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 다른 때 같으면 친정엄마를 모시고 9시 예배에 가 있을 시간에 세동에 있는 성언 농장을 찾았다. 도저히 엄마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을 가릴 수가 없지 않은가. 엄마에 대한 미움이 치고 올라오는 데 그 마음을 감추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보내준 이곳 사진을 보았을 때부터 꼭 한 번 오고 싶었었다. 입구 주차장에는 백 년은 되었음직한 커다란 감나무 두 그루가 가지마다 노랗게 익은 감을 매달고 서 있었다. 그곳에 차를 대고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건물에서부터 숙소로 보이는 세 채의 집을 지나고 교육장소로 보이는 두 채의 건물을 지나 본채로 보이는 이층 집까지 와서 벨을 눌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갑자기 누렁이 세 마리가 나타나 낯선 이에게 경계심을 보였다. 이럴 때는 무조건 예뻐해 주는 게 능사라 그중 한 녀석-웰시 코기 종이었다-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따라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나머지 두 마리가 웰시 코기의 새끼란다. 사람 대신 개들의 환영을 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다니!
잠시 후 승합차 한 대가 올라오고 거기서 수녀님 여러 분과 할머니 두 분이 내리셨다. 아침 미사를 다녀오는 길이라 한다. 전화도 안 하고 무작정 찾아왔는데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아가페 수녀님과 보노사 수녀님이 농장 곳곳을 안내해주셨다. 수확을 앞둔 벼논을 포함한 경작지 주변으로 집회실과 기도처, 산책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머프의 집처럼 예쁜 기도처에는 어제 지네 한 마리가 출현했으니 이곳을 이용하려면 방충망을 꼭 닫고 있으라 하셨고 십자가의 길에는 뱀이 가끔 나오는데 기다란 막대기가 있으면 걱정 없다고 하셨다. 좀 으스스했다.
난생 처음 수녀님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가페 수녀님은 전형적인 원장수녀님 스타일이고 보노사 수녀님은 소녀과였다. 실제 나이는 오십 줄에 접어들었을 테지만 마음의 나이는 아직 20대인 것 같았다. 머리를 끄덕끄덕하고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불청객이 보여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고 내가 여기 오게 된 이유를 말씀드렸더니 재미있게 잘 들어주셨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분들은 낯선 이를 환영하는 방법을 잘 알고 계셨다. 경청은 최고의 환대이다.
햇빛을 받아 노랗게 반짝이는 감나무가 내다보이는 창 앞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고 글을 쓴다.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사람의 발자국 소리 같아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니 정말 사람이 있다. 이곳에서 일을 돕는 노인이다. 감을 따서 잡숫고 계신다. 사람이 그리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은 아닐까. 내게 말 걸지 말라는 수녀님의 당부가 없었다면 내게도 감 하나는 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을 것 같다. 그분껜 미안하지만 여기는 침묵을 허용하는 공간이라는 것이 너무 좋다. 침묵은 생성되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창밖으로 그 할머니가 지나가며 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보인다.
엄마는 이런 침묵을 좋아할까. 엄마가 늘 들여다보는 유튜브는 침묵할 여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엄마는 외로워서 유튜브를 보는 것이리라. 그리고 또 마음 둘 곳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리라. 젊을 때 설교대회에 나가서 일등을 했던 엄마였다. 외할머니께 “너는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든 거침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은 딸의 입장에서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경청하고 반대 의견을 수용하는 법을 배우시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군인인 아빠가 아닌 엄마가 우리 집의 독재자였다. 우리 형제들이 어렸을 때 엄마의 말은 절대 진리였다. 우리가 조금씩 자라면서 마음속에 반감도 자랐지만 엄마에게 내색하지는 못했다. 무반응이 최대의 반항이었다. 바람이 불고 감잎이 하나 둘 떨어진다. 잎 구르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는 정말로 구분이 안 된다. 그 할머니의 자취인가 다시 내다본다. 이번엔 아니다. 익을 대로 익은 감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터져 있다.
엄마의 말 중에 못마땅한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 넘겼다면 내 얼굴엔 아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 년간 엄마의 이웃으로 살면서 포커페이스 만들기 실력이 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발전이 아니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벽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진지하게 보일 거라 여겼던 표정이 울상으로 보였다. 불만과 불행감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감잎이 또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며칠이 안 되어 잎이 다 떨어질 것 같다.
엄마가 나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을 알고 있다. 요즘엔 매일 전화하지 않는다고 노여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엄마가 듣고 있던 유튜브가 화근이 되었다. 보수단체의 광화문 집회 실황을 누군가 보내준 모양이었다. 기도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은 종교인의 본분을 넘어 지나치게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는 분이어서 나는 평소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그런 소리를 왜 듣고 있어요!”라고 한마디 한 것이 큰 말다툼으로 발전했다. 답도 없는 정치논쟁을 주고받다가 나는 그냥 나와 버렸다. 점심 드시러 가자고 모시고 간 참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된 거였다.
감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 마음 밑바닥에서 용서라는 단어가 조용히 떠올랐다. 어떤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에게는 용서라는 도구가 있습니다.”
어릴 땐 늘 내가 용서를 빌었었다. 정말로 잘못했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엄마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늙어서 힘이 다 빠진 엄마는 나를 의지하기 위해 내 옆으로 이사 오셨다. 이제 그 엄마를 내가 용서할 때가 된 것 같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입은 상처를 직면해야 한다. 어릴 적 상처들이 올라오다 보니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이다. 화내는 나를 주님은 이해하시리라. 그리고 이런 나를 용서하시고, 내가 엄마를 용서할 힘도 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