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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an 13. 2022

삶의 예술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

     고흐는 매일 그렸다. 인물 데생을 하고 풍경을 스케치했다. 수채화를 그리고 유화를 그렸다. 늦게 그림에 입문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리는 것밖에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화폭에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기가 느낀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당시 미술 애호가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종류의 회화는 부유하고 세련된 사람들의 초상화였다. 그들이 호화로운 옷을 입고 돋보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풍경이나 사물을 그린 그림이라도 객관적인 미의 기준에 합치하는 것만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고흐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무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믿었다. 그는 가난한 농부들이 정직하게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땀 냄새, 발 냄새 가득한 식탁에서 거친 감자를 먹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진짜 삶이라고, 살아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의 관심을 끄는 그림보다는 자신이 만족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색채를 실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더 진짜에 가까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한 이 남자는 두 여인에게 사랑의 거절을 당한 후 자신에게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를 자격이 없다고 단정해버렸다. 그리고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그렸다.

   인생이란 아이러니다. 세상 사람 대다수는 고흐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만 자기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분투하다 보면 어느덧 중년의 문턱에 접어든다. 중년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평범한 삶을 부끄러워한다. 돈을 많이 모으지도 못했고, 대단한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닌 그들은 인생의 하찮음에 위축된다. 고흐가 진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위축되었듯이. 


    한 지인에게 고흐가 하루도 쉬지 않고 사력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그렇게 했겠지.” 나는 그 말에 놀랐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모두가 그것을 실현하지는 않는다. 고흐와 동시대에 고흐보다 일찍 두각을 나타낸 제라르 빌더스라는 젊은 화가가 있었다. 그는 좋은 선생과 여유 있는 환경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때문에 일찍 좌절해버렸다. 너무 일찍 싹을 틔운 풀이 모진 서리를 맞아 뿌리까지 얼어버린 것과 비슷했다. 재능은 어떤 사람의 성공을 설명하는 요인으로는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다. 심지어 고흐는 살아 있을 때 성공한 사람도 아니다. 그가 죽은 후에야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게 된 것을 생각하면 슬프기 짝이 없다.  

    살아갈수록 인간의 위대함을 결정하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나 환경이라기보다는 그의 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한 의지를 타고난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의지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일이고,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는 수많은 난관을 만날 때 포기하지 않는 것도 자신에게 달렸다. 

삶의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재능은 오랜 인내로 생겨나고, 창의성은 강한 의지와 충실한 관찰을 통해 생긴다(플로베르)”라는 구절 앞에서 나는 박수를 쳤다. 믿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의 잠재된 재능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재능이 없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고흐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열망은 오로지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개인적이고 친밀한 느낌을 담은, 피상적이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붓이 자신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붓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리게 해주는 도구일 뿐, 붓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었다. 

    누구나 인생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화가는 붓으로, 음악가는 악기로 표현하는 것이다. 고흐는 습작 시절부터 자신을 예술가라고 불렀는데 그에게 예술가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낼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고흐의 관점에서 모든 사람은 예술가로 살 수 있다.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 소중하다고 믿는 일을 위해 시간을 들이며 그 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가 예술가다. 아름다운 인격을 갖추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사람, 자녀가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지지하는 부모, 고객을 감동시키기 위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기업가는 모두 삶의 예술가다.  

    나는 나의 일을 창조적으로 하는 삶의 예술가가 되고 싶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 훌륭한 작가들이 말하길 좋은 글은 좋은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결국 내 의지가 향하는 방향은 좋은 삶에서 나오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흐의 말로 내 자신을 격려해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글을 쓴 페이지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종이보다 더 가치가 있다. 단지 그 사실이 나에게 글을 쓸 권리를 주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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