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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May 27. 2020

핑계가 필요해

'동백꽃 필 무렵'을 보고 나를 반성하다

  카카오브런치 글쓰기 플랫폼에서 일 년에 한 번 공모하는 북 프로젝트 마감을 이틀 앞두고 ‘동백꽃 필 무렵’을 이어보기했다. 꿀맛이었다. 이제는 편집을 끝내야 하는데 어디서 작업할까 하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 반납할 책들이 있어서였다. 행선지를 정하는 데 있어 외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나 자신, 타율에 의해 움직이는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너무 자주 부끄럽다고 말하는 나 자신이 갑자기 싫어진다.     


  동백이 옹산으로 내려와 술집을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어린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옹산을 선택한 이유는 아이 아빠가 미래에 살고 싶다고 했던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고, 술집을 차린 이유는 동백이 만든 두부두루치기를 좋아했던 아이 아빠가 두루치기가 술안주로 최고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술집을 한다고 수군거렸다. 매사에 주눅 들어 살았던 그녀였지만 술집을 하는 데 대한 부끄러움은 없었다. 고아인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준 아들에게 따듯한 집과 밥을 마련해 주는 일은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였기 때문이다.     


  나의 최소한의 의무는 무엇일까? 내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내 시간을 사용하는 데 양해나 허락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가 노예적 사고가 아닐까? 나에겐 왜 늘 핑계가 필요한 걸까? 어려서 들었던 엄마의 “왜?”와 결혼 후에도 따라다녔던 남편의 “왜?” 때문일까? 이제는 자식들의 “왜?”까지 내게 굴레를 씌운다.      

  오늘은 막내와 남편이 출타하여 저녁까지 온전히 내 시간이 되었다. 평소라면 하루 이십사 시간은 내가 자의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해방된 시간에도 나의 시간을 쓰기 위해서는 내면의 검열관의 허락이 필요하다. 내면의 검열관은 결국 사회가 내게 부여한 감시망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너는 잘 살고 있어.”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은 어느 나이에 도달할 때까지 화장실 갔다 온다는 말을 꼭 했었다. 착한 어린이는 자리를 뜰 때 행선지를 보호자에게 알려야 한다고 철저히 배워서였을까? 쇼생크 탈출에서 모건 프리먼은 목숨을 걸고 어렵사리 감옥을 탈출했으나 무제한으로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해서 자살한다. 그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허락을 구했던 간수가 없는 세상이 너무나 헛헛하였다.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유로운 현재보다는 통제와 간섭이라도 있었던 감옥이 그리웠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느꼈던 막막함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의 일정은 부모와 학교와 교회에 맞추어졌다. 등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가면 수업 시작종과 마치는 종에 의해 나의 행동이 멈춤과 움직임으로 자동 설정되었다. 점심시간 한 시간만 가지고는 도시락 까먹기와 수다 떨기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었다. 공부와 공부, 또 공부로 채워진 긴 하루가 지나고 별을 보고 집에 오면서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즐거웠었다. 주말에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예배시간에 맞추기 위해 씻고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성가대 연습을 위해 남들보다 먼저 도착하였고 예배가 끝나고도 한 시간을 더 연습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도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수강신청을 하긴 했는데 어느 강의실로 찾아가야 하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었다. 제대로 찾아왔는지 확인하려면 강의실 입구에 붙어있는 깨알같이 작은 글자를 해독해야 했다. 잘못 찾아온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황망함이란... 지금도 가끔 그때 꿈을 꾼다. 크지도 않은 대학 교정에서 길을 잃은 신입생이 되어 있는 꿈을.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였다.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람을 가르며 버스 승강장에 도착한 후부터 나의 하루는 꽉 짜인 시간표대로 움직였다. 이십 평생 해본 적 없던 재떨이 비우기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번역 또 번역,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수백 명을 운집한 식당 한 귀퉁이에서 밥을 먹었다. 그때도 마음 맞는 친구가 있어서 기계적인 하루하루를 견뎌냈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평생 처음으로 무한정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나 출산과 육아로 인해 자유의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마지막 육아가 끝나고 파트타임으로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적당한 긴장과 여유가 있는 삶이었다. 그러나 혈액암이라는 복병이 나를 덮치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삶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병과 그 후유증에서 조금씩 헤어 나오면서 무한정의 자유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여 교회의 각종 봉사활동과 소그룹 리더직에 자원했다. 루틴한 일과 속에 나를 집어넣고 싶어서였다. 교회의 역사편찬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나의 글쓰기 재능을 발휘했다. 그 여파를 이어받아 독서모임 연합회와 교회부설 상담실을 창조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단지 부모님이 내려오셨기 때문에 잘 돌아가던 내 삶이 삐걱거리게 된 것은 아니다. 내려오시기 전부터 독서모임과 소그룹과 상담실 사역 모두에서 나의 열정이 식고 있었다. 지금은 부모님 때문에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이 모든 일들에서 조금씩 발을 떼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금은 공모전 마감일이 나의 디데이가 되어 모든 에너지가 그리로 향하고 있다.      


  나를 몰아대는 시간표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것이 정상은 아니다. 외출할 때마다 정당한 이유를 찾는 것도 강박증에 가깝다. 동백이는 나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아이와 함께 살아남아야 한다는 한 가지 절실한 이유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물질적 풍요와 교육받은 삶은 인간을 더 속박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자유와 구속의 상태를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지금이 내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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