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 천사의 낙원으로 불리는 호수마을 할슈타트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이동하는 데 비가 내려서 간간히 우산을 썼다. 네 번의 여행에서 개인 사정으로 빠진 자리를 세 번이나 구원투수처럼 채워 주며 여행을 함께 한 막내 베로니카가 우산을 모두에게 선물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이 지역은 알프스의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 대표적인 휴양지로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마을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중세의 그림 같은 주택들이 알프스 산맥과 호수와 어우러져 마을은 마치 한 폭의 그림엽서 같았다. 특히 살아있는 나무를 활용해 벽을 장식해 놓은 집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는 1181년에 세워진 마을 성당이 있는데 1505년 현재의 고딕 양식의 건물을 갖추었다고 한다. 마을 뒤쪽으로 올라가 성당에 가보았는데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경당의 문은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진 못했다. 정원에는 예쁜 꽃들과 함께 묘지가 여러 개 안장되어 있었는데 다들 걸어오는지, 차를 주차시키는 공간은 아예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높은 성당에서 바라보는 호수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호수마을 할슈타트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와의 만남
점심때가 되어 가이드와 함께 할슈타트 마을을 걸어 준비된 점심을 먹고 모차르트가 태어난 마을로 이동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아마데우스> 영화를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다는 자체로 행복하고 감개무량했다. 두 영화가 오버랩되며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가 곳곳에 배어 있는 듯했고 모차르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차로 이동하면서 볼프강 아마데우스에 대해서 미리 봐 두어 모차르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1756년 1월 27일 오스트리아 잘츠 부르크에서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서 막내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데우스라는 이름은 "신의 은총'이라는 뜻으로 독일식 이름을 라틴어로 바꾼 거라고 한다. 모차르트 부모는 자식 7명 중에 5명을 유아기에 저세상에 보내야 했다.
위대한 음악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 레오폴드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누나와 모차르트를 잘 이끌어 주었다. 모차르트는 피아노 소품부터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 모든 장르를 통틀어 음악적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다가 모차르트는 콘스탄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1782년 성 슈테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모차르트는 명성에 맞게 돈을 많이 벌었다. 하지만 돈이 모자라 돈을 빌리며 살았는데 과소비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1791년 여름, 모차르트를 찾은 방문객이 레퀴엠 작곡을 의뢰하지만 그해 겨울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발제크 백작은 아내의 죽음을 위해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을 자신이 작곡한 것처럼 위장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심한 류머티즘 열 때문에 죽었다. 모차르트는 사라졌지만 음악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모차르트 외가
모차르트 생가
신동 모차르트는 5살에 작곡을 시작하여 짧은 시간에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다. 모차르트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당시에 지나친 허영심과 낭비로 인해 생활고에 시달리며살았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더 오래 살아서 작품들을 많이 남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모차르트 동상이 있는 곳에 갔었고 거리를 거닐며 사진을 담기도 했다. 35년간 베를린 필하모니를 이끌었던 위대한 지휘자 카라 안 생가도 볼 수 있었다. 카라 안이 오케스트라를 멋지게 지휘하던 영상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그리고 저녁엔 슈니철에 들려 돈가스로 식사하였는데 양이 상당히 적고 맛도 별로여서 실망했다. 이후에 한 시간 이동하여 호텔에 도착했다.
미라벨 정원에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미라벨 정원에서
일정 5일 차인데 푀라라브루크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1시간 이동하여 잘츠부르크로 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아직도 중세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소금(Salz)의 성(burg)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잘츠부르크는 음악천재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음악의 도시라서 거리의 악사들도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한다. 잘츠부르크 미라벨 궁정 앞 정원은 영화'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송'을 불렀던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중세 유럽에서 완벽한 규모로 현존하는 호엔잘츠부르크 최대의 성에서 잘츠부르크의 모습도 조망할 수 있다. 어제 가이드가 오늘 점심에 중국식당을 갈 예정인데 밥이 나온다고 알려 주면서 혹시 가져온 반찬이 남았다면 다 싸갖고 오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래서 점심식사는 중국요리에다 장아찌와 고추장 깻잎, 김치등을 가져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중국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푸슬한 밥이지만 모처럼 풍성히 마음껏 먹었던 식사였다. 걸어서 면세점에 가서 초콜릿과 핸드크림, 발파 비타민 등을 구입했다.
멜크 수도원
화려한 외관 멜크 수도원에서
이후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멜크 수도원으로 향하였다. 현지 운전기사분이 수도원 건물 가까이 차를 대야 하는 데 제대로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길이 서툰 데다 한국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기사를 향해 가이드가 푸념하던 장소다. 돌고 돌아 다행히 입구를 찾아 내려 주었다.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으로 움베르트 에코의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의 무대이기도 하다. 12세기 초부터 수도원으로 사용되었고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수도원 내부에는 황실 가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방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고 하며 갖가지 보물과 9만여 점의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수도사들이 일일이 책을 써서 보관된 장서들을 보니 정말 대단했다. 시간이 다되어 우리 일행은 버스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런데 세 사람은 성물방에 들려 물건을 사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헤매다 좀 늦게 도착했다.
저녁엔 그동안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 줄 행복한 이틀밤을 묵었던 비엔나 피라미드 호텔로 이동했다. 특수단체들이 이용하는 최고급 호텔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침대도 편안했고 공간도 넓어 그동안의 불평불만을 말끔히 날려 준 곳이다. 호텔은 2층으로 ㅁ형식으로 룸들이 있고 안쪽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조식으로 이동하기 전에 카메라에 담았다. 식당은 내부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쭈욱 걸어갔는데 상당히 컸다. 중국인들이 다녀간 자리를 정리하길 기다려 식사를 마쳤다. 식사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여행 6일 차 동유럽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의 여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날이다. 쉔브른 궁전을 가는데 다행히 날이 쾌청하다. 그동안 비도 오고 날씨가 꾸물거려 그랬는데 오늘은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 상당히 보기 좋았다.여행할 때는 날씨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어쨌든 날이 맑고 화창해야 좋다. 더구나 오늘은 중요한 곳들을 들를 예정이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것만으로 기분이 한결 up 되었다.
쉔부른 궁전 전경
쉔부른 궁전 뒤 정원
겉과 속이 다른 쉔브른 궁전
쉔브른 궁전은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궁전 중의 하나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다. '아름다운 샘'의 뜻을 가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음악신동 모차르트가 6살 때 궁전에 초대받아 피아노를 연주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외관의 소박함과는 달리 궁전 내부는 호화로운 로코코 양식으로 18세기 후반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자기, 칠기, 가구, 회화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궁전 안에는 각 인물들의 초상화와 극장 예배당을 비롯하여 1441 개의 방이 갖춰져 있으나 현재는 45 개 방만을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앞쪽은 공사로 인해 어수선했지만 뒤쪽은 나무와 꽃들을 잘 가꾸어 놓은 정원들이 여러 개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궁전 앞에서 크리스마켓이 열려 한겨울에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정원을 돌며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점심식사로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식 불고기 아까끼고 벤또로 식사를 했는데 1인분씩 작은 소반에 정갈하게 나왔다.
점심식사 소고기 벤또
이후에 벨베데레(아름다운 경치뜻) 상궁 궁전에 전시된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과 에곤실레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화가로 19세기말~20세기초에 활동한 화가이다. 입맞춤 즉 키스(The Kiss)로 유명한 클림트의 그림을 원화로 볼 수 있다니 감개무량하였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
에곤실레 작품
구스타프 크림트와 에곤실레 작품
원본의 그림은 예상보다 색감이 화려하진 않았고 담백하니 깔끔했다. 이날도 <키스>의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오스트리아 현지 가이드가 미술관 내부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우리들을 안내했다. 키스의 주인공은 그가 사랑했던 연인 에밀리 플뢰게라고 전한다. 클림트는 사랑의 본질은 금과 닮았다고 생각해 영원히 변치 않는 특별함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그밖에 구스타프 크림트의 다른 여러 작품도 볼 수 있었는데 그림의 구성과 색채의 섞임이 뛰어났다. 클림트는 그의 대표작 사랑했던 여인과의 <키스> 작품을 통해 오랫동안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20세기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작가 에곤실레 작품도 있어서 같이 감상하면 좋다. 에곤실레의 작품은 스승이었던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작품의 곡선미와 정교함이 뚜렷하다. 작품들을 다시 한번 눈과 마음에 스캔하고 돌아 나왔다.
비엔나의 상징 슈테판 대성당
옛 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슈테판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비엔나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며 12월 31일에는 시민들이 이곳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를 상징하는 건물로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적이다. 12세기 중엽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던 작은 교회지만 14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화재로 인해 내부가 소실되는데 국민 성금을 모아 1948년 복원된 것이다.
슈테판 대성당
지붕의 모습과는 달리 성당 외벽은 고딕양식으로 상당히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성당으로 들어가 구경했는데 무척 호화로웠다. 한쪽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각자 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이후에 갔던 곳이 호프부르크 왕궁이다. 100여 년의 공사를 거쳐 1220년경에 건축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랜 역사와 함께 13세기부터 겨울 궁전으로 이용되어 왔다고 전한다. 구왕궁에는 왕실의 보물관, 성당으로 사용 중이고 신왕궁은 대통령의 집무실과 박물관으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18개의 건물과 54개의 출구 2900개의 객실로 '도시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비엔나 음악회에서 외친 bravo
열숙이들은 동유럽 선택관광에 모두 참여를 신청했기 때문에 가이드 수고비와 함께 320유로를 더 지불했다. 총 4가지가 있었는데 프라하에서 엔틱카(40유로) 타는 것과 호엔장츠부르크성 푸니쿨라(30유로)를 탑승하고 올라가 고성관광을 하는 거였다. 그리고 잘츠카머구트 유람선과 케이블카(80유로) 약 2시간에 걸쳐 탔다. 선택관광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우리들을 설레게 했던 것은 선택관광 중에 하나였던 비엔나 음악회(80유로)에 가는 것이었다.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오페라 가수들이 눈앞에서 공연하는 걸 감상할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120석 규모의 비엔나 작은 음악회였는데 가이드님이 사전에 좌석 예약을 해 주었다. 운이 좋게도 가장 잘 보이는 로얄석에서 오페라 가수들의 뮤지컬 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들을 눈앞에서 그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으니 훨씬 공감과 감동이 되었다. 옆자리에 한국에서 신혼여행을 왔다는 부부는 성악을 전공해서 관심이 많아 찾아왔다고 했다. 중간에 잠시 휴식 시간에 와인과 주스 중에 한잔씩을 선택해 마셨다. 상기된 얼굴로 브라보를 외쳤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니 정말 감사했다. 두 번으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양이 늘어나 다음 주 세 번째 발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입국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함께 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