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술은 누가 배웠노?
가족 랜선 파티와 아빠의 질문
5인 이상 집합 금지명령이 내려지는 바람에 크리스마스에 오기로 했던 서울 딸네가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다. 모두가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 뻔하여 랜선 파티를 계획했다. 일주일 전 한 지인이 가족 모임을 화상채팅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는 화상 채팅 앱 사용에 어려움이 없고 노인들은 우리와 한 공간에 있을 테니 미디어 사용법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었다. 미국에 있는 동생네도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한국 시간 오전 10시(미국 위스콘신은 24일 오후 7시)에 모이기로 했다.
카드 만들기 앱으로 초청장을 만들어 문자 채팅방에 공유하고 드레스 코드와 파티 순서, 상품도 미리 공지했다. 가정마다 장기자랑 하나씩을 준비하라고 요청하고 나는 '가족의 역사 퀴즈' 문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할머니의 생존한 형제는 모두 몇 명일 까요?’나 ‘어렸을 때 연못에 빠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같은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 각 가정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도록 하고 9시 40분에 화상채팅 방을 개설했다. 파티가 시작된 후 나는 스마트폰으로 접속하여 다른 방에서 사회를 보고 부모님과 남편, 막내딸은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접속했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 기기들 간에 간섭현상이 일어나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자기 집에서 접속한 둘째 딸이 음소거하는 방법을 몰라서 아기 장난감 소리가 계속 나기도 했다.
35년 전 가족사진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어린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막내딸이 “가족들끼리도 아이스브레이킹이 필요해?” 하고 물어서 웃음이 났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진 다섯 살 큰 손녀가 울어 젖혔지만 아이를 달랠 여유는 없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가족의 역사 퀴즈였다. 다들 너무 재미있어해서 한 없이 하고 싶었지만 전체 행사를 한 시간 안에 마치기로 약속했던 것이라 그다음 순서인 성탄 콘서트로 넘어갔다. 음악 가족인 미국 남동생에게 첫 번째 순서를 주고 내 남편이 마지막으로 노래를 한 곡 불렀다. 남동생은 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바이올린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인 'O Come all ye Faithful'을 연주했다. 남편은 아빠의 애창곡인 ‘가고파’를 불렀다. 정서가 메마른 편인 남편도 이 노래를 연습할 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부산 바닷가가 고향인 장인에게 감정이입이 된 것이다. 원래는 ‘가고파’를 피아노 반주로 들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침에 아빠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급히 반주를 녹음하고, 노트북을 챙겨서 부모님 댁으로 갔었다.
예상했던 대로 엄마가 제일 신나 하셨다. 자식과 손자들을 한꺼번에 보는 일은 코로나 이전에도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티가 끝난 후에는 코로나 덕분에 이런 신기한 경험도 해본다며 좋아하셨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 세 가정이나 되었지만 다들 잘 집중해주었고 가족 퀴즈는 자기들의 이야기니까 귀를 쫑긋 세우고 참여했다. 가족이지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다들 재미있어했다. 퀴즈 문제를 몇 가지 소개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금년이 결혼 몇 주년일까?’,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의 성함은 무엇일까?’, ‘우리 중 미혼인데 이성친구가 있는 사람은?’, ‘어렸을 때 해수욕장에서 미아가 되어 구내방송에 나온 사람은?’, ‘어렸을 때 친구에게 tv를 빌려주면 안 되냐고 물었던 사람은?’, ‘얼굴이 잘 생겨서 유치원 다닐 때 여자 아이들이 서로 옆에 앉겠다고 싸운 사람은?’, ‘고향이 강릉인 사람은?’, ‘부부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당사자는 답을 맞히지 못하게 했고 정답이 나온 후 설명이 필요하면 당사자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친구에게 tv를 빌려주고 싶다고 했던 사람은 여동생이었는데 본인도 엄마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은 새로 산 스웨터를 빌려준 기억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일이라 기억이 선명하다. 이렇게 가족의 역사를 찾아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파티 후에 문자 채팅 방에서 계속 그 이야기가 오갔다.
미국 동생네 가족과 용인 동생네 가족은 조카 손자들이 커 가는 모습을 자주 보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아기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이 파티를 기획한 이유 중 하나였다. 둘째 딸은 미국 외숙모가 보내준 아기 장난감을 화면에 보여주며 감사를 표현했고 서울 조카네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애견 ‘호두’를 보여주기도 했다. 서울 조카의 아들이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랜선 파티를 통해 알렸다. 미국 영주권이 있는 조카는 금년에 온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려고 계획을 세워두었었는데 코로나로 무산되어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 퀴즈 시상품으로 카카오* 배달 선물을 보내주고 엄마가 협찬하시도록 했다. 끝나는 것이 아쉬운 엄마는 채팅 앱을 끄지 않으면 안 되냐고 하셨다. 그러나 11시에 교회 예배 동영상을 시청해야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다고 했다. 아쉬움을 남겨 두는 것이 지루한 것보다 나은 법이다.
퀴즈대회에서 일등상으로 치킨 상품권을 받은 조카 가족 파티가 끝나고 피곤해서 주무셨던 아빠는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니 일어나서 “이 기술을 누가 배웠노?” 하셨다. “소라가 배웠어요. 제일 똑똑한 딸이 배웠어요.”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오늘의 랜선 파티가 아빠에게는 천지개벽하는 경험이었으리라. 과거 전화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나 tv를 처음 보았을 때 사람들이 느낀 것과 다르지 않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환갑인 나도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80대 후반 노인들로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가족을 랜선으로나마 연결해주는 디지털 문화가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젊은 시절 아빠는 맥가이버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기술자였다. 집안에 고장 난 물건은 모두 아빠가 고쳐냈고 서랍장에는 상비약이 구비되어 있어서 감기가 걸리거나 배가 아프거나 넘어져 상처가 나면 아빠의 약상자가 다 해결해주었다. 아빠는 파킨슨 진단을 받은 후에도 우리 집에 오시면 자꾸만 떨어지는 화장실 휴지걸이를 계속 고치고 또 고치셨다. 아빠에게 기술은 자부심의 근원이었다. 그런 아빠의 눈에 당신이 근접할 수 없는 기술의 세계가 펼쳐졌을 때의 충격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이 기술은 누가 배웠노?”라고.
아빠의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던 우리는 그 속도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변화에서 소외되었던 노인에게는 이 물길이 엄청난 격류로 인식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