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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Sep 12. 2023

영화 리뷰 - 《 영웅 - 뮤지컬 》

한국 2022년 12월 / 감독 -윤제균  안중근역- 정성화 /120분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그려냈던 뮤지컬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어 2022년 12월 개봉되었다. 뮤지컬에서 연기했던 정성화 배우가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뮤지컬 공연이 현장감이 살아 있었다면 영화 <영웅>은 시대적인 배경과 공간을 광활하게 구현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뮤지컬의 넘버들을 잘 살렸다는 평가와 배우들의 연기력 또한 극찬을 받았다.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고 326만 명을 동원했던 작품이다. 이영화는 안중근이 1907년 가족을 떠나 러시아에서 독립투사들과 대한 독립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를 담았다. 수많은 독립 애국지사들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희생했던 지난날을 되짚어 볼 수 있으며, 그 아픔을 잘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1909년 3월 러시아 연추에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는 각오로 독립투사들이 뭉쳤다. 그들은 자신의 네 번째 손가락 마디를 절단하고 결의를 다지며, 대한 독립을 위해 뜨거운 피로 맹세한다. 그리고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3년 이내에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러시아 블라디 보스토크로 향했다.

안중근 어머니와 가족
독립 운동가들의 다짐

독립운동을 위해 집 떠나는 안중근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은 로마 교황청에 다녀온다고 아내와 어머니(나문희 배우)에게 거짓으로 통보하고 독립 투쟁을 위해 러시아로 가려고 한다. 아내 아려에게 안중근은 여행이라 둘러 대지만 독립운동하러 간다는 걸 눈치챈다. 안중근은 이미 독립자금 댄다고 하며 쌀집과 계몽운동을 해서 망하고 게다가 학교도 운영하다 망했다. 가족은 등한시하고 대한제국 독립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중근 남편이 얄밉기만 하다. 아려는 "나라가 해준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안달이냐?"라고 울며 따진다. 어머니는 생일을 앞둔 중근이 안쓰러워 밥 굶지 말고 주님께 의지하라는 당부 하셨다. 중근은 곧 돌아오겠다며 어머니와 아려, 그리고 어린 자식들에게 작별하고 고향을 떠나온 것이다.


안중근은 1908년 함북 경흥 국내진공작전이 펼쳐지던 총성 현장에 와 있다. 그는 2차 국내진공 작전에서 성공하여 잡아둔 몇 멍의 일본군 포로들을 독립군들에게 요청하 풀어준다. 하지만 후에 그것을 계기로 일본군들로부터 대대적인 습격을 받아 퇴진을 당했야 했다. 의용군 기지에서 안중근은 의용군이 된 배고픈 소년에게 자신의 주먹밥을 주었다. 안중근은 정도 많고 인간 생명을 중시하였다. 그곳에서 뜻을 같이 했던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마진주(박진주) 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폭탄이 터지면서 숙소는 불길에 휩싸여 쑥대밭이 된다. 점점 커지는 함성에 멀리 보니 수많은 일본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때 방아쇠를 당겨 그들을 쏘아 쓰러트렸다. 너무 많은 일본군이 진입하자 후퇴 명령을 내린다. 소년은 전쟁터에서 죽었고 중근도 포탄에 쓰러지고 동료들의 울부짖음과 죽음을 보고 고통스럽다. 안중근은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전쟁 포로를 살려준 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유키코 (설희) - 배역 김고은

명성황후 시해와 궁녀 설희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로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했고 양원제 의회를 확립했다. 일찍이 영국에 유학하여 선진 문물을 배운 뒤 귀국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고, 미국과 유럽을 순방하는 등 경험의 폭을 넓히면서 고급 관료로 승진했다. 초대 내각 총리로 일본이 친황제를 바탕으로 한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으며, 외교에도 능했다. 을사조약 늑약 후에는 조선의 초대 통감이 되어 일본이 강제로 한반도를 병탄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출처-다음


일본 동경이다.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술집에서 일하는 유키코를 마음에 들어 했다. 아름다움과 춤추는 재주를 다 가졌다고 칭찬했다. 유키코는 시중을 들면서 이토의 전략을 엿듣는다.  유키코의 본명은 설희(김고은)이고 명성황후를 모셨던 궁녀였다. 명성 황후가 왜군에 의해 화형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설희는 오열하며 다짐했었다. 이후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1909년 러시아 블라디 보스토크 대동 공보사( 한인 신문사)에 취업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환심을 사려고 친한국 정책을 펴고 있지만 외교권을 박탈하고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대 통감부가 된 이토 히로부미 조선의 왕실을 모욕하였고 조선지배 계획도 노골화시켜 갔다. 이를 알고 있는 안중근이 많은 사람들에게 열변을 토하며 일본의 야심을 규탄하고 있을 때 일본 형사가 다가온다. 재빠르게 달아난 안중근은 일본 경찰의 추격을 피해 지붕 위에서 추격전을 펼쳤다. 높은 지붕 위에서 어떻게 촬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동료들이 끄는 마차로 몸을 날려  순간 위기를 모면했다.

유키코(설희)와 이토 히로부미

독립정보원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러 간다는 정보를 엿듣게 된다. 그래서 안중근에게 이 사실을 알려 암살계획을 세우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파티에서 샴페인 잔을 들고 조선을 발판 삼아 중국을 손에 넣을 꿈을 노래했다. 설희는 한 줌의 재로 사라질지라도 조국을 향한 사랑을 꿈꾼다는 노래를 부른다. 안중근은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인 이토를 처단하기로 결심하고 지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토는 하얼빈 시찰차 군대를 소집했다. 이토는 아시아를 통일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었다.  이토가 하얼빈에 10월 26일 9시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거세 날짜가 잡혔다. 안중근은 이토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게 될지 궁금해했다.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염탐 정보는 설희가 맡았다. 안중근은 이토가 하얼빈 갈 때 정차하는 곳에 미리 가 있기로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일행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심하게 다졌는데 경찰은 안중근이 어딨는지 말하라고 다그쳤다. 마진주는 일본 총에 맞아 숨을 거두게 된다. 이토는 기차에서 아시아 최강이 될 것을 논의한다. 러시아에 만주를 내어주는 대신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를 인정받으려 했다. 조선이 마치 일본과 합해 더 부강해진다고 했다. 설희는 안중근에게 통신을 보냈고 이토를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하게 된다. 일본 경찰은 설희 배후에 누가 있나 심문하기로 한다. 설희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옥중에 갇혔다. 새벽에 안중근은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다짐했다. 중국 채가고 역에서 이토를 살해할 기획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죽고 안중근은 살인혐의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고 숨어서 총을 겨누던 독립투사 두 사람은 일본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설희는 갇힌 기차 안에서 나와서 떨어져 자살한다. 중국 하얼빈역 거사의 날 1909년 10월 26일이다. 이토를 맞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이토 히로부미가 내리고 안중근은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이토 당신의 헛된 꿈도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꿈도 모두 끝이라며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았다. 적중했으며 이토는 죽었고 안중근도 붙잡혔다. 안중근은 뤼순 형무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전쟁포로가 아닌 살인혐의로 일본 법정에 섰다. 그는 대한제국 황해도 해주 출신이며 의병 군 참모 중장이라고 밝혔다. 대한 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서 살해 이유를 자백했다. 일본은 조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안중근은 그게 과연 조선을 위한 일이냐고 되물었다. 안중근 아내는 형제들에게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한국인 변호사를 원했다.

재판받는 안중근
안중근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
사형수 안중근

1910년 2월 18일 안중근이 법정 재판을 받았다. 안중근은 당당하게 법정에 서서 동양 평화를 어지럽히고 조선의 독립을 저해한 이토 히로부미를 의병대 중장으로 저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은 일본 재판소에서 형사범으로 재판받을 의무가 없으며 독립전쟁으로 이토를 죽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자신은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 포로라고 주장했다. 아려 아내는 판사, 변호사, 방청객도 일본인데 , 이게 무슨 재판이냐고 울부짖었다. 다시 재판이 열렸고 안중근은 이토를 살해한 이유를 이렇게 노래로 불렀다. 대체 누가 죄인인가 나라를 위해 싸운 우리 과연 죄인인가?


1, 대한의 국모를 살해한 죄

2.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3. 대한의 황제를 폭력으로 폐위시킨 죄

4. 을사늑약과 정미늑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5, 무고한 대한의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죄

6. 조선의 토지와 광산과 산림을 빼앗은 죄

7. 일본 은행권 화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보호를 핑계로 대한의 군대를 강제 무장 해제 시킨 죄

9. 교과서를 빼앗아 불태우고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교권을 빼앗고 유학을 금지한 죄

11. 신문사를 강제로 철폐하고 언론을 장악한 죄

12. 대한의 사법권을 동의 없이 강제로 장악 유린한 죄

13. 정권을 폭력으로 찬탈하고 대한의 독립을 파괴한 죄

14. 대한 제국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원한다며 거짓말을 퍼트리며 세계인을 농락한 죄

15. 헌재 대한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천왕을 속이고 밖으로는 세계 사람을 모두 속인 죄

16. 동양의 평화를 철저히 파괴한 천인공노의 죄


대체 누가 죄인인가?


안중근은 사형성고를 받았다. 우덕순은 3년 징역, 조도선과 유동하는 각 징역 1년 6개월 처해졌다. 절차 없는 사형선고라 항소하자고 주변사람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인 변호사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형이 바뀔 리가 만무였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어머니께 편지를 받는다. 항소(일본에 구걸) 말고 떳떳하게 받아들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주변에선 항소해도 괜찮을 거라 했지만 그는 그만두었다. 세 아이로 아비로 이토 히로부미를 쐈는데 자식들은 기도하는 손이길 바랐다. 그게 동양 평화의 마음이라고 밝혔다. 안중근은 일본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법정은 제대로 된 판단을 통한 재판을 하지 않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로부터 1910년 3월 26일 여순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으로 순국할 때까지 당당하게 공판에 임했다. 현재 안중근 의사 묘소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와 함께 있지만 아느이사 묘소는 가묘라고 한다. 하얼빈에 묻힌 뼈를 아직도 이장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이영화는 꼭 보고 싶어 가까운 극장에 가서 혼자 보았다. 뮤지컬을 재구성해 만든 영화라 스케일이 달랐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면은 영화 내용의 답답한 상황과 달리 가슴이 활짝 열렸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의사에게 후손으로 경의를 표한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그런 분이 계셨기에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중간중간 노래로 더 메시지 전달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었다. 특히 독립군들은 주방장과 만두 노래를 불렀을 때이다. 뮤지컬로 서로 주고받는 대사는 감칠맛 나고 좋았다. '고달픈 청춘이여~ 먹고 먹어도 배고픈 청춘이여~ 어머니가 그립고 따뜻한 정이 그립다'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만두 하나로도 이렇게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서로 하나 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출연했고 힘을 보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래 연습을 정말 많이 했을 거라는 게 느껴졌으며 매사 최선을 다하는 게 보였다. 러시아 설원을 배경으로 촬영된 화면과 쏙쏙 파고드는 뮤지컬로 대작이었다는 평가를 해본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위해 독립을 외치던 순국선열들을 기억하며 더 단합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시민이 되어야겠다.

https://youtu.be/ZrGKXXFWSb0?si=7D-Otb_Pjry7wcha

영화 영웅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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