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일 개봉 / 감독 장항준. 유해진, 박지훈 / 117분
2026년 2월 초 개봉된 누적 관객 수 1,100만 명을 넘은 화제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일명 왕사남이 있다. 천만이 넘은 건 한국영화로는 2년 만이고 25번째라고 한다. 우리 부부도 전날 영화 예약을 하고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를 갔는데, 220석 앞줄까지 관객들로 채워져 있어 인기를 실감했다.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연출작으로, 영화시작을 하면서 역사적 사실에 가미를 한 것이라고 자막으로 알려 주었다. 내용은 세조 찬위 이후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어린 왕 단종(이홍위)과 그를 지키는 촌장 엄흥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배경은 1457년, 숙부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왕 이홍위(박지훈 분)는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요즘 청령포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편안히 쉴 수 있는 장소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산골 중에 산골이며 헤엄을 칠 수 없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유배지였을 것이다. 이런 곳에 어린 단종이 유배를 당했으니 역사적으로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영월의 가난한 마을 촌장인 엄흥도(유해진 분)는 처음에 마을의 안위를 위해 유배지 관리 역할을 자처하지만, 삶의 의지를 잃고 절망하는 어린 왕을 보며 점차 연민과 충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권력의 실세 한명회(유지태 분)는 단종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압박하고, 그 와중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금성대군의 역모 사건이 터지며 마을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엄흥도( 배우 유해진)는 마을 사람들과 노루를 사냥하러 갔다가 험한 산에서 떨어지게 되어 혼자 남게 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찾아간 게 잔치를 벌이던 마을이었다. 사람들이 쌀밥에 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부러워한다. 당시에 고기와 쌀밥은 일반 백성은 근접할 수 없는 양반들의 생활이었을 것이다. 사연은 유배온 양반이 마을에서 아이들도 글을 가르치고, 유배가 끝나자 한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자란 아이들이 출세를 하고, 먹을 것을 풍족이 보내줘 잘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엄흥도 촌장은 마을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힘을 얻은 엄흥도는 한양의 선비가 청량골로 유배를 올 수 있도록, 한명회를 찾아가 간곡히 청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결국 유배를 오게 만들었는데, 그게 쫓겨난 어린 왕 단종 노산군( 배우 박지훈)이었다.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데 뗏목을 이용해 물을 건너다 빠지게 되고 간신히 청령포에 이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유배를 온 분이 누군지도 알지를 못했고, 그분이 왜 여기에 왔는지는 더구나 몰랐다. 한명회는 노산군이 이곳에서 2주도 못 견딜 거라며 단언했다. 엄흥도는 노산이 편지를 읽으러 절벽에 서 있을 때 가서 왕의 멱살을 잡고 야단치듯 다그친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걱정할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달려들자 단종이 활시위를 당겨 호랑이가 낭떠러지로 죽게 된다. 이튿날 단종이 밥과 다슬 기을 먹고, 엄흥도와 이야기도 나누게 되면서 서로 친해진다. 엄흥도는 다슬기를 본인이 꼭두새벽부터 잡았음을 강조하며 거들먹댄다.
어느 날 단종을 따르던 신하들이 찾아와 "전하"를 부르며 울부짖자, 관아에서는 우는 건 허용되지만 전하라는 호칭은 못 하게 막는다. 그들이 청령포를 향해 물에 귀한 물품을 던지자 밤에 촌장은 그것들을 거둬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한다. 사람들이 던져 놓고 간 것들을 거둬 먹는 곳에 단종이 다가 오자 깜짝 놀라면서, 마을 사람들을 소개하고 친밀해진다. 단종은 글공부를 배우고 싶어 하는 촌장 엄흥도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게 된다. 엄흥도 아들은 아이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쳤고 마을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그러나 한명회는 엄흥도 아들이 노산대군의 처소를 드나들었다는 죄목을 씌워 곤장을 치라 명했다. 엄흥도는 대신 맞겠다고 했지만 들은 척도 안 했다. 노산대군이 곤장 치는 것을 멈추게 했지만 말을 무시하며 "노산이 아직도 왕인줄 아는가 보다, 곤장을 더 치라"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노산의 눈빛이 달라졌다며 역모에 동참할 거라 부추겼다. 엄흥도에게 "노산이 죽어야 니 아들이 살고 마을이 산다" 엄포를 놓았다. 게다가 한명회는 금성대군에게 단종이 역모를 할 거라고 했다. 한명회는 단종이 아비의 귄유로 왕이 되었고, 숙부로 인해 유배를 떠났다고 강조했다. 한편 단종은 자신으로 인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다고 할 때 촌장 엄흥도는 물었다. "나도 거기에 포함하는지요?" 하고 묻는 장면에서는 애잔함을 더한다.
이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유해진과 박지훈의 명연기에 있다. 극적인 대비의 모습인 코믹함과 묵직한 감동을 오가는 엄흥도와 단중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특히 마지막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리고 박지훈은 나약한 소년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려는 왕의 위엄까지, 단종의 복잡한 심경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게다가 압도적 빌런 유지태는 이번 왕사남을 위해 100kg까지 살을 찌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위압적인 포스를 뿜어내며 '한명회'는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영화 초반에 AI로 재연한 '호랑이'와 '밥'이라는 어설프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소재는 백성들의 척박한 삶과 단종이 대면하게 되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 영화는 역사적 비극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인 울림을 주었다. 금성대군의 반란이 실패로 돌아가고 사약이 내려지자, 단종은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적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던 단종은 믿음직한 엄흥도의 손에 죽기를 청하고, 눈물을 흘리며 왕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돕게 된다. 이후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명을 어기고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러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으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역사가 지우려 했던 이름 없는 이들의 진심을 다룬 것이 이 영화의 천만 흥행 비결로 꼽힌다. 이 영화가 주는 묵직한 울림은 배우들의 절제된 대사와 강원도 영월의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사남을 찍기 위해 문경새재에 오픈 세트장이 설치했다고 한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의 주된 유배지로 알려져 있어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근래 영화가 흥행이 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리는 곳이다. 영화 속에서도 단종의 외로움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월 장릉은 단종의 능으로 실제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해 안치했던 역사적 장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큰 감동을 주고 있다. 평창 육백마지기는 호랑이가 나타나는 산길 장면을 찍었던 곳이라고 한다. 험준한 산세와 구름 위 산책로 같은 풍경이 영화 속 긴장감 넘치는 이동 장면의 배경이 되었다. 한명회의 관아 및 한양 저잣거리는 유지태(한명회)의 긴박한 정세 변화를 보여주는 시장 거리 장면이 촬영되었다. 한국영화로 모처럼의 흥행을 반기면서도 작품에 독주로 이어지는 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사들은 주로 엄흥도(유해진)와 이홍위(박지훈)의 명대사를 적어본다.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라 하였으나, 이곳에선 그저 밥 한 술에 목숨을 거는 백성이 나의 어버이 같구나." (단종이 마을 사람들의 척박한 삶을 목격한 뒤, 권력보다 소중한 '사람'의 가치를 깨닫고 내뱉는 대사)
"나를 죽이라 명한 자의 손이 아니라, 나를 유일하게 지켜준 너의 손에 죽고 싶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어명이니라." (비극적인 결말 직전, 단종이 엄흥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부탁하며 건네는 가장 슬픈 대사로 꼽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 하였으나, 내 어찌 임금을 들판에 버려둘 수 있겠는가. 내 자식들이 굶더라도 이 도리는 지켜야겠다." (엄흥도가 위험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며 남긴 말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대목) &. 인터넷 참조, 사진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