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자

⌜헬렌 켈러 자서전⌟

by 이소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겪은 헬렌 켈러가 스스로를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헬렌 켈러 자서전」에 포함된 수필 ‘나의 낙관주의’는 저자가 래드클리프 대학에 다닐 때 작문과제로 쓴 것으로, 학문의 힘으로 고양된 그녀의 낙관성이 어두운 시절을 지나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다.

진행자가 미리 공유한 동영상에는 헬렌이 비서와 한 손 수화로 소통하는 모습과 상대방의 입술을 읽는 모습, 라이온즈 클럽에서 구화로 연설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개인교사인 설리번 선생이 강의에 함께 출석하여 강의 내용을 한 손 수화로 헬렌에게 전달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기억한 내용을 토대로 헬렌이 직접 점자로 타이핑을 했다. 헬렌은 그렇게 만들어진 점자 노트를 읽으며 수업 내용을 되새기고 리포트를 쓰고, 시험을 보았다. 헬렌같은 중복 장애인이 대학에 입학하는 일이 희귀했던 20세기 초반에는, 아직 특수학생을 위한 학습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고, 그들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는 별도의 기준이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학생들이 한 시간에 공부하는 분량을 습득하기 위해 헬렌이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족히 서너 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한 그녀는 마침내 ‘학문 덕분에 나의 정신이 진리를 볼 수 있었고, 시각 장애가 있는 나에게도 정상인들과 다르지 않은 영역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인간 이하라고 느낀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학문은 정상인과 장애인의 경계를 허물고 그녀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광활한 정신의 세계로 인도했다.

KakaoTalk_20210218_175032961.jpg 헬렌이 점자 타이핑을 하는 모습

헬렌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

이날 독서 모임에서는 헬렌이 받은 교육적 투자와 자극, 그리고 그녀가 누린 남다른 환경에 관해 토론했다. 지성과 부를 소유한 부모덕에 훌륭한 환경과 최고의 개인 교사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요즘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에 그녀의 천재성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자신은 헬렌처럼 부자 부모를 갖지 못했던 것이 원망스럽다고 말한 회원도 있었다. 그러나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헬렌의 부모가 딸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신념과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회원은 헬렌이 박물관에서 전시품을 손으로 만지며 그 모양을 상상해보는 장면을 예로 들며 장애인에게 특별한 교육적 배려를 해주는 미국 사회의 진보성에 주목했다. 19세기 말 당시에도 미국은 박물관과 도서관, 극장 등 시민이 교양을 쌓을 수 있는 기간시설이 풍부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러한 곳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배움의 열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풍부한 기회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신문사 사주이던 헬렌 아버지의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전시품을 만지도록 허락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되기도 했으나, 미국 사회에서 위대한 장애인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된 것을 볼 때 이러한 일은 헬렌에게만 허락된 것을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헬렌이 맹학교를 다닐 때 지구본을 만지며 세계지리를 익힌 것이나, 물리 수업에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교구를 사용하여 개념들을 이해한 것을 보면 철저한 학습자 중심 교육철학이 느껴진다.

이 회원이 모든 국민이 교육받기에 유리한 미국 사회의 장점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그녀 자신도 사회가 주는 교육적 기회를 십분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킨 사람이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불리한 점에 집착하며 한탄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끌어다 썼던 것이다. 이 회원의 낙관주의도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물론 헬렌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 요인을 꼽으라면 그것은 설리번 선생이었다. 어둠과 침묵에 갇혔던 헬렌은 설리번이라는 교사를 만났기 때문에 밝은 빛으로 나와 온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해준 설리번 선생이 없었다면 그녀가 이토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KakaoTalk_20210218_175032961_01.jpg 설리번 선생이 한 손 수화로 헬렌과 이야기하는 모습

헬렌을 가장 슬프게 한 것

“나를 가장 어두운 시간으로 데려간 것은 볼 수 없음이나 들을 수 없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상인처럼 말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실망감이었습니다. 내가 정상인들처럼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헬렌이 라이온즈 클럽 연설에서 한 말이다. 낙관주의자인 그녀가 가장 한탄하는 부분이다. “나라를 위해 바칠 목숨이 하나밖에 없어서 슬프다.”라고 했던 유관순의 말이 오버랩 되면서 이 위대한 여성들의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전염되기를 기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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