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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Feb 02. 2021

독서만이 살 길이다

수요일엔 수북수북 4장

  2020년 2월에 시작된 코로나의 광풍은 우리의 행동 양식을 바꾸어놓았다. 50일간 계속된 장마는 국토의 형세까지 바꿔놓았다. 전염병과 기후변화로 휘청거리는 지구에서 개인의 삶은 표류하고 있다. 원하면 언제나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 돈과 시간만 있으면 즐길 수 있었던 각종 여가활동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

  유배지에서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수도를 떠나 땅 끝으로 귀양 갔을 때 느낀 감정도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과 유사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실추된 명예와 사회‧경제적 곤란이 자신과 가족에게 엄청난 괴로움을 가져다주었을 텐데 그는 어떻게 곧은 선비의 기상을 잃지 않고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다산이 두 아들, 유배 중인 형, 그리고 제자들에게 보낸 서신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수많은 편지의 중심내용은 권독서(勸讀書), 권학문(勸學文)이다. 그가 학문을 권하는 이유는  입신양명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덕을 갖춘 인간이 되라는 뜻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두 칸 초가에 머물며 매일같이 책을 읽었던 다산을 생각하니, 인간의 수양이 어느 정도이면 그런 환경에서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언제 그곳을 떠날 수 있을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었던 그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는 초가였으나 기와집으로 복원한 강진의 다산초당

  40세부터 18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다산은 사실상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죽음의 기간 동안 그는 왕성한 저술 활동을 통해 대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저술에 마음을 두었던 것은 당장의 근심을 잊고자 함이 아니었다. “사람의 아버지나 형이 되어 저술이라도 남겨 허물을 벗고자 함”이라고 그는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학자적 소명의식의 발로였다.     

  모두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작금의 어려움은 전 세계가 함께 겪는 것이니 우리는 동병상련하며 위안 받을 수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고, 지구 반대쪽에 있는 사람과도 개인 통신기기로 소통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에 비하면 다산의 처지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숲속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홀로 지냈고 거친 음식과 딱딱한 잠자리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그를 괴롭힌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깨달은 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이 없는 것을 괴로워했다. 나에겐 수북수북 독서 모임이 있어서 회원들과 마음껏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이 많다.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라야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 한 군자라 할 수 있다”라는 말씀은 학문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우선 자기 자신의 학문에 주견이 뚜렷해야 판단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선택하는 일이 용이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남이 세워놓은 이론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기만의 독창적 사고체계를 세우라는 말씀이다. “대저 문장이라는 것은 학식이 그 속에 쌓여 그 문체가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같은 말씀은 글 잘 쓰는 기술을 추구하기 전에 내면을 채우라는 말씀이다.       

  “선조들이 가깝게 사귀던 분들은 반드시 후손을 찾아 어느 집인지 알아놓고 혹 만나게 되면 정겨운 대화로써 선대 때부터 지내오던 정의를 이야기해라”는 말씀은 부모의 우정을 자식의 대에서도 이어감으로써 인간관계의 기초를 놓으라는 말씀이고,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라는 말씀은 자립심을 가르쳐준다.

  다산은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내를 걱정하며 “여자들이란 정이 많아 이성에 의지하지 못하기 십상인데 얼마나 애통스럽겠느냐?”라고 썼다. 여자들이 감정에 치우친다는 견해는 간혹 여성을 비하하는 근거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지만, 다산이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어머니의 슬픔을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라는 배려심에서 나온 것이다.     

다산 정약용

  다산의 서신을 읽으며 글이란 참으로 놀라운 도구임을 깨닫는다. 개인적인 사색도, 사사로운 이야기도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독서만이 살 길”이라는 다산의 충고는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큰 진리로 다가온다. 문자 그대로 사상초유의 사태다. 과거였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무력하게 죽어갔을 테지만 우리는 최소한 자가 방역 수단은 갖고 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고 싶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야말로 책을 읽을 때라고. 인류가 왜 이런 재난에 처한 것인지,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누가 가르쳐주겠는가. 책을 읽고 사고하는 사람만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수북수북 시즌 2 시작 직전에 읽은 나는, 시즌 3에는 꼭 회원들과 함께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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