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Nov 16. 2021
책 리뷰 - { 여행의 말들 }
유유 출판/ 이다혜 / 2021년
이다혜 저자는 영화 전문지 (씨네 21) 기자이며 작가이다. <내일을 위한 내일> <출근길의 주문> <조식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코넌 도일> 등을 썼다. 책이 215page에 책 사이즈도 좀 작은 편이다. 100편의 글을 모아 저자의 여행기록과 체험, 생각 등을 썼다. 저자는 밥벌이 생존전략으로서의 여행의 효용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창의적으로 삶의 전환점을 만드는데 여행을 활용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분명한 여행의 기준이 있다. 살아 있다는 말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낸다는 뜻이다. 잘 비우기 위해 여행 중에 몸을 피곤하게, 머리를 게으르게 유지한다. 깊이 있게 생각하는 습관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여행의 막바지에는 계획을 세운다. 특히 다음 여행과 멀리 보는 시야를 놓지 않기 위한 계획도 세운다. 잘 살고 싶을 땐 여행을 간다. 여행지에서 살다 돌아오면 더 잘 살고 싶다. 무언가를 무릅쓰고 저자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행보다 더 좋은 일을 아직 알지 못한다. 저자는 매일 잘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다.
여행 중에 뜻밖의 순간에 행복감이 저자를 압도할 때가 있다. 저자는 이런 다양한 예를 들었다. 오클랜드에서 폭우가 쏟아진 날 홀딱 젖어 신호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에 무지개가 떴을 때, 화창한 날 잔디밭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면서 물방울이 반짝이며 사방으로 튀는 모습을 봤을 때. 우비 차림으로 불꽃놀이를 보며 도시락 고등어 초밥을 먹었을 때. 브랜드숍에서 충동적으로 산 옷을 숙소에서 봤는데 몹시 마음에 들 때. 호텔 조식 대신 에어컨을 틀어 놓고 솜이불을 덮은 채로 책을 읽을 때. 종일 걸은 뒤 욕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차가운 맥주를 마실 때. 짐을 잔뜩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숲길을 걷는데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 짐을 풀자마자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매번 시키는 메뉴를 주문했는데 기억하는 그 맛일 때. 눈이 잔뜩 내린 날 방문한 절 경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혼자 있을 때. 녹은 눈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풍경소리가 어우러져 청각적으로는 아름다운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회상했다.
저자는 여행지에서는 시간을 단순하게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놓치는 게 없을까 싶어 여행지에서 스마트 폰을 쥐고 이것저것 찾아보는 대신 그곳에 간 이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기차 여행은 왜 좋을까. 기차는 비행기보다 빠르지 않고 , 자동차처럼 구석구석 가지 않는다. 하지만 비행기보다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세세히 보이고, 자동차처럼 내가 신경 쓸 일 없이 이동할 수 있다. 보통 열차를 타면 창밖의 광경이 더 천천히 스쳐간다. 그리고 저자는 마치 잊고 있던 것처럼 도시락을 꺼내먹고 책을 읽거나 잠을 청한다. 저자는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북한을 경유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에 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저자는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났다. 그 시기에 강박적으로 여행했기 때문에 뭘 봤는지 어디를 갔는지 별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없었던, 길 위에서 보낸 어떤 날들이기도 했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방향을 잃기도 한다. 목적지를 정하고 떠나는 여행을 하다가도 온갖 변수에 맞닥뜨려 어째야 좋을지 모르는 순간이 생길 때도 있다. 한 번은 비행기 시간을 잘못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악천후로 투어가 취소되기도 했다. 갑자기 몸살감기가 심하게 와서 침대에 꼼짝 못 하고 누워 있기도 했다. 갔더니 기대에 못 미치는 건 여행이 다반사이기도 하다. 그러면 갑자기 후회가 시작된다. 이 돈이면 이 시간이면 차라리 집에 있을 걸. 왜 굳이 여행을 왔을까. 망한 여행 후일담은 늘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저자에게 여행이란 상자 밖에서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에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느낌, 그것이 현실의 전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더 적극적으로 여행을 가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는 것,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집의 현관문을 여는 순간 끝난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무엇을 보는지는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 현대 여행자는 거의 대부분은 '남이 본 것'을 보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우연히 들어가는 식당이 없고, 발길 닿는 데로 가는 관광지가 없고 충동적으로 사는 물건이 없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지만 지난 세기 여행자들, 그 시기의 여행 패턴과 비교하면 현격히 적다. 가본 적이 없는 식당이 어디인지 무엇으로 유명한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알고도 가기는 어렵고,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구글 지도는 관심 있는 장소를 표시한 별표로 가득 찬다. 쇼핑 목록은 출발 전에 이미 완성되었으니 현지에서는 목적한 물건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현지에서는 목적한 물건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가격이 얼마인지, 최 적거로 구입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이미 안다. 사건 사고는 줄어들고 획일성은 증가한다.
가끔은 여기가 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이 시를 생각한다. 저자에게는 아직 건너보지 못한 교각이 있고, 던져보지 못한 돌멩이들이 있다. 이 시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 텅 빈 미소와 다정한 주름이 상관없는 내 인생!" 느낌표가 있다. 이 느낌표가 저자는 사랑스럽다. 항공권 가격을 검색한다. 휴가 일정을 잡아 본다. 아직은 여행을 할 만큼 건강하고 가고 싶을 만큼 의욕적이라면, 저자는 인생이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뜻으로 산다는 건 이런 뜻이다. 내일을 기약하는 법을 다음 여행으로 말하기. 어딘가에 힘껏 돌멩이를 던진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꿈만 같다. 오늘은 여기 있지만 어제는 거기 있었다. 갑자기 저자는 한국어가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곳을 종일 걸어 다니는 사람이 되어 본다. 있는 장소가 바뀌면 자신도 바뀌는 기분. 그러니 집에 돌아오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되는 기분으로 사는 그런 것이다.
좋았던 곳일수록 다시 가고 싶어 진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곳에 가고 싶다. 기쁨에 찬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 마음으로 저자를 데리고 여기저기 가는 사람에게는 더 쉽게 사랑에 빠진다. 당연하게도 가족은 좋아하는 사람의 첫 손에 꼽히지만 생각보다 가족과는 별로 가지 않는다. 한편 가족이 갔던 곳에 다른 사람이 방문하면 그때 얘기를 하게 된다. 이번에 함께 간 사람이 애인이라면, 예전에 방문했던 일을 말할 때 형사에게 알리바이를 진술하는 용의자가 된 기분이 든다고 했다. 흔한 관광명소가 아니라 숨은 명당자리를 재방문할 때는 그 장소를 알려 주었던 과거 인연에 죄책감이 든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여행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여행 체험과 생각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쓰는 글이 실타래처럼 멀리멀리 이어질 수 있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 현실에 성실히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