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관학교 후배와 엄마의 이종사촌 동생이 우리 부모님의 중매로 결혼하여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 그런데 이모의 남편, 즉 나의 이모부가 사고로 불명예제대를 했다. 그 후 이모부는 외항선을 타셨고, 덕분에 이모 댁 가정형편이 펴졌다. 일 년의 반 이상을 바다에서 보내는 생활이 외롭기도 했으나 여행과 낭만을 좋아하는 이모부에겐 잘 맞는 직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 들어가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어진 이모부가 마지막 항해로 생각하고 갔던 기항지, 폴란드라는 나라에서 그는 그만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이모부의 비보가 날아든 그날은 마침 이모가 나의 부모님 댁에 놀러 오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당시 아빠는 군에서 전역한 후 대전 모 방송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모부의 사망 소식은 이모 집 대신 내 친정집으로 전해졌다. 이모부의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은 선박회사 직원은 아빠의 지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막 집을 나서려던 이모를 기다리라고 하고는 황급히 서울로 올라가셨다. 그 소식을 이모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서였다. 겨우 40대 후반이었던 이모에게 남편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으리라.
나의 아버지는 이모부의 시신을 인도하러 폴란드로 날아갔다. 나는 최근 치매 걸린 이모를 걱정하는 엄마의 이야기 끝에 그때 일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양리 엄마가 그 일을 <회항>이라는 제목으로 안 썼나."라는 말을 듣고 아빠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생 부인인 양리 엄마, 이봉심 작가에게 그 글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이봉심 작가는 아직도 그 글이 실린 동인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음 구절은 그때의 상황을 잘 말해 준다.
“당시 우리나라와 폴란드는 수교국이 아니었다. 비수교국에서는 시신을 바로 들여올 수가 없다고 했다. 국교를 튼 다른 나라를 거쳐 와야 하는데 근접한 수교국이 영국이었다. 영국을 거쳐 한국에 들여오는 데 근 열흘이 걸린다고 했다. 폴란드에서 나올 때 관을 뜯었다 닫고, 입국할 때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데 그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수만 리 먼 곳에서 죽은 이는 돌아올 때 더 멀고 힘든 길을 걸어야 했다.”
시신이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릴 수 없어서 이모부의 장례는 빈 관으로 치러졌다. 아빠는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이모부를 모셔오기 위해 한국에서 폴란드로,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았다. 시신을 이끌고 이역만리에서 또 다른 타국으로 갔다가 고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라니! 아빠는 죽은 전우의 시체를 메고 오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을 것이다. 베트남에서는 적의 포탄에 부하의 다리가 날아가 버린 것을 손 놓고 보아야 했던 아빠였다.
그저 상상해볼 수밖에 없지만, 이모부의 죽음이 자살이나 타살이 아닌 자연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복잡한 절차가 있었을 것이다. 영어는 그럭저럭 하였으나 폴란드어는 못 했던 아빠는 읽을 수 있는 서류와 읽을 수 없는 서류를 들고, 경찰의 수사가 끝나고 당국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길고 긴 심사가 끝나고 시신을 비행기에 싣기 전에 관 뚜껑을 뜯었다 닫고,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또다시 관 뚜껑을 열었다니, 이렇게 기막힌 일이 또 있을까! 직계 가족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그 일을 아빠가 대신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아빠의 슬픔과 비통함이 느껴진다. 아빠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러면서도 유족들이 얼마나 걱정되었을까?
아빠의 사망진단서 나는 아빠의 사망진단서 타령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아빠의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패혈증성 저혈압 쇼크로 나와 있다. 아빠가 그토록 원했던 ‘병사’로 진단받은 것이다. 왜 그렇게 병사에 집착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이모부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노심초사 타들어 갔던 아빠의 마음이 거기 있는 것이다. 병사로 인정받으면 경찰의 수사가 필요치 않은 것을 아빠는 알았던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죽음을 마주한 엄마를 위해서, 엄마의 마음고생을 줄여주기 위해 의사의 진단이 절대 필요했던 것이다.
한 사람이 죽은 후 땅에 묻히기까지의 절차를 아빠는 그 한 달 동안 뼛속 깊이 학습하였으리라. 합당한 사인이 포함된 사망진단서가 있어야만 시신을 인도받을 수 있다는 것, 사망진단서는 의사만 발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불법과 범죄에 연루된 적이 없어야만 국립묘지에서 받아준다는 것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