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잠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영정사진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 의료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어제 봐 두었던 호실로 갔고 두 동서네도 왔다. 거기서 친지분들과 지인들에게 부고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에 많은 일들을 해 나가려면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잠시 후에 주방을 담당할 분들이 오시고, 검은 상복도 입었다. 차려진 제상에 함께 제사를 지냈고 아침식사도 했다. 오전에는 주로 지인분들에게 아버님의 부고를 알리는 것에 애를 썼다. 점심 전에 성당 위령회와 신부님 두 분도 오셔서 연도를 바쳐 주셨다. 우리 부부도 같이 연도를 바쳤는데 신부님 두 분의 목소리가 환상적으로 잘 어울려 저절로 기도가 되었다. 신부님들께서 다른 볼일이 있어 식사도 못하고 다시 오겠다고 하며 가셨다. 차츰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연도를 바치며 인사를 나누었다. 천주교는 레지오 단원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장례 전 배당된 시간에 연도를 바친다. 평소에 시간이 될 때마다 많은 분들을 위해 연도를 바쳤다. 그런데 오늘은 시아버님을 위해 연도를 바치니 기분이 묘했다. 요양원에 계실 것만 같은 시아버님께서 언제 돌아가셔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오게 되었나?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친척분들이 속속 도착하고, 성당에서도 오고 쉬는 날이라서 남편의 지인들, 그리고 두 서방님의 지인분들이 연신 도착하여 인사를 드리기 바빴다. 신부님께서 내일 주일이라서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드릴 수 없으니, 오후 2시에 입관예절이 끝나고 이곳에서 하는 건 어떻냐고 하셔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 주시기만 한다면 우리로써는 감사한 일이다.
신부님께서 위령회원들과 입관 예절이 끝나자 연도 하던 방에다 탁자 놓고 장례미사를 준비를 해 주셨다. 연도를 바치던 룸과 식사 장소까지 가득 메워서 미사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성당 가서 장례미사를 못하는 게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신부님께 감사드렸다. 미사가 끝나고 모두들 식사하고 가도록 안내를 드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들이 차려지고 다들 맛있다고 잘 드셔서 보기 좋았다. 손주 현준이는 손님들의 신발을 잘 정리해 주었고 바쁜 삼촌들을 대신해 자리에 앉아 손님들을 안내해 주었다. 아직 5학년인데 척척하는 알아서 하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하다. 부평에서 오신 손님들, 지인분들이 줄줄이 오셨다. 오늘 아침에 급하게 알리긴 했지만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오신 분들이 많았다. '아버님께서 저 먼 길을 떠나시기 전에 많은 이들을 불러 모으셨구나' 하는 생각에 코등이 시큰해졌다. 저세상으로 가시기 전에 모두들 목소리라도 듣고 싶으셨나 보다. 저녁 후에도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다. 대형 화환은 계속해서 들어왔고 대략 세어보니 60여 개가 넘였고 작은 화환들까지 하면 70여 개가 된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버려질 화환인데 오늘 하루를 위해 거금을 들였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장례식장을 밝혀주는 꽃이라서 든든하고 좋았다. 마지막 손님은 둘째 이모 따님 부부이다. 서울에서 가게 문을 닫고 오기 때문에 늦게 왔다고 한다. 무척 오랜만에 봤는데 모처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https://youtu.be/zFk3 mIWo3 R0? si=2 Yc0 CM1X0 GBx6 WQ_
외갓집 친척분들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우리는 다른 한쪽에서 부조금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해야 실수하지 않고 꼼꼼하게 할 것 같아 막내 서방님 가족들로 구성했다. 그런데 막내네 아들의 여자친구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종일 일을 함께 했다. 사실 이런 자리에 오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저런 며느리라면 어느 집에 가거나 대환영이고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다. 넷의 콤비가 잘 맞아서 많은 봉투임에도 일찍 끝났다. 우리 부부와 둘째 동서네 부부는 빈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장례식 날은 아침 식사 후에 제사를 지내고 9시쯤 출관식을 했다. 장례식 날씨가 좋아 다행이다. 우리는 위령회원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시어머님이 모셔져 있는 천주교 가덕 성요셉 공원묘지로 향했다. 시어머님께서는 2016년 1월 30일에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갑자기 사망하셨다. 당시 79세이고 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잘 낫지를 않아서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던 중에 갑자기 찾아온 폐렴으로 인해 임종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동안 어머님이 돌아가신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우리에게 무척이나 필요한 분이셨고 정도 많았던 분이셨다. 지금도 주변 분들이 '시어머님은 인자하고 참 좋은 분이셨다'라고 기억될 만큼 주변분들에게 덕을 많이 쌓고 살아가셨던 것 같다. 이제 그런 어머님 곁으로 가시게 됐으니 아버님도 분명 좋아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 때는 날씨도 좋고 삼일절로 휴일이다. 게다가 다음날은 종일 비 소식이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우리도 장례를 치르고 다음날 편안하게 쉴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가덕 공원묘지에 도착해서 접수하고 현장으로 가보니 이미 묏자리를 파서 대기하고 있었다. 제례식에 따라서 어머님과 합장묘를 했고 우리는 편안하게 아버님을 보내 드려야 했다. 그동안 아버님 혼자 사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는데 어머님과 만나셨으니 행복하실 것이다. 자식들이 잘해 드린다고 했지만 그래도 서운한 것들이 많았을 테고, 힘도 드셨을 것이다. 이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기원해 본다. 이제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은 아버님을 중심으로 자식들이 만남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안 계시니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요양원에 계셨지만 어른으로써 중심을 잡아주던 기둥이 없어진 느낌이 든다. 풍채가 있으셨고 머리숱도 많아 밖에 나가면 다들 멋쟁이라는 소리를 들으셨다. 나름 생활력도 강하셨고 세 아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셨다. 그러나 남자라서 그런지 조금은 이기적이셨다. 성격이 급하셔서 그런지 어머님께 좀 더 잘해 주셨더라면 하는 것들이 며느리 시선으로 봐도 그럴 때가 가끔 있기도 했다. 그러나 중심을 잘 잡고 살아오신 아버님께서 안 계시니 마음이 허전하다. 다시는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고 해드렸어야 하는데, 잘해 드리지 못한 것도 죄송스러워진다. 그래서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리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편안히 잘 돌아가셨다는 생각도 든다. 뇌경색으로 인해 일주일 병원에 계셨고, 큰 고통을 못 느끼고 가셨으니 참 다행이다. 아버님께서도 열흘정도 아프다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생전에 하셨는데 어쩌면 뜻대로 되신 듯하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요즘 환절기라 그런지 주변에 한 달이면 꽤나 많은 부고가 전해진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저세상으로 가는 데는 순서가 없는 것 같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 속에서 보람 있는 생을 마감하는 걸 많은 사람들은 꿈꿀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다. 지인 중에 아버님과 동갑 나이인데 9년을 뇌경색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 자식과 같이 살면서 삶을 이어가는 분도 계신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분 중에는 6남매의 어머니로 20여 년을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가 100세가 넘은 나이에 세상을 뜨신 분도 계시다. 그런가 하면 60대 초반인데 주일에 미사를 드리고 점심 식사하러 갔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분도 계시다. 50대의 젊은 나이에 암투병을 하다가 부모 앞세워 죽은 분들도 있다. 아버님도 어머님 없이 사시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조금 젊으셨을 때는 자가용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지만 70대 중반 이후에는 거동까지 불편하셨으니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이다. 그래도 꿋꿋하게 자식들에게 기둥에 되어 주시고 안식처가 되어 주셨으니 아버지라는 존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그동안 6남매 중 장손의 장남으로, 삼 형제를 낳고 기르시면서 열심히 사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아버님. 이제는 어머님 곁에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쉬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추신 : 저희 아버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방문과 연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