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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Apr 12. 2022

책 리뷰 - {육아가 한 편의 시라면 좋겠지만}

비타북스 - 2020년 / 전지민 / 301page

저자 전지민은 에코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는 <그린 마인드>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강원도 화천에 뿌리내렸다. SNS에 시골살이와 육아 기록을 남기다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저자는 <맘 앤 앙팡><베스트 베이비> 등의 매체에 연재한 바 있으며, 지금은 패션지 <엘르>를 통해 엄마, 작가, 환경 운동가의 시선으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에세이로 작가와 딸을 키우는 내용과 작품 사진을 다양하게 넣어 소중한 육아 책을 만들었다. 저자는 기어 다니던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느낀 점을 말할 때 모든 말이 시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르친 적도 없는 기막힌 표현을 늘어놓을 때면 그 모든 말을 기록하고 싶었다. 하지만 설거지하고 씻기고 청소기를 돌리다 보면 귀한 말들이 줄줄 흘러가 버렸다. 그래서 엄마들에게 친한 친구의 일기장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아이가 어떤 사랑을 받고 어떻게 자라온 사람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읽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담았다. 이 책은 4파트에 35개의 꼭지로 구성되었다.


벚꽃이 절정인 봄날에 저자의 딸 나은이의 백일이 되었다. 셋이 어죽탕 집에 들어가 음악을 들었다. 흩날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연애 때 함께 본 영화 <어바웃 타임>이 떠올랐다. 영화 주인공이 결혼할 때 들었던 지미 폰타나의 '일몬도' 곡이었다. 새빨간 웨딩드레스를 입고 비바람이 몰아쳐 야외 결혼식이 엉망이 되었지만 주인공 메리는 '완벽한 날'이었다고 즐거워했다. 그 곡이 마치 그날 자신의 가족을 위한 주제곡 같았다. 그날 봄바람이 강하게 불어 환상적인 꽃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4년 3년 만에 잡지사 일을 중단하고 남편의 근무지인 강원도 화천으로 옮기게 된다. 독립 출판사 사업을 정리하면서 천여권 책이 관사로 배달되었다. 그동안 관심과 응원도 받았고 동종업계 선배들도 실험정신을 염려하면서 격려했다. 환경과 사람을 주제로 다룬  <그린 마인드>는 전국 대형서점의 잡지 코너, 메인 데스크에 진열되어 가끔 매거진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적인 부담과 동업 친구의 제안으로 사업을 접게 되었다.


저자는 2015년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꾸준히 육아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갖고 있던 그린마인드 책자와 육아 용품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때 총 18분의 엄마들이 장문의 편지와 함께 아기들이 썼던 물건을 택배로 보내 주었다. 친정엄마는 새것이 아닌 헌것을 입힌다며 안쓰러워했지만 저자는 오히려 보내온 편지를 보여주며 엄마를 설득했다. 전해받은 옷과 용품은 출산하고 나서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이듬해 봄에는 상태 좋은 옷과 물건들을 추려서 다시 춘천 미혼모 보호소로 기부했다. 라면 박스 3개 이상이 나올 정도로 넉넉했다고 전한다. 저자는 나눔 했던 독자들로부터 받았던 편지와 물건 용품도 사진 찍어 책에 실었다. 낭만적이고 흥미로웠던 시골 생활이 출산 후에는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는데, 산후 우울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울함이 몰려올 때면 친정엄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했다. 반복되는 딸의 투정에 엄마는 비우는 마음으로 있다가 오라는 답을 내놓았다. 항상 진심을 담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겨울의 빛은 유난히 낮고 깊게 집안까지 들어왔다. 해는 짧았지만 오후의 햇살이 깊이 들어와 닿을 때 그 어느 계절보다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아이의 첫겨울, 빛이 가장 아름다운 오후 시간이면 패딩 우주복을 입혀 산책에 나섰다. 평균기온 영상 4도쯤이면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가 겨울 공기를 마셨다. 눈이 내리고 쌓이는 소리까지 가까이서 들리는 고요한 산양리의 아름드리, 아무도 발 디디지 않은 새하얀 눈 덮인 세상을 통과해 집으로 가는 길. 언덕은 이미 눈이 쌓여 차로 오르기 위험한 수준이 되었다. 저자의 모녀는 씩씩하게 조심조심, 언덕 위의 집으로 기어 올라갔다. 나은이의 첫겨울이 노루꼬리처럼 짧아지고 있다는 멋진 표현을 적었다. 저자는 요즘에 와서야 오지랖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윗옷 앞자락 폭이 넓은 것을 뜻하며 주로 참견이 과한 사람에게 일침을 가할 때 사용한다. 요즘 이 단어에 정감을 느낀다. 이제는 체면을 내려놓고, 오지랖을 마음껏 부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저자는 적금을 모아 마음 맞는 엄마들 셋과 아기 셋을 데리고 일본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공항에서 아빠 없이 아기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려는 모습을 보며 깔깔깔 웃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을 신선한 조합으로 생애 첫 삼종세트 행을 떠났다. 여행이 수월했거나 낭만적 일리 없었다. 돌 이후의 아기들은 번갈아 울고 소리 지르기 바빴다. 민망했던 엄마들은 말없이 눈만 마주치며 격려와 미소를 보내야 했다. 오키나와 여행기간 동안 날도 맑지 않았고 게다가 폭우가 시작되었다. 밥때에 고심 끝에 한 사람이 아이 셋을 보고 두 사람이 식사를 준비할 때 아이 둘이 엄마가 안 보인다고 겁에 질려 울어서 다 같이 식은땀을 흘렸다고 한다. 또 수영장 사건이었는데 아기들이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규제 대상이었다. 물을 바라보고 들어가지 못해 애들이 대성통곡하여 장대비 속에 유모자 대여로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줬다. 한바탕 소란 후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고 웃어 주었다.  


가정보육을 하는 저자에게 동네 엄마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자주 묻는다. 하지만 특별한 계획이나 일과를 정해 두지는 않는다. 저자가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서 감사할 따름이다. 가끔 매거진 원고 칼럼을 쓰거나 브랜드 스토리텔링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은 짧은 편이라 아이에게 쏟는 시간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이 뒷받침되어 가정보육을 해낼 수 있어 다행이다. 어릴 적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은이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이유이다. 저자는 SNS 화면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마련해 준 틀을 기반으로 능숙하게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본다. 가끔 아이와 설거지도 하고 마른빨래를 개는 것도 놀이 같은 시간이다. 식재료를 사러 밖에 나갈 때 같이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도 한다. 결국 아이와 놀이는 아이가 부모를 돕고 따라 하며 관계의 감정을 배우는 거라 저자는 생각했다.


세상을 향한 아이들의 눈망울도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머리칼도 반짝인다. 아이의 작은 몸집이 얼마나 리 자라는지, 부모는 제 때 알아 채지 못한다. 성장은 초침 없이 돌아가는 시계처럼 고요하고 꾸준하기 때문이다. 신체적인 성장과 함께 말을 배우고 익히는 시기가 되면 그 놀라움이 경이롭다고 적었다. 저자는 아이가 한 말과 행동들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사진 찍어 순간을 그려낸다. 장난감을 치우며 저자가 잔소리를 할 때 28개월짜리 아이가 " 흥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라고 말대답해서 할 말을 잃었다. 말도 빨랐고 엉뚱하게 호기심도 가득했다. 만들어준 원피스를 입고 나가서 두 조각으로 찢은 일, 가수가 될 거라며 전화기에다 노래 불러서 전화세 폭탄을 맞기도 했다. 잔소리해서 미안하다는 말에 벌써 죄송을 알게 해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의 모든 말을 물어다준 이는 부모다. 언제나 아이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넘쳐흐른다.

나은이와 제주에서


나은이의 세돌을 앞두고 둘이 반달 제주살이를 떠났다. 세발자전거와 마리도 함께 동행한다. 이번 여행은 영아기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졸업 같은 시간이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원 없이 놀고 싶어 결정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바다와 모래가 있고, 티브와 인터넷이 없고 대신 재래시장이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그곳은 남편과 신혼 때 머물렀던 곳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평대리에서 아이와 2주를 보내기로 한다. 집 앞 자전거 도로의 이름은 '환상 자전거 길'이었다. 바다 풍경을 달리며 동네 할머니들께 시장 위치를 물었다. 한동안 먹을 식재료를 골라 자전거 한 바구니 가득 싣고 달렸던 만큼 되돌아왔다. 소형 냉장고를 채우고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저자가 찍은 사진을 책에 올려놓았는데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은 그림 같았다. 책을 만들어 봐서인지 멋진 사진과 글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이좋게 마스크를 나눠 끼고 동녘 도서관에 들려 동화책을 보고 돌아오는 길, 검은 밭담마다 노란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엄마의 간절한 바람 덕에 저자는 어려서 건강히 자랐다. 저자는 엄마의 눈물과 호된 야단, 뜨거운 사랑을 먹으며 자랐다. 저자를 업고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잘못했습니다"를 외쳤던 저자의 친정 엄마. 그곳에 나은이를 데리고 갔다. 담벼락으로 나은이를 들어 올려 빈집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때는 넓었던 집이 지금은 너무 작고 초라했다. 그래도 저자에겐 멋진 유년의 뜰로 기억된다. 화천에서 아이 낳고 기르던 이웃들은 언젠가 떠나기도 하고 편지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불편한 점이 많은 시골생활이었지만 좋은 이웃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환히 웃을 때면 사람들이 고향을 묻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저자는 아이의 발달 과정을 꽃에 비유한다. 봉우리를 뚫고 꽃을 피우는 시기는 조금씩 다를 뿐 잘나거나 못난 아이란 없는 것 같다. 지난 4년간 아이와 산책하며 계절이 하는 일을 살폈다. 너무 잘하려는 애쓰는 저자에게 힘이 들 때마다 친정 엄마는 이런 문자를 보냈다. " 그냥 토끼처럼 다람쥐처럼 살아라"


아이를 키울 때는 언제 크나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듯이 아이들은 순간순간 자라서 어느새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이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회생활의 일원자가 되었다. 추운 겨울이 언제쯤 지날까 하다 보면 어느새 봄이 오고 벚꽃이 피는 것과 같다. 벚꽃도 어느 순간에 꽃들이 날리고 푸릇한 잎들이 돋아날 것이다. 이런 찬란한 삶 안에서 좀 더 아이와 시간을 갖고 교감하는 시간을 누렸으면 한다. 아이의 하나하나 행동과 말들에 집중하고 관심을 갖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런 기록은 많은 엄마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엄마가 애지중지 저자를 키웠듯이 또 저자는 사랑을 담아 자신의 자녀를 키워간다. 우리 모두는 그 안의 궤도에 있다. 모쪼록 자녀가 몸이나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마음 쓰는 일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어바웃 타임 ost-일몬도

https://youtu.be/wrFsC1ldJ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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