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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챠밍박 Jan 16. 2022

나의 미용사 아저씨

저주받은 머리칼이 커트의 마법사를 만날 때

 결혼을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일단 적당히 다듬은 후 예식 당일 샵에서 제대로 자를 생각이었다. 예닐곱 명 정도의 미용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중 최고령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미용의자 쿠션을 팡팡 두드리며 내게 손짓했다. 뽀글 머리에 요란한 눈 화장을 한 아줌마였. 안경을 벗으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난 머리를 자를 때면 아예 명상하듯 눈을 감아버리곤 하는데, 이 날만은 어쩐지 아줌마를 신뢰할 수 없어 자꾸만 눈을 가늘게 뜨고 거울을 흘깃거렸다. 그래 봤자 뵈는 것도 없었지만.


 아줌마가 호쾌하게 가위질을 시작하자 나는 아연실색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서툰 가위질이 너무 빠르고 거침이 없었다. 그건 복싱장에 처음 입관한 방구석 파이터의 마구잡이 펀치이자, 생애 첫 면허시험에 통과한 초보 운전자의 쾌속질주였다. 나의 불안감이 혹여 연륜 있는 장인의 대범한 가위질을 오해했을까 싶어 우선 잠자코 명운을 빌기로 했다. 혼란스러운 상태로 10여분 쯤 흘렀을까. 안경을 쓰고 거울을 보니 웬 스님이 머리에 지푸라기 한 줌을 얹고 앉아있었다. 108 번뇌에 이골이 난 얼굴로. 가련한 머리통 위에 얹힌 지푸라기는 너무 힘 없이 하늘거려 마늘 위로 솟아난 수염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제기랄. 내가 말한 투블럭은 이런 게 아니라고.

 "아줌마 저 다음 주에 결혼하는데..."

 망연자실한 난 힘 없이 말했다. 그러자 아줌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결혼한다고 미리 말을 했어야지!" 하곤 이내 딴청을 피웠다. 이건 우회적 범행 자백이 아닌가.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짙은 볼터치 때문인지 아줌마의 두 볼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언뜻 연륜 있는 미용사처럼 보였던 그녀는 뒤늦게 미용 업계에 뛰어든 사고뭉치 신입임이 분명했다. 뽀글 머리 아줌마를 고용한 미용실부터 이따위 미용실이 존재하는 내가 사는 동네까지,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분별없이 아무에게나 머리를 내맡기다니 이런 멍청한 놈. 나는 마늘 수염을 휘날리며 후다닥 집으로 달아났다.


 이튿날 회사에 출근하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한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머리가 그게 뭐냐? 돈 주고 자른 거야? 사람 머리를 누가 이렇게 잘라놔? 실습생이 자른 건가? 말로만 듣던 귀X컷이 이거냐? 등등. 말을 아끼던 한 직원씰룩이는 입꼬리에 잔뜩 힘을 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예 만면에 경련을 일으키며 숨이 멎을 듯 웃어재꼈다. 하아, 나는 바보 같이 배실배실 따라 웃었다.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과 수치심으로 실성한 사람처럼. 코앞으로 다가온 결혼식이 걱정이었다. 문득, 잊고 지낸 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저씨라면 희극인 머리를 한 날 최대한 정상인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텐데. 아저씨는 아직 그곳에 계실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저씨의 미용실은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전했을 뿐 아직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학교 정문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면 인쇄소 건물 2층에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한동안 나는 그곳에 미용실이 있는지조차 랐다.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다. 3학년이 된 어느 날, 문득 그 미용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머리가 지저분하던 차였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여학생의 머리를 매만지는 아저씨가 보였다. 가죽 재킷에 가죽 바지를 깔맞춤 한 노랑머리 아저씨는 평균보다 작은 키에 체구가 왜소했고, 유난히 하얀 피부 위로 솟은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 콧수염마저 노랗게 염색을 했던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속 어린 왕자와 영화 <가위손>의 조니 뎁이 동시에 떠오르는 외모였다. 아저씨에겐 별세계에 사는 사람 같은 어떤 신비한 아우라가 있었다.


 "어떻게 자를까요오?"

 "제가 숱도 많고 많이 뻗치는 머리라... 적당히 잘 잘라주시죠."
 "네에에-"   


 나는 딱히 멋 부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헤어스타일에 무척 민감했다. 깎아지른 듯 가파른 뒤통수는 스포츠머리를 해야만 했던 학창 시절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1센티도 되지 않는 짧은 뒷머리가 눌릴까 두려워 늘 목을 자라처럼 쭉 빼고 앉았다. 언젠의학이 발전하면 뒤통수를 이식하리라 진지하게 고민했다. 오른쪽 측두엽 부근에는 어릴 때 짱돌에 맞아 생긴 땜통까지 있어 콤플렉스에 무게를 더했다. 게다가 반곱슬의 머릿결은 어찌나 두껍고 억센지 아무리 길러도 쉬이 가라앉질 않았다. 뻗치는 방향에도 일관성이 없어 어디는 하늘 방향으로, 어디는 땅 방향으로 뻗치고 휘돌아 군데군데 지저분한 고랑을 만들었다. 모발 전체를 모조리 뽑아 가지런히 재배열하고 싶었다. 


 그런 난 미용사의 실력에 남들보다 집착했다. 기본기가 부족한 미용사를 만나면 반드시 실패했다. 어떤 이는 30분이 지나도록 머리를 자르는 둥 마는 둥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머리를 자르다 "아 진짜. 자르기 어려운 머리예요!"하고 된통 썽을 내기도 했다. 난 특이체질 환자였고 적절한 진단과 처방은 그들의 몫이었다. 아픈 환자에게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남 탓만 해대는 돌팔이들을 무수히 겪으며, 내 못난 두상과 자유분방한 머릿 털을 고려해 맞춤형 헤어스타일을 선사해 줄 미용사를 간절히 찾아 헤맸다. 언젠가 그런 귀인이 나타나겠지, 하고.


 아저씨는 남달랐다. 느릿느릿한 미성의 목소리는 상냥했으며 가위질은 날카롭고 섬세했다. 머리가 유난히 뜨는 부분은 뜨지 않을 정도의 정확한 기장으로 정리하고, 모근이 틀어져 자라는 부분은 교묘하게 숱을 쳐내 감췄다. 대가의 손길이었다. 마무리로 불규칙하게 층을 내는 '샤기컷' 스킬을 발동하면 미용 잡지에나 나오는 꽤나 멋스러운 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미용사들에겐 찾아볼 수 없던 완벽함이었다. 일평생을 찾아 헤맨 맞춤형 재단사를 이제야 만났다는 환희가 밀려왔다. 아저씨는 천재적인 재단사였다. 보통은 되는 대로 자르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라,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짓기 일쑤였는데, 아저씨는 모근의 방향, 모발의 굵기와 푸석함의 정도, 땜통의 위치와 크기 등 모든 것을 세심하게 간파한 후 가위를 놀리는 게 분명했다. 동네 미용실에선 자르다 만 것 같은 머리를 긁적이며 시골 총각이 되어 나오던 내가, 이곳에선 한껏 고양된 자신감으로 가슴을 쫙 펴고 의기양양 나오곤 했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이후로 난 친한 친구들을 차례로 미용실에 데려가 믿고 맡겨 보라며 등을 떠밀곤 했다.  



 

 "아저씨 잘 지내셨죠, 수선 좀 해야 할 듯해서요."


 나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며칠 전 당한 모발 테러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결혼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덧붙였다. 아저씨는 내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천진한 미소로 조금만 다듬으면 충분히 나아질 거라며 나를 다독였다. 별 일 아니라는 태도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역시 아저씨는 계획이 다 있구나. 만약 여기서 더 잘못된다면 나는 삭발을 해야 할 테고, 며칠 후 예식장에 들어서며 '신랑이 신실한 불자인가'하는 오해를 사게 되겠지만, 이제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잘라낸 머리칼이 너무 많아 수선에도 한계가 있으리라. 완벽하게 맘에 들 순 없으리라. 나는 그저 명상하듯 조용히 눈을 감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운명에 순응하리라 다짐했다. 대수술을 앞둔 중병 환자와도 같은 마음으로. 가운을 두르고 의자에 앉자 예의 섬세한 손놀림이 시작되었다. 지난 세월 동안 아저씨의 실력은 더욱 무르익은 것 같았다. 상냥한 말투와 얇은 목소리, 세월을 거스른 듯한 동안 외모만은 그대로였다. 꼬박꼬박 내게 극존대를 하는 태도까지도. 나는 어느새 20대 대학생으로 돌아가 아저씨에게 모든 걸 내맡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거울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댄디한 스타일의 헤어 모델이 눈을 크게 뜨고 앉아있었다. 회생 불가능해 보였던 머리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변신할 수 있다니. 정녕 이게 가능한 일일까. 아저씨는 미용사가 아니라 신통방통한 마법사였다!

  

 나는 결혼식을 무사히 치렀다. 결혼식 당일 메이크업을 받으며 "신랑님 머리는 손댈 게 없네요." 하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아닌 아저씨에 대한 칭찬이었다. 이후로 나는 꾸준히 아저씨를 찾아 지하철을 탄다. 집에서 1시간이나 걸리지만, 아저씨에게 머리를 내맡기면 나는 마음 졸일 일 없이 평안하다. 느긋하게 수다를 떨다 보면 잠시 후 머릿속에 그리던 그 모습이 거울에 딱 비칠 테니까.


 름한 임시 창고에 미용의자와 거울만 갖다 놓고 구색만 갖춘듯한 이 미용실은, 중세 유럽에서 건너온 듯한 낡은 소파, 수백 년 전 해저에서 건져낸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궤짝, 30년도 넘은 옛 일본 만화책 같은 것들로 가득해 팀 버튼의 영화 속 무대처럼 어딘가 퀴퀴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풍긴다. 배경에 완벽하게 녹아든 천재 미용사는 실력에 비해 허술한 면이 많다. 엉성하게 잠근 미용 가운 속으로 잘려나간 머리칼이 상당수 들어오고, 얼굴에 잔뜩 붙은 머리칼은 제대로 털어주는 법이 없다. 머리를 감을 때는 너무 차거나 뜨거운 물이 갑자기 나오므로 심적 대비가 필요하며, 물이 천지사방으로 튀며 얼굴을 적시므로 눈과 입을 꼬옥 닫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미용사 아저씨는 보물 같은 존재다. 아저씨는 나를 정확히 안다. 내 두상과 모근과 모질에 대하여. 내 속을 꿰뚫고 원하는 스타일을 귀신 같이 구현한다.


 언젠가 아저씨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허하다. 미용실이 지방으로 이전한다거나, 아저씨가 로또에 당첨되어 미용일을 그만둔다거나, 둘 중 한 명이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거나 하는 등의 온갖 이유로. 나는 또다시 실눈을 뜨고 미용사를 감별하며 달마다 다른 미용실을 전전하겠지.

 

 난 앞으로도 쭈욱 아저씨를 찾을 것이다. 그러면 아저씨는 천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고, 특유의 나긋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고,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미용 가운을 내게 두르겠지. 조근조근 온갖 신비주의와 음모론에 대해 떠들며 섬세한 가위질로 나를 안심시키겠지. 근사한 머리를 하고 "사장님 또 봬요." 하면 "네에에-" 하며 화답하겠지. 얼굴로 샴푸물이 마구 튀어도, 제대로 털어주지 않은 머리칼이 콧구멍과 등짝을 간질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미용사 아저씨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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