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라 Oct 28. 2021

고장난 론

고장난 인류에 대한 고발

    독서 모임 ‘수북수북’ 회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했다. <고장난 론>이 선택된 이유는 순전히 시간상의 제약 때문이었다. 좋은 영화를 본다는 사실보다는 우리가 만난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작품 선정은 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수북수북’은 온라인 모임이라 회원들을 대면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설레었고, 국내 3대 백화점 중 하나라는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를 방문한다는 의의도 있었다. 그러나 복불복으로 선정된 <고장난 론>은 인문학 독서 모임을 하는 우리에게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4, 5, 60대 여성 일곱 명이 아침부터 애니메이션이라니! 좀 우습기도 했지만 <인사이드 아웃>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도 되었다. 줄거리는 원래 알고 있었지만 작가와 감독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가 관심거리였다.

    신기술의 개발은 그것이 상용화되기 전에는 부작용이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예술작품을 통해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게 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고 개인과 사회에 해롭지 않은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면 인류에게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미래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니가 자기의 알고리즘을 론에게 학습시키는 장면

    주인공 소년 바니는 급우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비봇을 혼자만 못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부재, 빈곤 등의 이유 때문이다. 비봇의 기능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이동 수단 등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연결을 위해서이다. “I am made for connection.” 비봇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친구 맺기 어려워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개발되었다. 마치 현대의 아이들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 소통하고 즐기듯이 영화 속의 아이들은 비봇을 통해 소통하고 연결되고 놀이를 한다. 미래의 소통과 놀이가 IT 기술 없이는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타당한 생각이다.

    비봇이 없는 바니는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바니를 딱하게 여긴 할머니가 뒷거래로 론이라는 불량 비봇을 사다준다. 론은 AI 로봇이긴 하나 소셜네트워크 접속이 불가능하여 리콜된 제품이다. 네트워크 접속만으로 주인의 모든 정보를 알게 되는 다른 비봇들과 달리 론은 바니와의 직접 만남을 통해 주인에 대해 알아간다. 백지 상태의 어린아이나 애완동물 같은 론에게 바니는 자신에 대해 열심히 알려주고 사회적 기술도 가르쳐준다. 다른 아이들은 친구 맺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비봇을 필요로하지만 바니는 론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친구 맺는 법을 터특해간다.

    바니가 비봇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론에게 인간적인 사고와 행동을 가르치는 과정과, 제대로 된 비봇이라면 저지르지 않을 사고를 치고 다니는 론이 폐기되지 않도록 지키려고 위험을 무릅쓰는 과정이 이 영화의 주요 볼거리다. 결국 불량 비봇 론은 바니의 소유물에서 진정한 친구로 진화해간다. 바니를 통해 우정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된 론이 자신의 인간화된 알고리즘을 다른 모든 비봇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자신 존재를 포기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 영화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편리함과 욕망의 충족에만 관심이 있는 인류의 현주소를 생각해보게 한다. 매일 뉴스를 접할 때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이 영화를 보고 인간이 AI에게 밀릴까봐 우려하는 목소리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인간보다 비인간이 더 흔해진 세상을 AI가 대체하는 편이 인류를 위해 더 나은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파친코』가 『파친코』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