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장례식

수없는 예행연습 끝에

by 이소라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하늘 아래 나의 엄마와 아빠가 없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간이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빠를 땅에 묻은 지 하루가 된 지금, 나는 너무 멀쩡하다.

아빠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우리 집 서쪽 창으로 보이는 대전현충원에 아빠의 유골을 묻었다. 대전에서 일하던 30년 전, 아빠는 여기가 당신이 묻힐 곳이라고 하며 나와 외손녀들을 데리고 현충원을 자주 방문했다. 8년 전 내가 현충원 앞으로 이사하자 아빠는 무척 좋아하시더니 결국 아빠도 3년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하셨다.


아빠의 두 번째 대전 생활은 파킨슨병으로 인해 집과 병원을 오가는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자신이 영면할 곳이 있다는 사실은 아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빠가 그토록 장례식 연습을 많이 하신 이유가 자신의 묘소 근처에 살아서였을까? 이문구의 『관촌수필』에는 저자의 할아버지가 가묘를 만들어놓고 그곳을 매일 돌아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충원은 아빠의 가묘인 셈이었다.


아빠의 자리는 미리 정해지지 않았고 남아있는 묘역에서 유해가 접수되는 순서로 배정되었다. 사망진단서를 첨부하여 현충원에 안장 신청서를 냈더니 심사하는 데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과거 군 복무기간과 그 이후에 처벌받은 기록이나 범죄 경력이 있는지 조회하는 모양이었다. 1960년부터 군 생활을 시작하셨으니 문서 조회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만약 승인을 받지 못했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화장장까지 20분, 화장장에서 대전현충원까지 20분 거리여서 안장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빠의 계급과 성명이 써진 목비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일련번호 쓰는 자리는 비어있었다. 유해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석 달 후에는 석비가 제작된다고 한다. 석비에는 자녀, 손자, 증손자의 이름이 다 새겨진다고 하니 아빠의 영원한 침상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직계 가족 외에 아빠의 전우 한 분과 전우의 가족 두 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안장식을 참관하셨다. 자신의 장례 절차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빠가 이 광경을 보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비 제작 전 임시 목비를 세우는 장면

아빠 인생 계획의 마지막 페이지가 드디어 채워졌다. 유비무환이라는 군인정신으로 똘똘 뭉쳤던 아빠는 자신의 죽음과 장례 절차 하나하나까지 계획하고 실행하셨다. 죽음 이후의 일도 아빠 자신이 진두지휘하길 바라셔서 상조회 연락처를 수도 없이 확인하고 본인이 직접 전화까지 하셨던 아빠였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장례 식순까지 직접 쓰셨다. 사회, 기도, 찬송, 그리고 자신의 약력까지. 진짜 장례식을 하면서 기시감이 든 것은 아빠가 장례식 연습하는 것을 하도 보아서였을 것이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는 아빠에게 핀잔을 주고 때로는 화도 냈었다. 대체 왜 그러시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우연한 기회에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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