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내며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윤동주) 中에서
영화 <동주> 에서 정지용 선생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거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부쩍 인간만이 갖고 있는 마음과 태도인 "부끄러움"을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기실 그들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백주대로를 활보하는 시절이다.)
"그래요.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집사님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하느냔 말이에요?... 나는 주님에게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
- 이청준 / 벌레이야기 中-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고 성경은 말하고 있어 많은 개신교인들이 오해를 하거나 망상에 빠진다고들 한다. 사람이 그 용서의 대상이고 사람이라는 점이다.
후안무치한 이들은 벌레보다 못하다는 취급을 받기마련이다. 그들을 사람으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생태계 내에서 해악한 벌레인지는 여부는 100%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 몸에 부스러기를 일으키고 화농을 생기게 하는 벌레임이 증명 되었다면 당장 눈에 띄는 몇몇은 박멸할 수 밖에 없다.
허나, 늘 그랬듯이 약자들이 입은 상처의 골은 깊지만, 용서와 구원은 끝내 이어질 것이다.
"그때 알았네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한 사람 안에 포개진 두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거"
- 안희연 시집 '당근밭 걷기/문학동네' 중「긍휼의 뜻」에서
모든 사건과 사고의 끝에 약자들이 오히려 벌레만도 못한 강자들의 포악을 끌어 안고 가는 이유는
그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끝끝내 거스르지 못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