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임에서 『관촌수필』을 함께 읽은 후
이문구의 『관촌수필』은 그 제목과는 달리 연작소설집이다.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충청남도 보령의 관촌 마을에 살았던,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 한명 한명에 초점을 맞춰 써내려간 단편소설 모음이다. 나는 고작해야 머드축제로 알려진, 수많은 해수욕장 중 하나인 줄만 알았던 대천 바닷가 마을에서 일어난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슬프고 아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작가는 위대하다!” 라고 마음으로 외쳤다. 배운 사람이든 무지렁이든 인간의 삶은 기록하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작가는 글로 웅변하고 있었으므로.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가장 큰 거침돌은 고어와 사투리였다. 책의 출판 연대가 1970년대이므로 내가 십대일 때 쓰인 책인데도 책 속 단어들은 낯설기만 했다.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을 때처럼 사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생소하기만 한 단어의 바다에서 허우적 대며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애쓰다보니 책장이 금세 넘어가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러나 작가가 공들여 선택한 단어들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 욕심에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갔다.
놀랍게도 독서 모임 ‘수북수북’ 회원 중에는 어린 시절 관촌 마을에서 2년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 미리 공유한 독후감을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머지 회원들은 “우와! 우와!”를 연발했다. 이 회원은 그 2년 동안이,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건강했던 시절이었다며 행복했던 그 시절을 회상했다. 리딩 가이드에는 토속어를 5개 이상 찾아보자는 항목이 있었는데, 그녀는 본인의 할머니가 ‘굴품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던 것을 떠올리며 그 말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굴품하다’라는 표현은 식사를 하고 나서 한참의 시간이 지나 공복감이 느껴지고 입이 심심할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모두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기에 그녀의 설명으로 단어가 금방 이해되었다.
우리가 사는 대전과 보령은 같은 충청남도 권역이어서인지 회원 중에는 홍성, 청양, 익산에 친가나 외가를 두고 있는 사람이 4명이나 있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서해안 사투리가 낯설었던 나는 독서 모임 회원들 덕분에 이 책에 나오는 토속어와 민간 풍습에 제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우리 지역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 우리를 이렇게 하나로 묶어줄 줄은 정말 몰랐다. ‘수북수북’ 시즌 1과 시즌 2에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었기에 시즌 3에는 박완서와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남성 작가의 책을 읽어보기로 했던 것이었다. 박완서의 작품에 나오는 황해도 박적골은 상상으로 그릴 수밖에 없는 땅이었던 반면, 관촌(보령)은 회원 모두에게 친숙한 지명이었기에 회원들이 이 책에 금방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 어머니를 잃은 한 회원은 자기 어머니 고향이 보령이라고 했다. 이 회원은 평소 슬픔이 너무 커서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 자체를 힘들어 했었는데 독후감에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 하모니카를 배우러 다니셨다는 이야기를 썼다. 젊은 시절 보령에 살 때 멀리서 들려오던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꼭 배우고 싶다고 하셨던 어머니가 연세 드신 후 기어이 하모니카를 배우셨다는 것이다. 『관촌수필』에는 기구한 삶을 살았던 행랑아범 아들 대복이가 하모니카를 잘 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쩌면 대복이의 하모니카 소리에 자기 어머니가 홀렸던 것일지 모른다며 활짝 웃는 그녀 얼굴을 보니 흐뭇했다. 아직은 애도 기간이지만 사이사이 행복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어머니를 잘 보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소감 나누기 시간에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마음 놓고 그리워하지도 못했던 그녀의 마음이 읽혀서 퍽 안쓰러웠다.
한 회원은 이 책을 읽으면서 글을 읽지 못하셨던 할머니에게 끝내 글을 가르쳐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글 읽는 즐거움 하나를 남겨드리지 못했다’고 쓴 문장에는 글 읽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느껴지는 만큼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지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친정어머님이 무릎골절상을 당하셔서 매일 친정으로 출근하는 한 회원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전원일기를 함께 보면서, 양촌리 김회장댁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이 『관촌수필』 주인공의 본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과 흡사해서 더 재미를 느낀다고 썼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 주인공을 살뜰히 돌봐주었던 ‘옹점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한 회원은 옹점이라는 이름에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던 ‘옹님이’ 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녀가 옹님이 언니의 성이 뭔지 궁금해서 친정어머니께 전화로 물었더니 뜻밖에도 언니의 이름은 ‘옹님이’가 아니고 ‘옥임이’라고 알려주셨다 한다. 할아버지가 “옹님아 옹님아!”하고 부르시는 통에 ‘옹님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이렇게 해서 관촌 마을로 가는 여행은 회원 모두의 어린 시절로 떠나는 여행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