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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15. 2021

수요일엔 '수북수북'

구심력과 원심력

무지의 불안과 독서

  책은 인류 문화의 저장소인 동시에 메신저이기도 하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문자와 책이 없었다면 인류는 어떻게 과거의 지식과 지혜를 미래에 전할 수 있었을까? 나를 만든 것은 8할이 독서이고 지금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이 말은 적어도 나에게는 틀림없는 진리이다. 

  인간이 지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함이라고 한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좋아한다. 지식 얻기를 좋아한다기 보다 무지한상태로 있는 것을 못견뎌한다. 그 이유가 불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식을 추구한 직접적인 이유는 무시당하기 싫어서였다. “그것도 모르냐?” 라는 말이 듣기 싫었다. 주로 엄마에게 들은 말이지만 그 말이 주는 모욕감은 어린 나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그것도 못하냐?”라는 말까지 합세하여 나의 배움 욕구를 자극했다. 

  다행히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학교사회에서 환영받는 것이어서 나는 이 욕구를 칭찬까지 받아가며 마음껏 충족했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교사 증축 때문에 도서관이 우리 반 교실이 되었을 때 나는 책의 숲에 머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등을 보이며 꽂혀 있는 책들은 그 제목으로 나를 유혹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대출 절차 없이 책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내 책상위에는 교과서 외의 어떤 책이 늘 놓여있었다. 5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던 일이 도서관 교실에서 공부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심심할 때 책을 읽었다. 결국 글로 세상을 배운 나는 세상살이에 부족함이 많았다. 눈치도 없었고 때로는 예의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악의 없이 한 행동에 대해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니 더욱 더 책으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지식을 추구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감소하기 위해서다.

‘신성회’와 중학생 북클럽

  이렇게 책은 나의 유일한 오락이었다가 자부심의 근원이 되었다가 또 피난처가 되었다. 그러다 30년 전 ‘신성회’라는 치유독서모임에 나가면서부터는 책이 타인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았고 작가가 된 지금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신성회’ 독서 모임에 계속 나간 것은 내가 누구이며 인간관계라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해주는 심리학 기반의 책들을 주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책에 나온 사례보다 훨씬 생동감 있는 진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회원으로, 그리고 리더로 30년을 ‘신성회’에서 보낸 후 나는 심리학 책이나 자기계발서에 싫증이 났다. 나를 아는 것은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나를 만든 시대와 사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른 장르, 다른 주제의 책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리학책이 나를 해부해주었다면 역사서와 사회과학서는 내가 사는 사회를 해부하는 것이었다. 사회의 발전 양태를 알게 되니 그것이 인간 개인의 발달 양상과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다시 ‘나’로 돌아왔지만 이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는 이 시대와 사회로부터 사명을 받은 ‘나’로 변모했다. 나의 이런 변화는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과 관계가 있다. 나를 넘어 마을과 사회를 생각하는 자세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중학생 딸과 딸의 친구들을 데리고 일 년 간 북클럽을 한 것은 딸의 독서 습관을 길러줌과 동시에 역사회에 봉사한다는 취지와 일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북클럽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과정에서 청소년 권장 도서 중에 좋은 책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성인이 읽을 수 있는 책 중에는 얼마나 좋은 책이 많을까 싶었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들이라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무게중심 되찾기

  그러나 ‘수북수북’ 독서 모임을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이상에서 말한 세 가지 이유(나의 독서벽, 신성회, 중학생 북클럽)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수북수북’ 30회의 모임 후기를 재료로 삼아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이후 책 전체를 꿰뚫는 하나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할까를 고민했다. 대답 하나가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독서 모임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는 것. 우리 회원 중 한 사람이 모임 초반에 그런 말을 했다. 오래 전 사 두고 읽지 않았던 시집을 이번에 꺼내 읽으며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는 8년 전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그때의 어두움은 헤어 나오지 못할 것처럼 깊었다. 지금은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 후 나는 남의 눈을 덜 의식하게 되었다. 밝게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리라. 

  이제 삶에서 제일 중요한 건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 온갖 이유로 감정이 동요하기 일쑤였던 나는 이제부터는 그 어떤 것에도 내 감정의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상담을 받고 관상기도를 배운 후 내면 깊이 자리하고 있는, 표면의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평온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년 전 부모님이 우리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 온 후 어렵게 얻은 나의 평온이 흔들렸다. 엄마는 아빠의 병을 빙자해서 물리적, 시간적으로 나를 지배하려 들었고 그러면서 내 삶의 무게중심이 부모님에게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무게중심이 나의 외부에 있으면 내가 쉽게 전복될 것임을 직감으로 알았던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부모님과 관련된 일상을 기록했다.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울 때마다 글을 썼다. 그랬더니 무게중심이 서서히 되돌아왔다. 

  그러나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고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남들이 볼 때 나는 하루 종일 시간이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언제라도 나를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명분 있는 핑계거리가 필요했다. 누구의 침범도 당하지 않은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독서 모임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하는 일이었다.

‘수북수북’의 탄생

  그런 시간과 공간은 우연히 만들어졌다. 교회 부설 상담실의 동료 봉사자인 염주희씨와 이야기하다보니 그녀도 나처럼 독서광이었다. 그녀와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어서 독서 모임을 하나 시작해보자고 제안했더니 그녀는 적극 찬성했다. 둘이서만 하는 것보다 몇 사람 더 있으면 훨씬 다채로운 토론이 가능할 것 같아서 회원을 모집하자고도 했다. 

  둘이 함께 모임 이름을 짓고, 포스터를 만들고, 도서를 선정했다. 한 주에 한 권 읽을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무리가 될 거라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짧고 읽을 책은 많다, 일 년에 50권을 읽는다 해도 죽기 전에 이 세상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생각하며 한 주 한 권 읽는 모임을 고집했다.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인 ‘수북수북’은 이렇게 탄생했다. 수요일은 ‘수북수북’ 독서 모임을 하는 날인 것을 가족이 알게 되었고 부모님도 알게 되었다. “오늘이 수요일이구나!” 남편이 가끔 하는 말이다. 그 말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후의 이야기는  「화상 독서 모임 어떻게 시작할까」에 실려 있다. 혹자는 나보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 말의 의미인즉 자발적으로, 무보수로 수고가 많이 드는 이런 모임을 이끄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리라. 환갑을 기념하여 의미 있는 일을 한 가지 해보고 싶었다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나머지 절반의 이유는 ‘엄마의 구심력을 돌파하는 나만의 원심력을 갖기 위해서’였음을 이 글을 쓰는 중에 깨달았다. 평생 착한 딸로 살아온 나에게 엄마의 부름은 즉각적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강력한 힘이었고 나는 무게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그 힘에 맞서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의 무게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독서 모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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