장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통사람이라고 칭한다. 권력을 쥐고 있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한 때는 중산층으로 불리기도 했다. 상류층도 아니고 하층민도 아닌 중간에 속한 계층이다. 그러나 요즘은 중산층의 개념이 거의 퇴색되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보통사람으로 누리는 행복은 정말 많다.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경험되는 것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살기가 팍팍해진 요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위태롭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와 소소한 행복을 맘껏 누리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그래야 보통사람으로 평범한 가정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릴 것이며 우리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https://youtu.be/cowfUGfG2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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