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께서 영면하시다 1

2026년 2월 27일 23시

by 신미영 sopia

시아버님께서 향년 89세의 연세로 2026년 2월 27일에 선종하셨다. 요양원에서 1년 반 정도 계셨고 일주일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다. 뇌경색이 갑자기 와서 말씀도 제대로 못하시고 목 넘김도 안 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우리 가족도 아버님의 죽음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10년 1개월 만이다. 당시 어머님께서는 당뇨 합병증인 염증으로 3개월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뜨셨다. 그땐 더더구나 어머님의 죽음은 생각도 못하던 때여서 절망은 상당히 오래 지속이 됐었다. 그중에 혼자 남겨진 시아버님의 문제가 가장 컸다. 다행인 것은 요양보호사분이 아버님 댁으로 오셔서 8년 6개월을 관리해 드렸다. 그러다가 치매와 거동문제로 생활자체가 힘들어져 형제들끼리 상의하여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 후 그런대로 적응하시던 시아버님께서 6개월 전부터 치매 증상이 더 심해지셨다. 급기야는 폭력적인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달려가기도 했다. 설이 지나고 삼일 째 되던 날 요양원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님이 좀 이상하다면서 어제 조식 이후 식사도 못하고 어눌한 말씀과 목 넘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가서 보니 '무슨 말씀인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요양원 간호사분도 병원을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우리는 119를 불렀고, 근처에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병원으로 갔다. 접수 후 응급실에서 불편한 상황으로 둘째 동서네와 대기했다.


입원 후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의사 진단으로 CT 조형술을 찍었는데, 소견상 나타난 증상은 없었다. 폐에 가래가 끼고 뇌경색 증상이 있어 아무래도 MRI를 찍어봐야 정확한 것을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찍고 기다려보니 담당 의사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아버님이 오른쪽 부분에 뇌경색이 온 거라고 했다. 뇌의 1/3이 색깔이 변해 있었는데 공기가 차단되면서 뇌세포가 죽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에 되돌리기는 어렵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한다. 그래서 입원을 했고 집중치료실로 가게 되었다. 이곳엔 면회가 하루에 오전 9시, 저녁 7시에 가능하다. 면회당 두 사람만 신청이 가능하고 한 사람씩 나누어 환자를 면회할 수 있다. 하루반에 걸쳐 우리는 번갈아가며 면회하였다. 병원에서 상태를 확인 후 2월 23일(월)에 아버님은 1인실 임종실로 옮겨졌다. 주치의는 집중치료실에서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하면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어머나, 어떡하지?" 우리는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뇌경색으로 인해 병원을 온 것도 황당한데 임종실로 가라고 하니 처음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형제들에게 통화해서 사실을 알렸다. 둘째네와 서울 막내네도 이틀을 연속 다녀 갔는데 다시 소집했다. 작은 어머님 가족과 고모님네 가족분들께도 사실을 알렸다. 다들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1인실로 우리끼리만 있으니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말도 편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제대로 눈 뜨지 못하고 말씀은 못하셔도 귀는 열려 계시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들을 전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편안히 잘 가세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혹시 서운한 게 있으면 다 풀고 가세요." "이제 어머님한테 가셔서 편히 지내세요." 같은 말들이다.

뇌경색으로 입원

아버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로젓기도 하셨다. 정확지는 않지만 큰아들을 부르기도 하고 눈을 떠서 바라보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자 아버님은 숨을 거칠게 쉬며 코를 심하게 고는 것처럼 잠을 주무셨다. 콧줄로 숨 쉬던 것에서 좀 더 센 산소마스크로 바꾸었다. 게다가 주사와 단백질 등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우리는 연신 아버님 귓가에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괜찮은지를 여쭙고 아버지, 아버님을 불러 드렸다. 부르는 소리에 잠시 반응을 하다가도 이내 잠들어 버리셨다. 안 되겠다 싶어 가족 상의 후에 오전에 성당에 전화를 걸어 병자성사를 신청했다. 같은 날 성모병원에서 고인의 입관이 있어서 주임 신부님께서 상당히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오셨다. 사정을 뻔히 알지만 시아버님의 상태가 좋지 않고 언제 어느 때 숨을 거두실지 몰라 어쩔 수가 없었다. 오후 2시가 좀 안 돼서 밖을 내다보니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드릴 성물을 갖고 도착하셔서 임종실로 안내해 드렸다. 신부님께서는 기도와 병자성사를 정성스럽게 주셨다. 누워계신 아버님께서 눈도 못 뜨셨지만 팔과 다리를 계속 움직이셔서 둘째 동서가 잡고 있었고 꽤나 긴 시간을 기도하셨다. 감사의 뜻으로 준비한 봉투를 드렸다.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마치고 가신 후 아버님께서는 숨소리가 거칠긴 했지만 편안하게 잠을 주무셨다. 가끔 손발을 만져 봤으나 차갑진 않았다. 안색도 괜찮으시고 숨도 잘 쉬시는 듯했다.


https://youtu.be/-WQzRvQ2EnE?feature=shared

증손주들의 세배 인사

이튿날 외숙모님께서 돌아가섰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날에 아버님 일로 전화를 드렸을 때 받지 않으셨는데, 설마 70대 중반의 숙모님이 돌아가실 줄 몰랐다. 평소 높던 혈압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하니 저세상으로 가는 데는 순서가 없는 듯했다. 2월 하순임에도 화요일은 눈이 많이 내렸다. 시아버님의 상태가 오래 자리를 비우기도 어렵고 인천까지 가기는 무리였다. 서울에 있는 막내 시동생에게 대표로 다녀오라 하고 우리는 이튿날 제천 백운 장지에 가기로 했다. 시어머님은 친정에서 딸 넷에 외동아들인 집안에 장녀로 사셨다. 외동아들 외삼촌은 12년 전에 돌아가시고 외숙모님이 두 자녀를 키우며 치킨집을 운영하며 생활하셨다. 상당히 호탕하고 목소리도 크고 뭐든 적극적이며 긍정적이고 정도 많으셨다. 게다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셔서 술도 잘 드셨다. 남에게 베푸는 것을 유난히 잘하셔서 외갓집의 어른으로 든든하고 보기 좋았다. 외숙모님은 특히 시어머님께 잘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아버님께 많은 애정을 갖고 베풀곤 하셨다. 외숙모님의 심장마비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은 외갓집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튿날 큰딸과 둘째 동서네 부부에게 아버님을 맡기고 백운으로 향했다. 시어머님 살아계실 때 가끔 갔던 곳이라 동네는 좀 익숙하다. 한참을 산 위쪽으로 올라가 기다렸다. 화장해서 오느라 더 시간이 지체되고 길도 많이 밀려서 거의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이제 40대가 된 남매는 외숙모님의 죽음을 믿기 어려운지 연신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쏟았다. 수목장으로 해서 장례 절차를 마치고 제례를 드렸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는 걸 보고 우리부부는 인사드리고 그곳을 살며시 나왔다.


임종실에 계셨던 시아버님은 하루를 주무시는 듯하다가 전날 오후에는 팔을 휘저으시고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셨다고 한다. 저녁에 임종실에서 잠을 잤던 남편도 아버님께서 소리를 지르셨다고 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병실에 가보니 산소호흡기를 끼고 여전히 주무시는 듯했다. 임종실은 72시간 한정된 시간만 사용할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간병인이 돌봄 하는 공동 병실로 이동했다. 중환자 남자 공동 병실엔 한자리가 비어 있어 그곳으로 옮겼다. 다리나 팔은 여전히 가끔 움직임이 있고 눈은 뜨지 못하셨다. 이튿날 오후에 가서 시아버님의 상태를 보니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안색이 좀 없고 손발이 좀 찬듯했다. 사진을 찍어 남편과 동서들과 공유하고 간병인에게 시아버님을 잘 부탁드리고 병원을 나왔다. 잘 견뎌 내실 거라 믿으며 한시름을 놓았다. 저녁에 성당을 다녀와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쉬고 있을 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위독하시다는 응급 전화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없었다. 동생들에게 연락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임종실로 옮겨 놓은 상태였고 시아버님 상태는 정말 안 좋으셨고 거의 숨이 멎은 듯했다. 우리는 아버님을 불렀고 끝내 미동도 없으셨다. 그렇게 의사는 밤 11시에 사망진단을 내렸고 장례식장 의료원으로 이송하였다. 그리고 친척들에게 어떻게 알릴지에 대해 논의하느라 늦게까지 고심하며 문구를 정리하고, 장례식장에서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새벽 2시에 헤어졌다.

시아버님 사시던 집 리모델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