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한 켠에는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이 늘 남아있었다. 오죽하면 어느 집단상담 모임에서 내 별칭을 시원한 바람이라고 지었겠는가. 속 시원하게 하고픈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가장 할 말이 많은 상대는 남편과 친정엄마이다. 오늘 우연히도 그 두 사람에게 오랫동안 묵혀놓았던 말을 했다. 지나치다 싶게 솔직한 앤 라모트의 글을 읽고 있었던 참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공휴일엔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남편에게는 골프 약속이 잡혀있었다. 어젯밤 태풍 미탁이 언제 한반도를 지나가고 언제 비가 그치는지를 묻는 남편에게 대답하다가 내일 골프를 할 수 없을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남해안과 동해안에 기록적인 폭우가 예상되고 해안가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지는 상황에 골프 걱정만 하고 있다니. 그래도 화를 내진 않았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말갛게 개어 있었다. 보통 골프를 치는 날에는 새벽에 나가는 사람이 9시인데도 누워 있었다. 골프가 취소된 것으로 알고 살짝 측은지심이 생긴 나는 정성껏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내가 김치찌개를 끓이고 고구마를 튀기고 새우전을 부치는 동안 남편의 시선은 텔레비전 드라마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시 화가 나려고 해서 어제 중학생 딸아이가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통신문 일부를 남편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항상 좋은 일로 대화하도록 노력하고, 민주적인 가족회의를 통해 가족 내 문제들을 해결합니다. 집안의 가사와 자녀양육을 함께 분담하고 책임지며 휴식도 함께 취합니다.”
남편은 멋쩍게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새우전이 맛있다고 연신 칭찬을 했다. 남편이 나에 대해 할 수 있는 찬사의 대부분은 음식 맛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음식을 잘해서가 아니라 다른 일에 대해 나를 칭찬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남편의 모습과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평생 제왕처럼 어머님의 지극한 섬김을 받았던 아버님은 그러한 섬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셨다. 아버님이 가끔 식탁에서 싱겁다, 짜다는 말씀을 하시면 어머님은 즉각 일어나 간장이나 물을 대령하였다. 늘 오르는 밑반찬이 빠지는 날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아버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님이 갖다 놓으셨다. 아무 말씀이 없으면 만족하신 것이고 불만이 있을 때만 말씀하시는 아버님에 비해 내 남편은 어떤 음식에 대해서 맛있다고 말해주니 고마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칭찬은 딱 거기까지였다. 칭찬에 인색한 집안에서 자란 남편이 한 가지 이상의 칭찬을 생각해내는 건 창의성의 한계를 넘는 일이었다. 더욱이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과 무관한 측면에서 아내의 장점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찬이 맛있다고 칭찬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어떤 때는 내가 식당 아줌마가 된 느낌이다. 손님이 맛있게 먹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남편의 여러 행동에서 ‘여자는 남자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읽는다.
오늘은 골프 약속이 오후에 잡혀 있어서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니 딱하게 느꼈던 마음을 다시 무르고 싶었다. 식사 후에 작정을 하고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집이 민주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하는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리벙벙해하는 남편에게 계속 쏘아붙였다. 내 생각에 우리 가정의 민주주의는 10점 만점에 3점 정도라고. 남편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민주적이지 않은 게 뭐가 있냐고 반문했다. 식탁을 차릴 때마다 나 혼자 바쁘고 당신은 수저 하나도 놓을 생각을 안 하지 않느냐, 다 차려 놓은 후에도 몇 번을 불러야 오지 않느냐, 그것만 보아도 우리는 가부장적인 집안이다. 물론 당신이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고 자란 것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이니 그와 다르게 사는 것이 어색해서 그런 것이다. 당신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당신도 아버님과 다를 바 없이 살면 우리 딸이 결혼에 대해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그렇게 살려면 결혼 안 한다고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지 않으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이 저녁에는 텔레비전만 끼고 살고 주말과 휴일에는 골프나 트레킹을 하러 가지 않으면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을 보면서 당신 같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겠는가. 딸 본인도 열심히 공부해서 얻고자 하는 미래가 휴일에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밖에 나가서 돈 쓰고 노는 것 밖에 없다면 그런 것을 어찌 꿈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남편은 전문직종에서 일하기 때문에 퇴직이라는 개념이 없으나 자신의 존재가 후배들에게 부담을 주는 시기가 오면 깨끗이 털고 일어나겠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5년 후면 실질적으로 일을 놓아야 될 시기가 될 것 같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2년 간 자기 직장의 수장 노릇을 했던 남편은 그 직책에서 벗어난 후 동해안 해파랑길 완주 목표를 세우고 친구와 함께 1, 2구간씩 걷기 시작한 것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나는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당신은 이틀 내내, 사흘 내내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삶이 어때야 할지를 고민한 것이 아니었냐고. 그랬지, 하고는 다시 묵묵부답이었다.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어서 시원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있는 남편을 보니 내가 좀 지나쳤나 하고 반성도 되었다. 남편은 내 말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자기 말이 막히면 화부터 내는 사람인데 화를 내지 않고 내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낯설었다. 어떤 부인들은 한 성질 하던 남편이 나이 들어 성질이 죽은 것을 보면 안 돼 보인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말에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죽기 전에는 내 남편의 성격이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남편이 골프를 하러 가고 나서 늦은 점심을 사 드리려고 엄마 집에 갔다가 엄마와 말다툼을 했다. 나는 싸움닭이 되어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튜브로 조국 사퇴 데모를 주도하는 보수 교파 목사의 연설을 듣고 있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는 정치 뉴스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특히 지금 정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나 역시도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실망할 대로 실망하고 있었지만 아빠가 힘들게 해서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엄마가 광화문 데모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현정권이 나라 경제를 다 말아먹었다고 하는 대목에선 더 이상 듣고 있기가 싫어 한마디 했다. 그럼 엄마가 미국에 돈 보내는 건 나라 경제에 도움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엄마의 아픈 곳을 찔렀다. 자식 잘 되라고 내 돈 보내는 게 무슨 잘못이냐! 하고 빽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고 말도 하기 싫었다. 조국 아내도 그렇게 말하면 뭐라고 하실 건지 궁금했다. 내 자식 잘 되라고 내 인맥 좀 활용했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하면 말이다.
첫 번째 싸움에선 기관총 연사로 적을 이겼고 두 번째 싸움에선 적의 방어벽 앞에서 대포 하나를 쏘고 퇴진해버렸다. 시원하기는커녕 하루 종일 기분이 저조했다. 이기나 비기나 싸움은 즐겁지 않았다. 내 치사함이 끝을 보았기 때문이다.