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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Nov 30. 2021

보령에 다녀와서

글쓰기 욕망이 꿈틀대던 2019년 봄

  올 삼월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학 평생교육원 글쓰기 수업에 등록했다. 교과과정 중에 문학기행이 포함된다는 것을 오리엔테이션 때 알게 되었다. 이 수업에 몇 번이나 출석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문학기행에 가고 안 가고는 나의 의지를 벗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월이 되고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품이 점점 그리워졌다. 파킨슨병 치매를 앓고 있는 친정아버지가 우리 동네로 이사하신 것은 작년 시월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비서 겸 운전기사로 상시 대기상태에 있다. 지난주에만 응급실에 세 번이나 뛰어갔고 주말엔 병원에 입원시켜드렸다. 

  부모님이 서울에 사실 때는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 늘 불안했다. 곁에 계시면 부모님 마음이라도 든든하실까 하여 대전으로 내려오시게 하였다. 올해 2월에는 가까이 사는 둘째 딸이 아기를 낳아 전보다는 자주 딸네를 방문하게 된다. 집에는 아직 공부하는 늦둥이 딸이 있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알기 쉽게 성격이 내향적이라서 그렇다고 말해두자. 그런 내가 가족들의 이런저런 요구에 응하다 보면 나 자신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글쓰기 교실에 등록한 것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들여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으면 내가, 나의 자아가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문학기행 날짜가 다가올 무렵, 나는 그저 내가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는 시간과 장소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래서 문학기행에 함께하기로 하였다. 말하자면 도피성 여행이었다.             


  강의실에서 집합하여 교육감의 짧은 특강을 들었다. 정치인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뜨리는 강의였다. 그의 두 번째 당선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정치인이라니, 나의 시각이 협소했음을 반성하였다. 

  20인승 버스는 14명의 수강생을 태우고 보령을 향해 출발했다. 통성명만 하는 수준이었던 몇몇 학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제나 새로운 만남은 설렘을 준다. 자기소개하는 선배들의 이야기에는 문학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다. 

  토정 이지함의 가족묘가 첫 행선지였다. 우리 역사를 대강만 아는 나는 토정비결을 점술서로 알고 있었기에 이를 하찮은 잡문이라 여겼었다. 토정의 가문이 대대로 학문이 깊었고, 그가 당대로서는 신학문인 천문과 지리, 의약에 능했으며 작은 고을의 현감도 지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나의 짧은 소견이 부끄러워졌다. 

  토정비결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저술한 책이라고 한다. 태어난 일시에 따라 다른 운명을 타고났다고 보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사고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이다. 그러나 백성이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시절에는 길흉화복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달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사람들이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하고 몸가짐을 삼가게도 했을 것이다. 그는 마음이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현자였다.

  토정의 글쓰기 목적이 애민에 있었음을 알게 되니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책이 좋아서 닥치는 대로 책 읽기를 했다. 목적을 가지고 독서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나를 책으로 이끈 것은 책 읽기 자체의 즐거움이었다. 독서를 통해 작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좋았지만, 나와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궁금해져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의 회원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성장하는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는 나도 작가가 되어 독자와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이런 생각은 어쩌면 책과 벗 삼아 사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갖게 되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치기 어린 생각이라는 내적 검열관의 말이 늘 나를 주춤하게 했다. 이 세상에 넘쳐나는 책 쓰레기 더미에 굳이 한 권을 더 보탤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나이가 드니 전에 없던 용기가 생긴다. 온 세상이 나를 무시한들 어떤가. 한두 사람의 독자를 얻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읽고 감명받은 명문장을 쓴 작가들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한 친구는 환갑 기념으로 책 한 권 내어보라고 나를 격려해주었다. 한 권의 책을 쓰려면 나만의 사상이 있어야 하건만 나에겐 사상이라 할 만한 것이 아직 없다. 있다면 고작 남과 다른 시선 정도이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다.     


  두 번째 목적지는 고운 최치원이 거닐었다는 보리섬 병풍바위였다. 천 년 전에 돌아가신 분의 발자취가 서린 곳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찾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웠다. 삼십여 년 전 돌아가신 내 조부님의 흔적을 제대로 한 번 찾아본 적 없는 내가 신라 시대 사람이 휴가 보낸 곳을 찾아오다니. 이것이 문화의 힘이리라.  

  병풍바위에는 후대 사람들이 새긴 듯한 낯선 이름들과 낙서만이 남아있었다. 고운을 모르거나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의 소행일 터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들 속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최치원이 누구인지 급히 검색해본다.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어린 나이에 당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였고 당나라 관료도 지냈다. 지금으로 치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최고학위를 받고 고위공무원이 된 격이다. 그 나라의 언어에 능통하지 않으면 관료 일을 할 수가 없었을 테니 고운의 언어적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상상이 된다. 

  지금도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만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은 소통이 중시되는 민주사회 시민의 자격요건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문과충, 문레기 라는 말은 인문학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말이다. 이 용어들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인문계 대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혐오 사회가 되어가는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이기도 하다. 

  어두운 생각을 접어두고 바닷가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에 대해 말해보자. 버스에 흔들리며 두 시간을 와서 성현들께 문안을 드리고 나니 모두들 기분이 좋으시다. 싱싱한 해산물을 안주 삼아 낮술에 취하고 싶으신 것 같다. 배도 어지간히 불렸고 술병도 바닥을 보이는데,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생각들을 안 하신다. 술이 들어가니 그간 서운했던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한다. 술은 두꺼운 가면을 벗고 속마음을 드러낼 용기를 주니 고마운 친구이다. 술이 깨고 나면 술기운에 했던 이야기는 다 용서된다. 술이 그렇게 만든 거니까. 술을 못 하는 나에게는 그런 유머가 없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삼행시와 노래의 향연이 벌어진다. 금요일 오후라 길이 많이 막힌다. 저녁 식사는 기다리는 가족들과 함께하기로 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였다. 


  보령에 다녀온 후 며칠 동안 토정과 고운에 대해 생각했다. 임시정부 수립 백 주년을 맞아 독립을 위해 애쓰신 애국지사들에 대해 생각할 기회도 많았다. 나라와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는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와 우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는 후손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조상이 될 수 있을까. 나의 글쓰기는 동시대인들과 후손들에게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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