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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투기사

1.1.1.8. 신용의 세습과 가족 단위 채무 구조

by SOR

1.1.1.8. 신용의 세습과 가족 단위 채무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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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용은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의 법적·경제적 책임 체계 속에서 작동하였다. 부채는 단순히 채무자의 생존 시기 동안 유효한 것이 아니라, 사망 이후에도 자손에게 상속되는 구조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함께 사회 계층의 고착화를 심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다.



1) 신용의 세습: 채무의 상속 구조

문헌 자료와 점토판 문서에 따르면, 채무는 채무자의 사망 이후 다음과 같이 처리되었다:

상속자(주로 장남)는 채무뿐만 아니라 재산과 계약 책임도 함께 인수하였다.

점토판 문서에는 “A가 죽고, 그의 아들 B가 채무를 이어받는다”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상속자가 이를 거부하는 경우, 사법적 책임 회피로 간주되어 재산 몰수 혹은 노동력 제공을 강요당할 수 있었다.



2) 가족 공동체의 채무 책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경제 단위를 핵가족이 아닌 확대가족으로 보았으며, 가족 구성원 전체가 채무의 책임을 공유하였다.

형제, 배우자, 자녀는 암묵적으로 채무자의 채무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는 구조였으며

일부 문서에서는 “A가 은 10세겔을 빌렸고, 그의 아들 B와 동생 C가 보증한다”는 식의 다자 보증 구조가 확인된다.

이와 같은 구조는 고대 금융이 개인의 신용이 아니라, 가족 집단의 사회적 신용을 기반으로 했음을 보여준다.



3) 채무 세습의 사회적 함의

채무의 세습은 곧 빈곤의 세습으로 이어졌다.

초기 농민이 한 차례 흉작으로 인해 진 빚은, 상환 불능 상태로 지속되며 자식 세대로 넘어갔다.

가족이 담보로 제공한 토지, 노동력, 자녀는 세대를 거쳐 반(半)노예적 상태에 놓이게 되며, 신분 상승의 기회는 제한되었다.

특히 채무노예화의 세습은 자유민과 노예 사이의 중간 계층을 고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고대 사회의 사회적 유동성 상실과 계층 고정화, 그리고 왕권에 의한 간헐적 개입(탕감령)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핵심 구조이다.



4) 법제도와 채무 세습

고대 법령은 채무 상속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으나, 계약 문서 및 판례 중심의 관행법으로 실질적인 상속 책임이 인정되었다.

우르-남무 법전과 함무라비 법전에는 채무자의 사망 이후 재산 상속 구조가 명시되어 있으며,

문서 상에는 ‘채무도 상속 재산의 일부로 간주’된다는 조항이 확인된다.

단, 미성년자 상속자의 경우 일정 보호 조항이 존재하였고, 사원 또는 행정기관이 후견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5) 신용 구조와 가족 간 계약의 병행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가족 간에도 차용 계약이 존재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은을 빌려주고 일정 기간 내 상환할 것”이라는 형태의 문서도 존재하며, 이는 가족 내에서도 계약이 법적으로 구속력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이때 보증인은 제3자(예: 서기관, 이웃 등)가 되어 법적 객관성을 확보하였다.

가족이 곧 계약 단위인 동시에, 사회 법률 질서 안의 행위 주체였음을 나타낸다.



결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용 시스템은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채무의 세습은 금융의 지속성과 계층 질서를 동시에 보장하는 수단이었다. 신용은 개인의 신용도가 아닌 가문과 혈연, 연대 책임, 그리고 상속 구조를 통해 유지되었으며, 이는 고대 금융이 경제뿐 아니라 사회 통제와 신분 구조의 기제로 작동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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