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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Feb 02. 2021

걸어가면 길이 된다

수요일엔 수북수북 3장

  필 나이트는 달리기에 미친 평범한 미국 청년이었다. 그는 최고의 육상선수가 되고자 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자 그 대안으로 운동화 사업에 뛰어든다. 운동선수들과 교감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처음에는 질 좋은 일본 제품을 수입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미국인의 체형에 맞는 운동화를, 그 다음에는 수행 능력을 더 높일 수 있는 운동화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지만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찾아낸 사람들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였고, 마침내 그들을 파트너로 끌어들인다. 대학 때 육상코치였던 바우어만, 대학 친구였던 존슨, 부상으로 장애인이 된 우델도 나이트처럼 신발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일본 브랜드 타이거를 수입하는 회사로 시작하여, 나이키라는 자체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마침내 주식을 상장하기까지 20년의 세월을 그들은 완전히 한 팀으로 작동했다.          


  나이트의 리더십은 다분히 독단적이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도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목표를 제시하고 다음은 일하는 사람에게 일임하는 것이 그들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최선의 방법임을 그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첫 번째 파트너였던 존슨이 소매점을 개설한 후 매일 편지로 업무보고를 했지만 그는 거의 읽어보지도 않았고 당연히 칭찬이나 격려도 하지 않았다. 당시 나이트는 자금 마련을 위해 회계사와 대학 강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주말도 없이 사업을 위해 뛰어다녔던 그에게는 존슨의 편지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존슨은 상처받고 물러서지 않았다. 나이트의 꿈이 존슨의 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존슨은 열악한 임대사무실에서도 미적 감각을 발휘하여 제품이 아름답게 보이도록 진열하고 체육인들이 편안히 담소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바우어만 코치는 육상경기 현장에서 선수들에게 최고의 컨디션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적인 연구를 시도했다. 그의 연구 결과가 제품생산에 바로 적용됨으로써 그는 나이키의 기술연구소 역할을 해낸다. 우델은 존슨과 바우어만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나머지 세 사람에게 부족한 측면을 채워준다.

  창업 초기에 함께했던 이들은 끝까지 같이 가며 동업자와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한다. 나이키의 성장과 발전은 나이트의 꿈에 더해 이들과 맺은 가족 같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가족 같은’ 관계라는 말 속에는 온갖 종류의 유치한 감정과 행동들을 표출할 수 있고, 그럼에도 서로를 용납할 수 있었던 관계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예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꿈이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나이트의 꿈은 운동선수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도 운동을 즐기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에 맞는 좋은 운동화를 공급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그는 믿었다.

  일단 출발선을 떠난 그의 발은 멈출 수가 없었다. 좋은 제품 찾기에서 시작한 그의 여정은 판매 전략을 짜고 수많은 체육인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품의 기능을 보강하도록 요구하고 새로운 재료와 디자인을 제안했으며, 나중에는 새로운 제조업체를 찾았다. 제조업체의 교체는 수많은 변수들이 작용한 결과였다. 제조업체측에서 독점판매 계약을 어긴 것이나 일본 노동자의 인건비가 상승한 것, 경쟁업체들의 모함으로 관세폭탄을 맞는 등의 사건이 이러한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이러한 위기에 하나하나 대처해나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고, 그 돌파구는 회사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이끌게 되며, 나이트가 필생의 파트너들을 만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심지어 그는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도 일터에서 만나 끝까지 정신적, 실제적으로 그녀의 큰 지원을 받는다.        


  필 나이트의 자서전인 슈 독Shoe Dog은 1962년부터 1980년까지 그의 미친 생각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나를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기록이다. 검은 색 양장표지와 500페이지가 넘는 부피가 주는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었기에 우리는 이것을 주저 없이 북 리스트에 포함시켰었다.     

  이 책의 특징은 과장되지 않은 사실적 기술에 있다. 회사를 창업하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 회사가 성장하는 도중에 어떤 난관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과 용기가 어떻게 이런 난관을 돌파하게 해주는지를 배우게 해주는 매우 가치 있는 책이다. 덤으로 나 같은 경제학 문외한에게 자기자본, 환율, 관세, 주식상장 등의 개념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런 주제들에 대해 다소의 이해를 갖게 해 준 소중한 책이다.          

  이 책은 공동운영자가 추천했던 책이었기에 진행도 그녀가 했다. 줌에서 소리가 끊어지는 현상 때문에 시작 전에 시간을 적잖이 까먹었지만 회원들이 미리 업로드한 독후감이 있었기 때문에 모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진행자는 미소를 지으며 또렷한 발음으로 침착하게 진행했다. 나는 이 책을 일찌감치 읽고 독후감도 써 두었었지만 그녀가 보내준 리딩 가이드에 따라 다시 읽어보니 책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었다. 리딩 가이드의 이슈는 ‘세계여행이 저자에게 미친 영향’, ‘저자의 리더십’, ‘저자가 일으킨 법적‧윤리적 문제들’, ‘열정의 중요성’, ‘삶을 지탱하게 하는 나만의 달리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필 나이트는 20대 초반에 6개월간 세계여행을 한 이야기를 쓰면서 그것을 육상선수가 시합 전에 미리 트랙을 밟아보는 것에 비유하고 있었다. 그는 유한한 인생을 살며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대해 알아보고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갖고자' 했다. 리딩 가이드를 사용해보니 ‘질문을 하면 답이 나온다’ 라는 말은 진리였다. 혼자 책을 읽을 때와 달리 다른 사람이 함께 할 때는 사소한 질문이라 생각되는 것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책을 다시 읽어보게 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나이트의 리더십에 대한 토론도 유익했다. 나는 그의 리더십을 무어라 불러야할지 애매했는데 회원들은 ‘신뢰하는 리더십’, ‘연애하는 리더십’ 같은 이름을 붙였다. 무모한 목표를 제시한 후 동료에게 업무진행을 보고받고도 피드백을 주지 않는, 다소 무책임해보이는 나이트의 태도를 신뢰하는 리더십이라고 옹호해준 회원이 있었고, 또 다른 회원은 사업에 대한 나이트의 맹목적인 사랑을 일러 연애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타고난 리더라고는 할 수 없었던 나이트가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회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처음부터 완벽한 청사진을 그려놓고 그것을 따랐다기보다는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하여 걸어가면서 길을 만드는 타입이었다. 그의 목표지향성과 집중력, 그리고 포기를 모르는 끈질김이 수많은 난관을 물리치고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내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좋은 교육적 배경과 필요한 사람을 찾아내는 혜안이 있었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다.         


  나이트의 윤리관에 대한 질문에서는 찬반입장이 팽팽히 갈렸다. 남성회원들은 윤리적 문제에서 대체로 그의 입장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사업의 세계에서 일일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회장도 논바닥에다 말뚝을 박아놓고 그것을 자기 회사 자리라고 선언한 후 독일에 가서 차관을 받아온 예를 들면서 결과가 좋았으니 과정도 다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친 회원도 있었다.

  성공과 열정의 상관관계에 대한 토론에서는 열정 없이 성공할 수는 없겠으나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열정은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결국 성공의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하는 것이다. 성공이란 결과가 어떠하든지 자신이 선택한 일을 최선 다해 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회원들이 소개한 자신만의 달리기에는 잠자기, 그림그리기, 글쓰기, 음악듣기, 산책하기, 영어공부하기 등 다양한 방법들이 있었다. 모임에 대한 소감으로는 '독후감을 쓰면서 글이 조리 있게 변하는 것 같다.', '짧은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두꺼운 책을 읽어내서 뿌듯했다.', '모임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자신을 이해받는 것 같아서 좋고 모임에 대한 신뢰가 생기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동운영자는 진행자보다 참여자 역할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고 나는 지난 한 주간 진행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좋았다고 했다.       

  이날 모임도 오후 2시에 시작해서 정확히 4시에 끝났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았다. 3월 4일에 예정되었던 오리엔테이션이 무산될 뻔 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랜디 포시의 ‘장벽’ 철학과 필 나이트의 '미친' 꿈에서 동력을 얻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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