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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pr 01. 2021

앵무새를 죽여야 하는 이유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책이자 미국 문학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다. 작가는 초고를 쓸 때 주인공을 20세 청년으로 설정했는데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바꾸자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아들여 스카웃이라는 6살 여자아이가 탄생했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는 소수집단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로 접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앨라배마주 메이컴이라는 작은 읍이다. 비슷한 시기에 앨라배마주에서 흑인 소년들이 백인 소녀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스카츠보로 사건이 이 소설의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사건은 그 후 로자 파크스의 버스 좌석 양보 거부 사건과 마틴 루서 킹 등의 흑인 인권운동으로까지 발전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흑인 톰 로빈슨이 백인 여성 강간 혐의로 기소된 사건의 재판 장면이다. 원고의 주장을 뒤집는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으로만 이루어진 배심원단은 톰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백인 여자가 흑인 남자에게 먼저 성적으로 접근했을 리 없다는 확고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강간 사건으로 유죄를 받으면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관행 때문에 절망한 톰 로빈슨은 탈옥을 시도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작품의 배경이 된 앨라배마 먼로빌 법원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지만 이 소설은 인종 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고정관념도 고발하고 있다. 부모에 의해 평생 집안에 갇혀 지내는 부 래들리는 괴물 같은 존재라고 소문이 나 있고 흑인 여자와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은 돌퍼스 레이먼드는 상종하지 못할 술주정꾼으로 낙인찍혔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오는 부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그리고 레이먼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카웃은 그들에 대한 소문이 아무 근거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순진한 아이로서는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본 후에 그들도 똑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어치새를 죽이는 건 괜찮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라는 애티커스의 말과 관련이 있다. 스카웃의 아버지인 애티커스는 앵무새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영어 본문에서 앵무새에 해당하는 Mockingbird는 미국 지빠귀를 말한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앵무새(지빠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주제로 토론했는데, 앵무새는 톰 로빈슨이며 부 래들리이며 돌퍼스 레이먼드이며 애티커스 핀치라고 볼 수 있었다. 한 회원은 우리가 모두 앵무새일 수도 있고 앵무새를 죽이는 존재일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되었다.     

  

듣기 싫은 말을 전파하는 입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아무 죄도 없는 앵무새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한 회원은 앵무새가 날아다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다른 회원은 앵무새가 남을 따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대답을 통해 큰 통찰을 얻었다. 단지 눈에 잘 띈다는 이유만으로 앵무새를 쏴 죽일 수도 있고, 앵무새의 울음을 다른 앵무새가 따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앵무새를 죽인이려 한다는 생각이 참신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눈에 띄기 때문에, 그가 우리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앵무새가 소리를 모방한다는 생각은 언론 자유의 억압과 관련지어졌다. 불온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내버려 두면 다른 사람이 그런 생각을 따라 할 수 있으니 불온한 사고를 색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버젓이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앵무새라는 개념은 번역가가 우리 정서에 맞는 단어로 선택한 것이므로 하퍼 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겠지만, 번역도 제2의 창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듣기 싫은 말을 전파하는 입을 막기 위해서 앵무새를 죽이려 한다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회원은, 오늘날의 앵무새는 성 소수자들과 장애인, 노숙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들도 앵무새처럼 때로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직접 해를 입히지는 않으나 우리 눈에 거슬리는 존재,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따라 할까 봐 두려운 존재,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점에서 사람들이 죽여 없애려 하는 앵무새라고 볼 수 있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 중 가장 특이한 사례는 흑인 여성을 사랑하여 혼혈아를 낳고 평생 흑인들의 집단 곁을 서성이는 돌퍼스 레이먼드라는 백인 남자였다. 그는 술을 먹지도 못하면서 종일 술에 취한 척한다. 그가 콜라병에 술을 담아 마시는 줄 알았다가 사실은 그것이 술이 아니고 콜라인 것을 알고 왜 그렇게 하는지 묻는 스카웃에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할 구실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라고 말하는 그의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회원은 레이먼드 같은 사람은 따돌림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다른 사람들을 따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사람은 소수에게만 자기 참모습을 보여주고 그 소수와 진짜 친구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멘탈이 정말 단단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먼드가 지금과 같은 시대에 살아있다면 당시보다는 훨씬 더 많은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 중에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 하지만 난 그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개의치 않아.”라는 레이먼드의 말이 그의 생각을 대변해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한 장면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한 회원이 자발적 비혼모 사유리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아들과 함께 ‘슈돌’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유리의 모자 가정이 정상 가정으로 보여지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너나없이 따라 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 회원은 비혼모로 아이를 갖는 것과 입양하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하며 사유리의 방송 출연을 옹호했다. 이 화제를 더 깊이 이야기하지는 못했으나 생각해보면 두 가지 경우는 전제가 완전히 다르다. 입양하는 경우는 이미 한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을 필연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고 비혼모로 아이를 낳는 경우 그 생명의 탄생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자기가 키울 수 없는 아이를 낳는 것은 더 큰 죄악일 수도 있다. 결혼 관계 밖에서라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에 비하면 훌륭한 생각이 아닐까. 부모의 죄로 인해 버려진 아이를 거두는 것은 선행이라고 보고, 자기가 기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아이를 낳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보는 것은 아이러니다. 오늘의 큰 주제가 편견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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