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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Oct 10. 2021

행복

이슬아 따라하기

    “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다.” 오늘 아침 글쓰기 수업 수강생들에게 내가 보내준 글귀이다.     


    2018년 국민연금의 작가탄생 프로젝트를 만난 이래로 글쓰기라는 세계에 몰입해 살아왔다. 덕분에 내 독서의 범위와 양도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한 마디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결과 몇 권의 책이 나왔고 강의와 원고청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브런치 글쓰기는 빠른 반응을 받을 수 있어서 글쓰기의 속도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나이 60에 첫 책을 낸 내가 유명 작가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이 다음 주부터 시작된다. 나를 들뜨게 했던 글쓰기, 나를 알리는 도구가 되어 사람들과 새로운 차원에서 소통하게 해주었던 글쓰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책과 강의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고 있다. 이 수업의 수강생들이 나처럼 글쓰기와 사랑에 빠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어제 지인을 만났다. 그녀는 가끔 산다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데 어제도 그랬다.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그녀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글쓰기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그녀는 격하게 동의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 순간은 내 말이 적시타를 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후 내내 내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는가?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행복한 만큼 내 가족도 행복한 것일까?      

    『일간 이슬아 수필집』에서 저자가 부모와 소통하는 방식이 특별했다. 집에서 독립해 사는 이슬아가 아침을 먹으러 부모의 집에 가면 아버지는 늘 자랑할 거리를 묻는다. “슬이~ 오늘은 무슨 자랑할 거냐?”라고. 그러면 그녀는 열심히 자랑을 한다. 자랑할 거리가 없으면 만들어낸다. 그날 아침의 쾌변이나 3개월째 연습 중인 턱걸이를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 같은 것으로. 부모 앞에선 하찮은 일도 자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고 나면 하루를 시작할 마음의 균형을 찾게 된다’라고 그녀는 썼다.


    어제 저녁 식탁에서 나도 딸에게 한 번 말해 보았다. “예솔아, 엄마 아빠한테 자랑할 거 없어?” 딸은 이런 뜬금없는 말에도 냉소하지 않는다. 그저 난처한 웃음을 지을 뿐이다. 나는 이슬아의 이야기를 하며 우리도 그렇게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슬아의 자랑과 그 자랑을 들어주는 부모 덕분에 그녀가 이야기꾼이 된 것이 아니겠냐고 사족을 달며.     


    겉으로 보기에 내 남편과 딸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티비와 함께 보내고 있고, 딸은 방구석에 처박혀 공부와 게임만 한다. 나라면 저렇게 사는 것이 절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독서 모임을 하라고 그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그들이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살림에 취미가 없는 내가 가족이 먹을 음식에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가족의 대화를 즐겁게 만들 책임도 내게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행복을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런 생각은 나의 참자아에게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뿌리 깊이 내면화된 초자아의 목소리일까? 계속해서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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