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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를 자처하는 엄마가 말하는 인간관계

by 금동해피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눈물을 훔치며 연신, " 내가 사과할게. 내가 사과할게"

다급히 교문을 쫓아 나오며 말하고 있었다.

그 앞에 몇몇의 무리들...


-그래 네 잘못이 뭐라 생각해?

그런데 왜 우냐?


무리의 말투는 상대적으로 심약해 보였던 그 아이를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흩어졌고.. 이내 홀로 된 아이는 안경사이 눈물을 닦으며 외롭게 걸어갔다.


현장학습 주간.

혹시나 추울세라 반소매 학급티 안에 입혀 보낸 긴팔티... 조화로운 옷차림 속에 어떤 이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가 안쓰러워, 엄마 된 입장에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몇 번이고 다시 찾았다. 엄마라 하더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무엇이기에 더욱 안쓰러웠으리라.


인간관계=견주다, 서열을 매기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암묵적으로 서열은 늘 존재한다. 초등학생은 물론, 중 고등, 대학, 회사, (시월드...)


나의 성장 과정 속 인간관계에서... 일단, 장유유서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둔 한국 사회에서 서열은

어디서나 밑바탕에 깔려있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도록! 어느 하나 특출 난 분야가 있든, 기가 세든 둘 중 하나. 이건 느린 아이 육아에 절실한 키워드인데 공부를 못하면 예술적 재능이라도 특별해야 한다는 주위의 조언이다. 그래야 무시 못한다는...?


그런 면에서 안타깝게도 엄마인 나부터 공부도, 예술적 재능도, 외모도... 그 어느 것 하나 특출 난 게 없어서

고민이었고... 지금도 고민 중인지 모르겠다.


"사진 찍으면 넌 왜 항상 뒤에 가서 찍는 거야? 앞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이게 다 물러 터져서 그런 거다. 강단 있게 앞으로 밀고 나가야지 매사 양보만 하고... "


친정엄마는 단체사진 끄트머리에 나온 내 얼굴을 보면서 속상해하시곤 했다. 마치 그게 학교생활의 또 다른 척도인 것처럼...


순종적인걸 강요받은 가정에서 자라온 내가 밖에 나가면 당차게 굴어야 한다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논리라 당황스럽군요.


튼 뭐... 성격은 어렸을 때부터 물러터진 터라 그렇다 치고 즉각적인 효과를 보려면 눈에 뜨이는 것부터 손대야 하나 싶어 기센 언니가 되려면 어떻게 꾸며야 할지, 타투를 해볼까 피어싱을 해볼까.. 생각보다 안 아팠다는 후기에 슬쩍 마음이 흔들린 적도 있다.


인간관계와 서열, 그 안에 작용하는 성공요인?을 이토록 분석하는 나는 사실...


소외될까 두렵다.

대화에 끼지 못하면 우울하곤 했다.

심에 서고 싶은 그 마음 이면엔 상처가 있어

'내쳐진 그 어떤 기억'부터 회상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졌지만 지속되는 그 기간은 짧았고...

웃어른을 대하는 태도 또한 같아서 이번엔 칭찬받았지만 이내 못하면 어떤 하지... 그래서 나에게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꼬리에 꼬리 무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이어지고 있어 때로는 괴롭고, 이 때문에 불안하다.


인간관계만 신경 쓰기에는 아까운 인생

그런데 최근 친정할머니의 투병과 장례를 지키며... 다시금 명확해진 사실. 결국 생과 사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것.


외모 학벌 성격 재산 등등의 복잡한 계산 속에 상대방과 나를 재며 어울리고 나누고 줄 세우던 숱한 세월...


끝내는 노화와 무력한 육신에 갇혀 보대끼다 한 줌 재로 품에 안기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나마 눈물 흘려줄 수 있는 누군가 있다면 다행이고 고마운 것이라고...


한껏 잘난 사람도, 우울의 극치인 사람도 결국엔 '죽음'이라는 한 길을 걷게 된다는 것... 요즘말로 현타가 왔다.


그래서 인간관계 내려놓기 연습을 한다.


소외되는 상황에서 창피하지 않고...

무리에 끼려 애쓰지 않으며...

오고 간 대화 속에 실례되는 일은 없었나?(나를 싫어하진 않았을까?) 복기했던 버릇들도 살며시 놓아가고 있다.


그래... 나... 어쩌면... 아니 확신의 왕따 엄마!(왕따를 자처하는 엄마)


비교 속에 줄 세우고, 내 자식 무시하지 않으려면 동네 엄마들과도 적정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는... 느린 아이 육아 N연차 생활의 지혜도 이에 한몫했다.


만만함과 기센 무엇에 고민할 시간에 두 발 쭉 뻗고 잠자고 싶어서... 나는 마음 편하게 왕따 됨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통제하고 취향껏 즐기는 혼자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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