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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Dec 06. 2022

수염이

고양이와의 하루

현관문이 열리자

아빠  : “쉿, 조용조용” 사부작사부작

딸     :  “히히힣”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간다.

세상에나,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며칠 전부터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었다. 분리수거장을 지나가는데 지나가다가 멈추고 바라보니 다가와서 몸 한 바퀴를 돌길래 앉는 자세를 하니까 무릎으로 껑충 올라왔다. 어머나, 이게 말로만 듣던 ‘개냥이’인가, 너무 신기해서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마음씨 좋은 환경미화 여사님이 이미 돌봐주고 계셨고 평소 동물들 잘 보살펴주시는 이웃 어른이신 할머니께서도 이틀 밤 밤에만 데려가셔 주무셨단다. 이곳에 고양이 키우고 싶어 하던 분이 있어 다른 아파트에서 가방에 넣어져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데리고 오셨단다. 그런데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하셨다. 데려가 키우라고 하셨다.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도 안 좋아한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다.

남편은 어릴 적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있고 고양이를 꽤나 좋아한다. 하지만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심한 사람이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한다. 보이는 고양이들을 다 따라가고 심지어 절에도 한 번씩 가는데 고양이 때문에 가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당장 준비도 되지 않았고 이 밤에 어디서 잠을 자게 하지.

태어난 지 3개월쯤 되어 보인다고 어릴 때 추운 곳에서 자면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고 오늘 밤만 보살펴주자고 한다. 계속 생각이 나서 고민하다가 가보고 없으면 그냥 오지 싶어 갔는데 야옹 소리가 나더란다.       

“그럼 하룻밤만이예요. “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과 함께 온 고양이는 지퍼를 열어두자마자 여기저기를 성큼성큼 오르락내리락 낯선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이름을 ‘수염’이라 지어준다. 아이는 너무나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집에 금붕어, 구피, 햄스터 이후로 이렇게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는 동물은 처음이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 첫째가 먼저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남편은 고양이 몸도 잘 닦아주고 발톱도 깎아준다. 나를 의식하며 안심시키려 하는 것 같았다.

늦은 밤이라 잠을 자야 하는데 어쩌지 생각할 즈음 남편이 담요를 깔아준 가방에 들어가게 하고 혹시나 모르니 화장실에서 재우자고 한다. 다행이다 싶었다. 들여보내고 화장실 문을 닫으니 자꾸 야옹야옹 소리를 낸다. 다시 데려 나와 마침 있던 츄르를 짜서 물과 함께 주니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아, 배고파서 그랬나 보구나. 다시 데려다 놓고 문 닫으니 조용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평소 주말이면 늦잠자기 바쁘던 아이가 일찍 일어나 수염이와 마주했다. 둘째도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나 그렇게 고양이를 만났다. 어젯밤을 아쉬워하며 왜 안 깨워주었냐고 원망을 한다.     


아침식사시간이 다가와 밥을 차렸더니 식탁에도 성큼 뛰어오른다. 이런.

식탁 밑에서 먹도록 그릇에 밥이랑 고기반찬을 주니 정말 잘 먹었다. 조금 먹고 또 먹고. 잘 챙겨 먹는다.      


참, 이 수염이는 오자마자 오줌도 가렸다. 햄스터를 키우고 있어서 고양이모래를 사둔 게 있었다. 어젯밤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누길래 남편이 고양이 모래를 통에 넣어주니 대변도 바로 가렸다.

그리고 긁기를 하는데 어찌 알고 바닥에 있던 발 지압판을 긁어댔다.

이 똘똘하고 예쁜 고양이.     



아이들은 수염이와 거실에서 잠시 놀다가 슬그머니 방으로 데려갔다. 가서 보니 남편이 너무 해보고 싶었다며 이불 속에 들어가 배에 올려두고 같이 누웠다. 딸아이도 같이 누웠다. 수염이도 이내 눈을 감더니 잠이 든다. 말로는 "이그~" 했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평화로워 보였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연락이 와 있었다.

집에 데려오자마자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고 있다고 잘 키워줄 분을 구하는 글을 지역 카페에 올린 터였다. 통화 후 약속시간을 정하니 아이들이 최대한 늦추기를 부탁해왔다. 이미 집에 한 마리를 키우고 있던 분인데 같이 키우고 싶다고 데리고 가기로 한 분이셨다.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때, 남편이 수염이도 혹시 산책할 수 있는 고양이가 아닐까? 한다. 연예인 박수홍이 우연히 만난 고양이도 산책하는 고양이였다고. 이 수염이도 사람한테 먼저 다가오는 고양이이니 그럴 것 같다고 한다.

이렇게 이쁜데 산책까지 하면 너무 반해버릴 것 같다고. 이내 포기를 했다.           

시간이 되어 고양이 데려갈 분을 만났고 전해주었다. 잘한 일이 맞을지 아쉬움이 컸다. 아이들도 한동안 슬픈 표정이었다. 그렇게 수염이와의 하루는 끝이 났다.           

단 하루였지만 지금도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를 볼 때면 그때 그 수염이가 생각난다.

우리 집 냉장고에도 사진이 붙어있다. 정이 많은 남편이 출력해서 붙여놓았다.      



사진을 보면서 가끔 수염이 이야기를 한다.

그래 아직이야.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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