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를 보았다. 제목 <저 멀리, 나를 찾아(Faraway)> 작품은 넷플릭스 영화로 독일의 중년 여성이 가정에 소홀한 남편에게 실망하고 크로아티아 섬으로 행복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사랑과 인생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바네사 요프가 감독을 맡았다. 주로 영어 대사로 진행되지만 독일어, 크로아티아어, 터키어가 등장하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배우 나오미 크라우스가 튀르키예계 독일인 제이네프를 연기한다. 촬영지는 크로아티아의 솔타(Šolta)와 브라치(Brač) 섬이라고 한다. 49세의 제이는 식당을 운영하는 남편 일리아스와 사춘기의 딸 피아, 그리고 아내와 떨어져 살았던 아버지 도루크와 살아간다. 친정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던 딸 제이는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어야 하지만 긴장되고 떨려서 읽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써 놓은 추도사를 남편 일리아스에게 대신 읽어 줄 것을 요청한다. 알았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장례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은 남편 때문에 당황하고 실망해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간다. 그때 남편은 주방에서 신입 셰프 노라와 밝게 웃고 노닥거리며 시계가 고장 나서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신나서 웃고 말했던 남편을 보고 실망하여 뛰쳐나오고 사장님 잘못이 아니니 뭐라고 하지 말라는 노라의 항변을 듣게 된다.
신입 셰프와 남편 일리아스
그 웃음, 너무 하잖아
당신을 5분 동안 십 대처럼 느끼게 해 준 여자가
엄마 장례식장에서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보다
중요했어?
장례식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사원과 웃고 떠들고 즐기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심란했을 제이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현실도피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독일에서 멀리 떨어진 크로아티아의 친정 엄마가 유산으로 남겨준 집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바닷가 오지였는데 버스와 배를 갈아타면서 어렵게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남자가45년째 살고 있는 요시프(고란 보그단 배우)였다. 잠결에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깼고 밖으로 나온 제이는 이곳이 크로아티아 바닷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45년 전 요시프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 집안 사정으로 제이 엄마에게 15년 전에 집을 팔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와서 살기 전까지는 요시프가 살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집을 팔아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제이와 집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서 살기를 원하는 요시프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렇치만 제이도 경치 좋은 바닷가 집과 주변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동안 집안 살림에 억눌렸던 숨통이 트이게 된다.
크로아티아 바닷가 집
"사랑이란 바보짓만 안 하면 삶은 훨씬 심플하다"
젊은 부동산 업자와 실컷 술을 마시고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길에 넘어져 누운 제이를 요시프가 일으켜 둘러메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다. 집에 오자마자 숨이 안 쉬어진다며 제이가 올인원을 벗겨 줄 것을 요청하고 늘 올인원 속에 갇혀 지내던 제이를 위해 요시프는 그것을 태워 버린다. 이튿날 불에 탄 올인원을 들고서 방화라고 들이대지만 사실 제이도 홀가분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식사가 보기 좋았다.요시프는 제이가 부동산 가격을 물어보고 내어 놓은 것에 반감을 가졌다. 이대로 완벽한 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이는 어두운 집안 때문에 투수객들에게 안 좋다고 했다. 부동산 업자는 이 집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부추겼다. 제이는 자신이 주문한 냉장고를 요시프가 취소했음을 알고 그의 속옷을 태워버린다. 그리고 사진을 보며 엄마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요시프는 삼촌의 말을 빌어 이 섬의 모든 집엔 영혼과 역사가 깃들어 있다면서 미래 세대의 삶을 망치려면 부수어도 된다고 말한다. 어느 날 제이는 요시프가 바다를 바라보며 다른 일행과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아름다운 소리에 매료되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요시프는 낚싯배에서 제이에게 생선회를 만들어 주면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아내는 동생과 바람이 나서 미국에 갔고 둘은 차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제이는 엄마가 물려준 집을 거액에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남편과 통화한다. 그러면서 식당에 돈을 투자하자고 제안했지만 남편은 젊은 셰프와 사귀고 있어 어렵다는 답변을 들려준다. 실망한 제이는 위치 추적도 꺼 버리고 물속으로 빠져 버린다. 이때 너무 실망하여 '자살을 했나?' 생각했는데 잠시 후에 물속에서 올라왔다. 식음을 전폐한 제이에게 요시프는 음식도 가져다주고 위로로 건넨다. 그러던 제이가 어느 날 헤마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놀란 부동산 업자와 요시프가 막아 봤지만 햇빛을 받고 싶다고 벽에 크게 구멍을 내고 창문을 달기로 한다. 술 마시는 중에 부동산 업자가 벽을 부수는 모습을 핑계로 제이에게 키스하려고 하자 요시프가 마크롱에 빗대며 그만두라고 경고한다. 세상의 모순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제이에게 요시프는 보여줄 게 있다며 제이 어머니 수첩을 건넨다. 요시프 삼촌과 제이 어머니는 같은 학교를 다녔고 어머니 옛집도 보여 준다.
요시프와 행복한 시간들
" 그대들의 심장은 스펀지인가? 주먹인가?"
요시프는 집을 팔 거면 마당도 내주겠다고 했다. 제이는 노트를 보았고 거기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빼곡했다. 아빠를 좋아했던 제이에게 엄마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했다. 엄마의 간절한 바람대로 제이는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 것이다. 제이와 있을 때 죽었다던 요시프의 동생이 찾아왔다. 요시프는 숨었고 동생은 집을 사겠다고 했다. 거액을 주고 사려고 했던 사람은 요시프의 동생이었으나 안 팔기로 한다. 제이는 요시프에게 주먹 같았던 심장이 이제는 펼친 손처럼 되었다고 고백했다. 둘은 찐한 시랑을 나누었고 이튿날 요리를 만들어 먹고 있을 때 제이 딸이 들이닥친다. 그러나 제이는 딸에게 충격적인 장면이기보다 엄마의 행복한 표정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했다. 딸은 엄마가 할머니처럼 떠난 거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지만 껴안고 화해했다. 이후 제이 남편도 요시프에게 찾아오고 돌아온 동생에게 일격은 가하며 싸움판이 되었지만 모두들 서로를 이해하고 제자리를 찾게 된다. 남편은 결혼반지를 보여 주고 다시 살자고 원했다. 제이는 이미 반지는 던져 버렸고 단칼에 거절했다. 제이는 엄마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고 가족에게 소홀했던 엄마를 이해했다. 제이는 요시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가장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종종 찾게 되는 것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이 내 곁을 떠나도
특별한 무언가를 남긴다.
주인공 제이는 늘 몸에 꽉 끼는 코르셋을 입고 있었다. 작고 통통한 몸에 입은 코르셋은 아주 답답해 보였다. 그런데 관계를 갖던 날 코르셋을 과감히 벗어던졌고 요시프가 불에 태우게 된다. 코르셋을 태운 건 자유와 사랑을 주고 싶었던 요시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처음 크로아티아에 왔을 때 제이는 45년을 살았던 요시프 때문에 자신의 집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던 제이는 요시프와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요시프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되었지만, 부딪쳐 보면서 진심과 좋은 사람임을 알게 된다. 아내가 동생과 미국으로 떠나 죽었다고 고백했던 건 모든 걸 잊고 싶었고, 그리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다 죽었던 동생이 나타나 집을 사겠다고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제이는 요시프의 반대에는 불구하고 원하는 대로 벽을 부숴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를 마련했다.
벽을 부순 제이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
남편과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미래를 계획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실망만 하게 된다. 젊은 직원 세프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는 남편에게 제이는 크게 상심한다. 더 이상 남편과의 관계에 희망은 없었을 때 제이가 위치추적 장치까지 빼 버리고 바다에 빠질 때 자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수영을 잘했던 제이였기에 다시 물 위로 떠 올라 다행이다. 남편에게 크게 실망한 것은 식음을 전폐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때 요시프는 먹을 것을 해다 주고 진심을 다해 제이를 보살펴 준다. 제이는 몇 날 며칠을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굳건히 지켜갈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보다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요시프와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49살의 나이에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참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제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크로아티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은 매력적이고, 소박한 일상에 녹아드는 모습은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영화에서 제이 엄마의 원피스 입은 사진이 여러 번 등장한다. 엄마가 가족을 떠나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듯이 제이도 자신의 꿈을 펼쳐본다. 특히 함마로 벽을 부수는 장면이 참 특별하게 다가왔다. 가족들에게 치여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살았던 중년의 여성 제이에게 가장 원했던 건 자유였을 것이다. 제이는 어둡던 집안에 햇볕을 들이려 벽을 부수는 것으로 원하던 것들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아름다운 바다를 화면 가득 담아냈는데, 경치 좋은 곳으로 초대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제이의 모습도 요시프와 사랑에 빠지면서 여성스러움과 매력이 넘치고 적극적이고 행복한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면, 그리고 잠시나마 일탈을 꿈꾸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드린다. 영화로도 충분히 대리만족을 얻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제이의 가족들과 요시프의 가족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사실 현실감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즐겁게 음식으로 화합하며 마지막 선택은 제이의 몫으로 확실하게 매듭을 지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 두브르브니크
제이는 남편의 외도로 엄마가 물려준 집이 있어서 크로아티아를 찾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되지 않지만 영화 초반에 아버지의 실없는 말투와 행동들이 좀 거슬렸다. 멀리, 나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찾은 제이의 행동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방향을 찾은 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아티아에서 촬영한 영화로 인해 5년 전의 여행했던 때를 소환해 본다. 2018년 4월 말에 열숙모임에서 발칸 세르비아,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4국을 갔었다. 발칸 쪽의 푸른 하늘과 청정한 공기의 흐름이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가톨릭 성지 메주고리에 방문과 '아드리아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크로아티아 두브르부니크의 도시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푸른 바다 위에 붉은색 지붕들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오후에 언덕 위로 올라가 해변에 그림처럼 펼쳐진 두브르부니크의 낯의 모습도 보고 밤의 야경까지 보게 되었는데 둘 다 아주 아름다웠다. 당시엔 여행의 글을 써 놓지 않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간간히 기억이 나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큰 에피소드 외에는 거의 사라지고 없어 아쉽다. 당시 '여행은 다리 떨릴 때 다니지 말고 가슴 떨릴 때 대출을 받아서라도 가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웃음이 터졌던 적이 있다. 그 말이 맞다.열숙의 모임에서 간간히 함께 여행을 하며 나를 찾아 떠났던 시간들이 있어서 더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고 즐거웠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세상 속에서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