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Mar 18. 2021

유배지의 다산을 생각하며

수북수북 시즌 3두 번째모임 후기

  '수북수북' 시즌 3의 두 번째 책은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 중에 아들과 지인들에게 보낸 글을 모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였다. 고전 번역가인 박석무가 한자로 된 원문을 현대어로 번역했고, 꼭 필요한 주석만 달아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1부(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별할 때의 회포야 말해서 무엇하랴.’라는 문장으로 귀양길을 떠나는 심정을 토로하는 첫 번째 서신으로부터, 병든 아내가 보내온 치마폭에 쓴 두 편의 시까지 혈육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글들을 담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다산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책이라서 여성 회원이 대부분인 우리 독서 모임에서 접근하기 좋다고 생각되어 이 책을 선정했다. 모임 전에 만든 리딩 가이드를 소개한다. 


- 당신이 닮고 싶은 다산의 삶의 태도와 사상은 무엇인가?

- 현재 사적 107호로 지정된 다산초당은 과거 초당이 있던 자리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와당으로 복원된 것이다. 이 공간의 크기를 가늠해보고 그곳에서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10년을 하루같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다산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 다산은 이 책에서 현실 참여적인 詩만을 시로 보았지만, 오늘날은 참여시보다 서정시, 잠언시가 사랑받는다. 다산의 시대와 비교했을 때 오늘날은 무엇이 바뀌어서 시에 대한 관념과 선호가 달라진 것일까?    

- 다산은 가난이 사람의 판단력을 길러준다고 말한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다산은 손님이 가겠다고 할 때 한 번은 만류하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풍속 중에 우리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생각해보자.  

- 慈는 새나 짐승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유자가 논어에서 慈를 빼고 孝悌만을 이야기했다고 한 저자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다산이 아들들에게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한 지침으로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아이들이 나쁜 친구를 사귈까 봐 걱정하는 부모가 있다면 다산의 충고가 얼마나 도움이 될 것 같은가?

-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으려 하지 말라’는 다산의 말을 당신의 상사 또는 윗사람과의 관계에 적용해보라. 

- 저자는 ‘손쉽게 상자 속의 돈을 꺼내어 저자로 달려가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집안을 일으킬 수 없다.’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신용카드가 있어서 상자 속에서 돈을 꺼내 시장으로 달려갈 필요도 없이 한 번의 터치만으로 구매를 할 수 있다. 소비를 부추기고 빚을 지게 만드는데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수북수북은 시즌별로 회원을 새로 모집하는데 새 회원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큰 즐거움을 준다. 회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합류하고 있는데, 이번 시즌에는 상담전문가, 음악가, 개신교 목사와 유튜버가 새로 입회했다. 기존 회원인 교육학자, 노인복지 전문가, 다문화 교사, 은퇴한 일본어 교사와 더불어 대단한 독자 그룹이 구성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독후감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더니 독후감도 열심히들 쓴다. 

  우리는 모임 전날인 화요일 정오까지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진행자 입장에서는 독후감을 읽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독후감에서 나온 이야기만 소재로 해서 대화를 나누어도 두 시간이 모자란다. 다산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비유한 회원도 있었고 다산의 자녀교육 방법을 맞춤형 원격교육이라고 표현한 회원도 있었다. 다산 같은 아버지를 가진 두 아들이 부럽다고 한 회원이 있는 반면, 다산과 같은 아버지는 사양하겠다고 한 회원도 있었다. 다산에게서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는 회원도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더 열심히 살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다산과 같은 학자 남편을 가진 한 회원은 이 책을 통해 남편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독서하며 깨달은 바를 수시로 기억해두어야만 얻는 게 있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겠다고 쓴 회원도 있었다. 

독서하며 깨달은 것을 수시로 기록해야 얻는 것이 있다.

  독서 토론 시간에 한 회원은 본인이 신혼일 때 84세이었던 시아버님께서 4시간 동안 삼강오륜을 풀어 설명해주시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당시에는 아버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나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아버님의 큰 사랑이 느껴진다고 하며 그 어른이 그립다고 했다. 

  요즘에는 참여시가 유행하지 않는 이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이 부재해서 그렇다고 본 회원이 있었고, 지금은 행동으로 정치참여가 가능해진 시대이나 다산의 시대에는 행동으로는 감히 할 수 없었던 것을 글로나마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회원도 있었다. 현대인들은 심한 경쟁과 너무 많은 정보로 피곤한 삶을 사는지라 시를 읽을 때는 힘을 빼고 위안을 얻고 싶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 회원도 있었는데 모두의 의견이 다 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으려 하면 안 된다.’라는 말씀에 관해서 토론할 때 한 회원은 임금에게 존경받을 만하게 행동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임금이어야 존경을 받는다고 말했다.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이 알려지게 하며 더러는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라는 것이 원래 뜻인데 자기를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는 임금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임금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으려 하지 말라.

  소감 나누기 시간에 한 회원이 요즘 웃을 일이 없었는데 마음껏 웃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친정어머니가 넘어져 발목을 다치신 바람에 어머니를 돌보느라 두 번 결석했었다. 수북수북이 피곤하고 지친 그녀의 삶에 작은 샘물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다산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퍼즐을 맞추어 나간 듯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한 회원도 있었다. 독서 모임 덕분에 억지로나마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어서 귀중한 교훈을 많이 얻었다며 억지로 읽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한 회원도 있었다.         

  다음 주의 책은 이문구의 「관촌수필」인데 첫 번째 이야기에 인간문화재 격인 작가의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다산의 초상이 이문구의 할아버지에게 오버랩될 것이므로 우리가 「관촌수필」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모임을 마쳤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나단 조나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